대부분의 프랑스 본토 외인부대는 남부에 위치해 있었다. 아비뇽에서부터 오랑쥬, 님므에 6사단 외인부대 주력 병력과 사령부가 주둔했다. 아비뇽은 교황청이 있던 곳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였고 1년에 한 번씩 유명한 세계 페스티벌이 열리기도 하는 곳이었지만, 부대원들은 대부분은 몽뺄리에로 몰렸다. 교회에는 한국인 처자들이 꽤 많았다. 몇몇은 염문을 뿌렸고 몇몇은 심각한 상태로 발전해서 결혼 얘기가 오갔다. 나의 본능은 교회를 멀리했다.
훈련을 마치고 맞이한 주말의 늦잠을 유일이 말없이 머리 맡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내무반 가운데에 있는 테이블의 의자를 가지고 와 머리 맡에서 조용히 책을 읽고 있다가 잠에서 부시시 깨자 반색을 했다. 연대 크로스컨트리에 10등 안에 들고 군생활도 멋지게 하는 친구여서 잘한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데 마음의 변덕이 심해서 어느 장단에 맞추어야 될 지 모르는 묘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일과가 끝나거나 주말이 되면 몰래 와서 내가 깨기를 기다리는 신중하고 배려 깊은 친구이기도 했다. 내가 훈련 마지막 날, 병장에게 한 하극상으로 인해 징계를 받았던 것이 부대에 소문이 났던 터였다.
유일이 몽뺄리에 탐험을 떠나자고 했다. 우리는 죽이 잘 맞았다.
부대에서 도보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님므 역으로 걸어갔다. 프랑스의 가을을 정말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다. 파란 하늘이 끝없이 펼쳐졌고 마로니에 잎은 바싹 하게 익어 살랑거리는 바람에 거리를 뒹굴었다. 거리는 가을 꽃으로 장식되었고 주말의 거리는 한가했다. 우리는 시간에 맞추어 기차에 올랐다.
프랑스의 고풍스러운 건물들과 첨단의 과학이 만들어 낸 조화를, 군인 신분증으로 75%의 혜택을 받는 즐거움을 동시에 느끼며 시속 280kmh으로 달리는 떼제베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한 여름, 햇빛의 강렬함만큼이나 잘 익어버린 황금 들녘이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찬란한 햇빛이 차창에 들어왔다. 우리가 말없이 창가를 응시하고 있을 때, 누군가 툭 하고 지나가며 ‘죄송합니다’ 라고 말했다. 뒤돌아보니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우람한 여자가 환한 미소를 지으며 미안해하고 있었다. 후배의 찢어진 눈동자가 커지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
“어디를 가시나요 마드모아젤?”
“몽뺄리에 갑니다. 거기서 공부합니다.”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우리는 남조선에서 왔습니다만?”
“스웨덴입니다.”
그녀의 불어는 1년 짬 밥인 나보다 나았지만 유창하진 않았다. 그녀의 이름이 요한슨이라 했다. 21세, 무르익을 대로 익어버린 농염한 자태에, 통통 튀는 듯한 탄력적인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도 일행이 있었다. 일행도 예뻤다. 후배가 그 동료와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다 알아들을 만한 해서, ‘영어가 쉬운 거군’ 자위하며 이 기회를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지식을 동원하기 위해 인상을 찌푸렸다.
이 신기하게 생긴, 영화에서 보는 듯한 중국 땡 중 같기도 하고, 구리 빛 그을린 얼굴에 뒷머리가 납작하고 눈이 찢어진, 뭔가 있어 보이기도 한 이 아시아인의 인상을 바라보는 이 마드모아젤의 얼굴은 그러나 평온했고 인자했다. 남조선의 촌놈이 경험할 수 있는 표정이 아니었다. 천사가 있다면 이런 얼굴일까? 황진이를 사모하며 상사병으로 죽어갔던 오징어가 그 심정이었을까!
