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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2. 2019

통영 노동지청

노동부 통영지청, 대우조선해양(DSME)



 아는 동생 하나가 주머니에 손 넣고 횡단보도 표시가 없는 길을 아침밥을 먹고 걷다가 지역장이라는 사람의 갑질에 의해 강제 퇴직을 당했다고 했다. 동생은 노동청에 신고하는 방법을 몰랐고 노동 감독관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녹을 받는 사람들은 문제를 크게 만들지 않고 최소화하는 선에서, 근로개선의 노력 없이 눈 앞의 문제만 처리했다. 노동자들의 분노 어린 노동청에의 신고는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노동청은 불친절했고 모욕과 수치스러운 대접으로 신청자들의 분노 게이지를 더더욱 높여 주었다. 

 

 그들의 오만하고 역겨운 상담 수준은 마치 신고자를 죄인처럼 대하거나 최소한 수치스럽게 화나게 만들어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여길 만큼 신경질적이고 짜증이 묻어났다. 오히려 교육을 받고 개선 지도를 받아야 할 자들이었다. 노동자의 일을 모르니 삶을 이해하지 못했고 오히려 관리자나 회사의 편에 서서 일하는 것처럼 무시와 기만이 심했던 것을 여러 번 경험했던 터였다. 거기에, 일처리는 항상 뭔가 아쉬운 구석이 남았다. 


 퇴사를 하고 대우 중공업으로 가기 위해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하고 장승포에 숙소를 배정받았다. 낚시를 다니며 여유를 부렸다. 산행도 가고 자연 속에서 쇳가루 먼지에 투박해진 머리를 정리하고 고용노동부에 진정할 내용들을 정리했다. 


 나는 거제 터 의원이 삼성에 들어가기 위해 3개월에 한 번씩 배치 전 건강검진을 시행하는 것에 대해 노동부를 통해 불법여부를 문의했다. 삼성중공업과 다른 중공업의 검진 기간이 다른 이유를 물었다. 담당자를 바꾸어 주었다. 


“네~, 산재예방 지도과입니다. 건강검진 관련 전화 주셨다구요?”


“네 맞습니다. 조선소 입사 관련 건강검진이 삼성중공업에서 3개월에 한 번씩 진행되던데요……”


“3개월에 한 번씩요? 아니 무슨 일을 하시는데요? 용접일을 하시나요?”


“용접이 아니고 배관이나 발판 설치 작업을 하는데요, 삼성은 3개월에 한 번씩 검진을 받는데……”


“왜 그렇죠? 산업안전보건법엔 그런 게 없는데요.”


“없는 거죠? 더구나, 채용 표준 표도 대우나 현대가 문제 삼지 않는 것을 삼성은 임의대로 까다롭게 정해서 재검을 받게 하고 비용을 더 받는 데다, 마지막으로 의사 소견서까지 써오게 하더군요. 그렇게 해서 들어가는 비용이 10여만 원 가까이 됩니다. 이 비용은 고용주가 지불해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조선소 특성상, 먼지가 나는 작업이나 소음이나 분진에 노출이 많이 됩니다. 그래서 건강검진을 해오라는 것은 아마 ‘배치 전 건강검진’은 받아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그런데 그 비용은 사업주가 부담해야 합니다.”


“제가 외국 살다 한국 조선소에 와서 지금까지 10군데 업체를 더 다녔는데 한 번도 사업주가 낸 적이 없이 제가 다 냈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어서 개인 비용으로 지불했습니다. 6개월이 넘어야지만 재검해야 하는 것도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삼성만 따로 정해서 내부규정으로 만들어 놓은 것은 불법입니까?”


“그건 제가 잘 모르겠습니다. 왜 그렇게 하는지는 모르겠고 제가 알고 있는 것은 산업안전보건법 상의 사업주의 의무만 알고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잘 알겠습니다. 이것을 신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노동청에 오셔서 신고를 하셔도 되고 인터넷으로 해 주셔도 됩니다. 접수 후에 조사 실시합니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주머니에 손 넣었다고 해고당한 후배와 같은 날, 통영 노동청을 방문하기로 했다. 