그러나, 경상도 촌놈의 무대뽀는 그 인자하고 사랑스러운 미소를 더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 몽뺄리에에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꼬셨다. 그냥 꼬시면 넘어오지 않을 것이 뻔한, 한국에서의 경험을 상기하며 백 팩에서 그림도구를 꺼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짧은 시간이었으므로 금방 몽뺄리에에 도착할 터였다. 그 시간 동안, 요한슨이 혹할 만큼만 그리고는 완성할 때까지 저녁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로맨스를 만들면 될 터였다.
떼제베가 몽뺄리에에 도착했다.
유일이도 얘기를 끝내고 파장 분위기였다. 후배는 나에 대한 낯간지러운 찬사가 이어졌지만 무시하고 오른쪽 눈과 코까지 이어지는 라인을 완성하고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의 찬사가 이어졌다. 그림 실력으로 이런 천사에게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작은 재능을 주신 부모님께 감사했다.
역을 나와 헤어져야 할 갈림길이 나왔지만 나는 코미디 광장에 가서 커피를 마시자고 요한선에게 제의했다. 그녀는 흔쾌히 응했지만 친구는 달갑지 않은 모습으로 집으로 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우리의 발걸음은 어느새 코미디 광장을 향해 옮기고 있었다.
몽뻴리에 코미디 광장
요한슨은 착했다. 사람을 바라보는 은근한 눈빛엔 촉촉함이 깃들었고 얌전한 말 속엔 우아함이 묻어났다. 대화가 거의 통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색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이자 그것을 어릴 때부터 몸에 베인 ‘존중’으로 해석했다.
연애 경험이 많은지 적은지 알 길이 없는 내 서른 인생에, 21세 스웨덴 처녀는 어린 티가 전혀 나지 않는 미인, 다른 유럽 여자들과는 달리, 뽀얗고 부드러운 데다 복숭아 빛 피부가 탐스러웠다. 금발이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도톰한 귓불을 타고 흘러, 백옥 같이 흰 목덜미를 타고 내려와 한 번씩 뒤로 넘길 때면, 천사가 있다면 이런 형상일까…… 마음을 졸이며 마른 침을 삼켰다. 눈 섶 아래 깊게 들어간 초록색 눈동자는 이미 인간의 눈길이 아니었다. 무한대로 뻗어 있는 초록의 잔디 위에 흩날리듯 뿌려진 야생화처럼 깊고 깊은 눈동자에서 수영을 하고 싶은 마음이 일게 끔 속이 깊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여자는 성모 마리아와 같은 신성한 존재로써 마땅하게 존중받고 사랑받아야 할 존재란 의식을 가슴과 의식으로도 받아들이고 있었으므로, 그저 동경하고 존중하며 받들어 모셔야 할 신성함이 가득했다. 그러한 마음으로 요한선을 동경하고 미를 속으로 찬미했다. 그러나, 연애 감정에 쑥맥이면서도 성인이 되면서 여러 연애 경험을 통해, 그러한 신성함은 사라졌지만 본성이 본래 지배적인 것 보다 존중에 기반하였으므로 내 천성은 변하지 않았다.
아름답기도 했고 어리석기도 했으며 위험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래도록 여성성은 내 의식의 한 편을 지배해 왔었다. 그 기본 바탕은 사랑과 존중이었었다. 고딩 시절, 진주를 주름잡았던 대아고등학교 친구들로부터 나는 ‘지조와 절개가 넘치는 착한 친구’였다.
내가 프랑스로 오게 만든 배경에도 여자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서른 나이에 이뤄 놓은 것 없이, 암울한 미래가 내일을 알 수 없이 오늘을 살아가는 일이 무료하다고 느껴지는 와중에 큰 사건이 터지고 떠나 온 프랑스였기 때문에, 나이만 먹었을 뿐, 뭐 하나 이뤄 놓은 철학이나 신념이 없었다. 그런 내게 여자를 유혹하기 위한 시도 따위는 고작 그림을 그려주거나 시를 짓고 글을 지어 정성을 보내는 것이 다였다.
그러한 이유로 나는, 어떤 여자건 존중의 대상이었지 욕정이나 매춘의 대상은 절대로 아니었다. 한국에 있었다면, 한국인의 의식으로 굳어져 버렸을 인식이 빗나 있는 이 개념을, 나는 정의 내리지 못했지만 어떻게 결정 내릴 수 있었겠는가! 결정 내린 친구도 부러웠고 여전히 진실의 길을 헤매는 친구도 부러웠었다. 그러나, 내 인생은 나의 것! 아무리 요한선이 아름다워도, 내가 프랑스로 떠나오던 그 끔찍한 과거의 회상은 어리석음으로 결론 나고 있었다.
문학과 예술에 능했던 나는, 요한선이 좋아하는 팝 가수나, 샹송 가수, 좋아하는 프랑스 문학이나 세계 문학에 관한 얘기를 띄엄띄엄 나누었다. 후배는 여전히 나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았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칭찬이었다. 요한슨의 친구는 여전히 불편한 모양이었다. 입을 다물지 않고 있는 후배 때문인지, 내 의도가 그녀를 꼬시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눈치 챘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불편한 눈길은 가슴 깊이 각인되어 기분이 나빠질 정도였다. 그 효과는 참지 못하고 금방 드러났다.
햇빛이 찬란한 토요일 오후의 코미디 광장의 커피숍 테라스는 사람들로 북적이었고 맑고 높은 하늘이 찬란했다. 모르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프랑스였지만 요한선의 친구 표정은 짜증으로 변했다. 그러나, 내 그림을 구경하기 위해 뒷 편에 와서 구경을 하던 사람들 덕분에 한 번씩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불편함이 싫었다.
“네 친구가 우리와 같이 있는 게 불편한가 봐, 그림 뒤에 내 연락처를 적어 줄게, 저녁에 괜찮으면 저녁 같이 먹자”
나는 완성된 그림에 사인을 하고 전화번호를 남긴 뒤 그녀에게 넘겼다. 작업이 끝난 뒤에 적막이 길어지면 백퍼 실패한다. 쿨 하게 보내주고 나머진 그녀의 의사에 넘겼다.
후배와 나는 내기를 했다. 나는 ‘온다’에, 후배는 ‘안 온다’에 저녁 내기를 걸었다. 그녀는 저녁에 혼자 왔다. 그녀를 가볍게 포옹하며 볼에 입을 맞추며 프랑스식 인사를 나누었다. 부드러운 살갗의 촉감이, 그녀의 가슴이 가볍게 내 가슴과 만나 물컹 온 몸의 근육이 경직됐다.
“뭐 먹을까, 요한슨? 오늘은 내 친구가 쏘기로 했어”
“아, 그래? 너희는 뭐 먹고 싶어?”
“나는 한국 음식을 먹고 싶지만, 여긴 한국 레스토랑이 없으니까, 중국 음식 먹고 싶은데?”
“그럼, 준 좋은 거 먹으러 가보자. 나도 아시아 음식을 좋아해”
“잘 됐네. 그럼 팔짱 끼고 걸을까?”
나는 유럽 여자들이 그러한 스킨십에 관대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더욱이, 손을 잡거나 팔짱을 낀다고 해서 연인을 뜻하는 것은 아니어서 그녀가 선뜻 응하며 팔짱을 끼어도 으쓱했을 뿐, 다른 생각을 가지진 않았다. 팔짱을 낀 내 팔에 물컹한 그녀의 가슴이 다시 느껴졌다. 가슴이 흥분하며 졸지에 숨소리가 가빠졌다. 이렇게까지……,
코미디 광장에서 몇 블록 떨어졌지만 멀지 않은 단골 중국 식당에도 예쁜 중국 딸들이 있었다. 매번 볼 때마다
“이전 보다 훨씬 예뻐졌네? 뭐 좋은 일 있나 봐?”
라고 인사하며 들어섰다.
“올랄라, 오늘은 이렇게 아름다운 미인과 같이 왔네. 웬일이야 준?”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프랑스어에 정통했으나 중국인들에 대해 내가 인식하던 것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두 딸은 부모로부터 자유롭지만 엄격한 교육을 받는 듯, 반듯하고 착했다.
나는 해물 요리를 시키고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싼 거 좀 시켜. 완전 도적이 따로 없네!”