*** 대우조선해양(DSME)으로

대우조선 해양

 

 그날로부터 삼성중공업을 그만두고 낚시를 즐기고 산행을 즐겼다. 이번엔 배관 조공을 하기 위해 대우조선해양으로 들어갔다. 삼성과 대우가 나눠가진 6조짜리 공사로 프랑스 토탈 사와 일본 합작 글로벌 선주회사 ‘인펙스’의 ‘이치스(Ichthys) 프로젝트 중, 부유식 생산설비(FPSO)를 만드는 현장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처음이었다. 

 사실, 경상도 사천이 고향이라 거제도가 지척에 있으면서도 한 번도 와 볼 생각을 하지 못했던 곳, 스무 해 까지만 해도 말로만 듣던, 거제도 가면 엄청 큰 조선소가 있다는 정도였다. 


 대우조선엔 별 미친놈이라고 생각되는 안전 강사가 한 명 있었다. 조윤재라고 했다. 너무나 악명 높아 대우조선해양 하면 그 명성보다 조 윤재가 먼저 떠오른다며 ‘미친놈’이란 타이틀을 지닌 자였다. 노동자의 시선이나 대중의 시선, 중립적인 입장이 아니라 개인적인 사견을 정의인 것처럼 얘기하는 그의 강의는 그야말로 들어주기가 고역이었다. 하루에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들어와서 하는 교육은 사람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조 윤재 강사는, 자신의 의지에 반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마이크를 들고 공개적으로 모욕을 주며 욕을 하는 가 하면, 4백 명씩 안전 교육을 받고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1년 후에 보면 아무도 없다는 그 명백한 이유는 자본의 ‘노동의 불안정화로 인한 임금 동결과 착취의 산물’이지, 인내가 없거나 처절한 삶의 간절함이 부족한 탓이 아니었다. 숙소를 개 집처럼 쓰다 가는 사람들은 그런 대접을 받았기 때문이지 원래 그래서가 아니었음에도 자기 회사에 일하러 온 노동자들을 개돼지 취급하는 강사를 대우 현장에 들어가서 처음 만난다는 것은 재수 없는 일이었다. 앞으로 만날 더 많은 인간쓰레기들보다 그를 먼저 만난 것은 대우조선해양의 불운이었다. 


“오늘 안전교육장을 채운 400여분을 보니 여러 번 뵌 분도 있는 것 같네요. 조선소에 처음 오신 분 손 들어보세요?


여러 사람이 손을 들었다.


“여러분 이렇게 현장에 오셔서 대부분 한 달 못 버티고 90%가 나갑니다. 삼성과 현대를 떠돌다가 다시 돌아오죠. 여기나 저기나 다를 거 하나도 없는데 누가 일당 1만 원 더 준다면 혹해서 떠났다가 마음에 안 들면 대판 싸우고 다시 옮겨 다니기를 되풀이합니다. 대우조선은 다른 사업장보다 조건이나 여건이 아주 좋습니다. 여러분의 복지를 위한 사측의 혜택이 많습니다. 잠수함 건조 기술 능력이 세계 최고입니다. 그래서 대우해양조선은 국가 기관 보안 시설로 지정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혹시, 현장에 들어간 팀장들 정보 제대로 알고 있습니까? 요새, 팀원들 일당 떼먹고 도망가는 팀장들 많으니 정확한 정보 가지고 계셔야 합니다. 요새 보니 별의별 팀장들이 다 있습니다. 조선소 남문 앞에 나가면 인력회사가 있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 명함을 주길래 보니, 영업 이사, 기술 전무 같은 직책이 적혀 있길래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조그만 인력회사가 대기업 흉내 내면서 노동자들 인건비 따먹고 고혈을 뽑아 먹는 자들이 대기업 흉내 내고 있으니 말세도 이런 말세가 없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숙소 사용하는 거, 저희 대우에도 민원 들어옵니다. 제발 인간답게 생활 좀 하십시오 네?”


그는 이어, 삼성이 대우의 인력들을 빼내가는 과정과 노동자들의 더러운 마음을 비난하며 자신의 고결한 인격을 내세웠고 결론은 대우조선해양의 위대한 발전이 있을 것이므로 열심히 일하면 좋은 날이 있을 거라는 감언이설로 귀를 가증스럽게 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말은 ‘개소리’였다.


 사람들의 유동인원이 많은 것은 현장 업무가 힘든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더 힘들게 만들며 갑질을 하는 데다 힘들고 아니꼬워도 참고 일하고 싶은 마음을 넘어 그 정도가 심했다. 그런 그들에게 소속감이나 책임감을 요구하는 회사는 최소한의 조치나 인력 유출 방지 시스템을 구축했어야 했지만 아무것도 없이 갑질을 방조하고 있었다. 


 현장이 원래 이런 거라면서 자신들이 가해자인 줄 모르고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노동자들이 인간대접 못 받고 왔다가 떠나는 숙소에, 하찮은 대우를 받은 인간의 본성을 남겨두고 가는 것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건물주들이 와서 쓰레기 분리수거로 잔소리하고 불쑥 방으로 찾아와 점검한다면서 잔소리하고 다니는 숙소엔, 노동자들의 옷과 이불 등의 생활필수품뿐, 책상과 의자, 식사할 탁자도 구비되지 않은 비바람 피할 상업시설일 뿐, 인간적인 가치를 느낄 만한 어느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대우조선에는 노동조합에서도 1시간 교육을 실시했다. 노조 강사는 친절하게 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설명했고 신입 교육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강사의 말은 시원시원했고 노조를 통하면 억울한 일들 중에도 협력업체로부터 부당하게 받지 못하는 돈, 착취당한 노동력에 대한 권리, 부당한 업무에 대한 거부의 권리 등을 알려주었으나 신선하기는 했어도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끔씩 강조를 위해 어투에 힘을 주는 행위 외에도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을 두 번 강조해서 하는 말이 일반인들에게 어색하게 전달되었다. 노조는 그렇게 교육받는 모양이었다.

 

 조 윤재 강사는 노조의 혜택을 받을 텐데도 불구하고 노조를 욕했다. 사람이 할 짓 중에 제일 몹쓸 짓이 동료들 배반하고 뒤에서 욕지거리하는 일일 텐데 그는 서슴지 않고 노조를 욕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과 지능, 감성을 가진 자가 대우조선 대문을 지키며 일하러 온 사람들에게 첫인사를 하는 모양이 한심했다. 


 회사에 대한 충성을 위해, 자신의 급여의 정당성을 위해 싸우는 노조를 욕하는 자가 회사의 충성스러운 개가 될지언정, 노동자들의 친구가 될 수는 없었다. 전지전능하신 회사에서 비리로 수억 씩 해 먹고 자신에게 떨어지는 월급이 반 토막 나도 싸워주고 권리를 챙겨주는 사람은 노조였다. 그런 동료를 욕하는 자가 일을 잘하면 뭘 하고 말을 잘하면 뭐하리! 


 나는, 같은 팀에 들어가게 될 처음 만난 사람들과 그 말도 안 되는 재수 없는 안전 교육을 받고(왜 하는지도 모르는) 인펙스에서 진행하는 안전 교육을 다시 받아야 했다. 중요한 것은, 대우조선해양에서 받는 안전교육 일은 하루 종일 받음에도 불구하고 인펙스에서 받은 임금이 노동자들에게는 지급되지 않았다. 인펙스의 안전교육은 배가 만들어지는 과정, 어디로 가는지, 가격은 얼마인지, 계약기간은 언제까지인지 등등의 시시콜콜한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곳엔 외국인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물어보니 대우조선해양에 고용된 프랑스 인이었다. 그는 시운전 전문요원으로 실수령 3천 유로에 차량과 아파트 제공해서 총 6천 유로 정도의 급여를 받는다고 했다. 내가 아는 정보로는 적은 액수였음에도 그는 자부심이 강했다. 프렌치들은 영국인들에 비해 급여가 형편없었음에도 부러워하지 않았다. 물론, 제공받는 아파트는 일반 아파트가 아닌 최고급에 연예인이 살 법한 큰 거실에 방 세 칸이 기본이었다. 그러나, 대우가 고용한 대우는 어찌 되는지 알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프랑스의 기술력이 얼마나 대단한 지, 테크닙이 세계 제1의 엔지니어링 회사이고 시운전만 전문으로 하는 악트미움(Actemium, 전 Cegelec), 정유회사 Total과 그 자회사였던 GTT까지 무수히 많았고 인펙스 대부분의 매니저들이 프랑스 사람이라고 했다. 나이만 먹었지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아무것도 모르는 그저 ‘우물 안 개구락지’에 불과했다.