유일이 투덜거렸지만 즐겁다는 듯이 농을 했다. 요한슨도 나와 같은 해물 찜 요리를 시켰다. 나는 베트남식 고추장을 잔뜩 넣고 가급적 맵게 만들며 성급하게 한 입 넣어 씹었고 맵고 부드러운 조가비 살의 질감을 잔뜩 느끼자 심장이 환호했다. 그러면서 요한선에게도 덜 매울 것 같은 조가비 살을 집어 도톰하고 윤기 나는 그녀의 입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녀가 ‘음~~’하고 음미하다가 곧 ‘너무 매워 준!’ 하면서 혀를 내밀었다. 빨갛게 달아오른 그녀의 혓바닥이 나오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자, 와인 한잔을 따라 주면서,
“한 모금 들이켜고 입에 물고 있으면 금방 괜찮아질 거야, 요한슨”
요한선이 큰 눈을 감자 눈물 한 방울이 새어 나왔다.
“나는 이렇게 매운 음식을 좋아해. 이런 음식을 못 먹어서 내 가슴은 금단현상을 자주 겪었어. 미안해, 너무 매운데 내가 부주의했네”
“괜찮아, 준. 그래도 뒷 맛이 달콤해. 나도 익숙해지면 잘 먹을 수 있겠지”
그녀는 마음까지도 예뻤다. 유럽식 교육 탓인지, 자신과 맞지 않을텐데도 코드를 맞추는 태도가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이라 내심 놀라고 있었다.
“둘이 아주 영화를 찍어라 그냥, 멜로 영화 탄생하겠네 참내!”
유일이 시기와 질투를 가득 담아 한국말을 했다. 나는 흐뭇한 기분으로 그녀의 일상 이야기를 물었다. 어린 시절부터 성숙하고 말이 별로 없던 수줍은 소녀였던 그녀는 언니와 남동생이 있고 부모님은 대학 교수라고 했다. 자상하고 행복한 부모님 덕에 어려움 없이 살았지만 어릴 때부터 독립성을 키워 준 부모님 덕에 프랑스에 왔는데 스웨덴에 비해 다양성이 많아 좋다고 했다. 대학에서 만나는 세계의 젊은이들과 섞여 있으면 전 세계 사람들을 만나 각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일은 즐겁고 행복한 일이라고 했다. 자발적인 교육 참여라 강요 없이 진행되는 강의는 유쾌하니 즐겁게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있으니, 대학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내 모습은 어떤가 하며 흥미롭게 얘기를 들었다. 낮은 목소리가 느리고 감미롭게, 외국인의 억양을 끼고 귓가를 간지럽게 했다. 외인부대와 외인부대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외인부대원은 너희들이 처음이야”
유일이 외인부대의 미션과 일상생활에 대해 얘기하자 ‘야아~~” 하며 신음하듯 대답했다. 스웨덴 어로 ‘그래?’ 라고 말하는 듯 느리지만 묘하게 끌렸다.
식사를 끝내고 후배가 계산을 하려 하자, 요한선은 자기 몫은 자기가 내겠다며 한사코 지불했다. 우리는 자리를 옮겨, ‘장 조레스’ 광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라오케 바를 가는데 그녀도 동의했다.
“이야, 선배의 내공을 다 쏟아 붓네! 프로답다! 요한슨, 준이 부르는 노래를 들으면 반할지도 몰라!”
“그래? 흥미로운데?”
젊은 사람들로 넘쳐나는 가라오케 바는 밤 9시부터 시작했다. 딱 시간에 맞춰 왔지만 좋은 자리는 그룹으로 온 사람들이 모두 차지 해서, 우리는 무대가 얼핏 보이는 곳에 자리 잡았다. 볼륨감 넘치는 그녀가 내 옆에 밀착하듯 달라 붙어 한번씩 그녀의 가슴이 스치며 물컹한 느낌이 다시 전해졌다. 우리는 마고 와인 한 병과 연어 샐러드를 시키고 나는 노래 선곡 책을 받아, ‘Wham!’의 Careless Whisper’를 신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