이치스 프로젝트 노동자들의 휴식

 


 새로 들어간 팀도 거실을 침실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침대는 없고 이불과 베개를 개인이 구비해야 했다. 안전교육을 위한 대기기간이 길었다. 시험도 친다고 했다. 초보 보조공을 위한 시험을 친다니 이 얼마나 웃긴 짓을 하는지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 바로 돈을 빼돌리기 위한 비리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조공을 기술공으로 등록하면 더 많은 인건비를 받기 때문에 시행하는 시험이었지만 시험지와 테스트 과목들도 누출됐다. 아무 의미 없는 짓을 사측은 했고 경비를 낭비했다.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어떻게든 합격시켰다. 정상적인 사업장이 아니었다. 



*** 이치스(Ichthys) 프로젝트



 배관 일은 족장에 비해 작업하기가 수월했다. 딱 두 명씩 기공(기술공)과 조공(보조공)이 조를 맞춰 하루 할당량을 해내고 보고서를 써내는 비교적 눈에 보이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기술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나마 힘든 일은 무거운 배관을 드는 것이었음에도 장비의 도움으로 힘들이지 않고 작업이 가능한 일들이었다. 사람들도 족장에 비해 마음에 들었고 여유도 있었다.

 

 이번에 들어간 팀장은 고작 나이 서른에 50여 명의 일꾼을 데리고 있는 규모가 큰 팀이었다. 용접사들도 한 팀을 이루고 있을 정도로 위세가 등등했고 팀원들은 3개 조로 나뉘어 아침 조회를 했다. 협력업체는 보통 300여 명의 일꾼들이 있는데, 한 팀이 50명 이상을 통솔하면 엄청 큰 데다 큰돈을 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선소의 해양 물량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고 인펙스도 프로젝트 성공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인원이 많은 데다 각 팀 별로 나누다 보니 새롭게 온 사람들끼리 팀을 이뤘는데 팀원들도 지금까지 만났던 사람들에 비해 너무 양호하고 좋았다. 족장만 이상한 사람들이었을까…… 일이 험하다 보니 사람들마저 험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배관을 하는 사람들은 여유가 있었고 그나마 인간적인 유대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처음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작업 3일째 되던 날, 같이 안전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라 내가 프렌치랑 거리낌 없이 대화하는 것을 지켜본 동료들이라, 내 정체를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비밀을 즐기기에 충분했다. 매일 일에 쫓기다가 느닷없이 찾아온 여유에 ‘배관 마음에 든다’며 기술을 배워 볼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중에 벌어먹고 살려면 뭐라도 배워 두는 게 좋다면 배관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쨌건 새로운 사람으로 한 팀이 된 셋이 아직 모듈이 올라오기 전인 톱 사이드에 올라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있을 때였다. 외국인 하나가 길을 못 찾고 무심결에 우리에게,


“저 반대편으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나요?”


하고 물었는데 나도 얼떨결에,


“오늘 도착해서 아는 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라고 답하고 물어서 대답을 해주니 영어를 잘한다고 어디서 배웠느냐 물었다! 영어 못하고 불어 잘한다고 하니 자기도 프렌치라 우리는 졸지에 또 프랑스어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가 내 불어가 프랑스 외인부대에서 배우게 된 사실을 알게 되자, 이곳에 외인부대 출신의 안전 매니저가 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내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4일째 되던 날, 결근을 하고 선주사들 사무실이 있는 ‘지원센터’로 향했다. 인펙스의 안전 매니저와 통화해서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요청이 있었는 데다, 어차피 일당 업무로 일하는 협력업체의 하청인 팀에서 결근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있다면 3일 동안 무단결근 시, 퇴사 조치하거나 징계를 내리는데 절차 없이 그냥 반장이나 팀장 손에서 잘렸다. 그러기 위해 둔 팀장 제도라는 걸 삼척동자도 알 수 있었다. 다쳐도 협력회사나 원청의 개입 없이 모든 책임을 팀장이 졌다. 삼성중공업과의 차이점이 있다면, 인력이 필요하면 결근을 밥 먹듯 해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나는 지원센터가 있는 대우조선해양 정문의 근사한 유리 건물 쪽으로 물어 물어 사내 버스를 타고 갔다. 대우조선해양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도 엄청 넓었다. 현대중공업은 해양 파트에서만 잠깐 있었을 뿐이지 처음 지어졌던 미포 조선소는 시내버스를 타고 한참을 중공업 담만 보고 갔던 기억이 있었는데도 대우조선도 엄청나게 넓었다. 


 거제에 들리는 소문으로는 대우조선해양이 해양 파트에 뛰어들어 한국 조선 3사와의 경쟁이 본격화되었고 입찰 수준이 폭락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이치스라 했다. 


 대우의 사장단이 눈에 보이는 실적을 내기 위한 무리한 수주경쟁은 30%까지의 수주 폭락으로 이어졌고 이익을 남기기 위한 사장단은 분식회계를 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대우의 사외 이사에는 MB 정부의 사진사, 운전수까지 포함해 연봉 1억씩 받았고 그 정부의 사기질을 위해 애썼던 여러 인사들이 대우조선해양의 녹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터였다.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


 노동자들은 대우 조선을 그렇게 불렀다. 

주인이 없어서 개판이라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주인이 있어서 관리 감독 감시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주인 없으면 도둑질하고 일을 엉망으로 한다는 자기 비하가 아닌가? 오히려 주인이 없으면 내가 주인이 되면 되지 않는가는 생각하지 않고 자기 모독적인 발언을 하면서 손가락질하는 것은 스스로가 노예라고 인정하는 꼴이 아닌가! 이런 처절하도록 불쌍한 노예들에게 무슨 복지를 챙겨주고 어떤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과연 노동자들은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을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비하면 행정과 관리가 엉망이라고 비웃고 손가락질했다. 더욱이 이곳엔 눈먼 돈들이 많아 머리 회전 빠르고 어느 정도 경력과 위치만 있으면 인맥과 지연으로 한몫 챙길 수 있다는 얘기도 전염병처럼 돌았다. 물론, 거기엔 뛰어난 협상 능력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며 나눠 먹었다. 


 조선 업계는 선주사와 직접 계약을 맺는 턴키 방식의 계약 외에도 기술력도 없는, 설계, 구매, 시운전까지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시공사와 사내 협력업체, 사외 협력업체, 그리고 선주사 물량으로, 시공사가 개입하지 못하는 다양한 첨단 분야의 먹거리에서부터 부동산 임대, 차량 임대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능포와 장승포, 옥포 만의 아름다운 바다와 옥녀봉과 국화봉을 지척에 둔 천혜의 자연경관이 만들어 낸 여유로운 풍경 속에 몽돌 해변과 바람의 언덕으로 이어지는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이 삭막한 조선소의 풍경과 는 대조되었지만 주말을 이용한 다양한 문화생활이 거제도의 일상을 풍요롭게 했다. 


 이곳에 뿌리내려 정착할 만한 전문성 있는 직장을 구할 수 있으면 이곳에 살아봐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았다. 프랑스라는 삶의 터전이 있었고 환경이 나아져 파리에서 사업을 재개할 수 있는 아이템이 있으면 언제든 파리로 날아갈 생각뿐이었기 때문에, 거제도의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타이트하게 짜인 노동의 고단함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즐겨야 할 삶의 여유보다는 어디에서도 인정받을 수 없는 하루살이 노동자, 정직하게 돈 벌어서는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도는 다람쥐’ 신세가, 한 몫 챙길 수 있는 방법은 도저히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어느 분야의 일이든 관리자들은 노동자들의 여유를 보장하지 않았고 쉬는 시간 이외는 단 한순간도 업무에서 벗어나길 원치 않았다. 노동조합이 강성인 대우조선해양도 삼성과 똑같은 노동시간과 간섭이 협력회사와 물량 팀장, 반장들에 의해 이뤄졌기 때문에 상황은 아무것도 나아지는 게 없었다. 


 그런데, 대우조선해양은 8시 10분 전에 조회를 시작했다. 점심 이후에도 10분 전에 체조를 시작했기 때문에 삼성에 비해 엄청나게 여유 있는 듯한 시각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었다. 오전의 그 20분이 전해주는 실질적인 여유는 커피 한 잔을 마시고 바삐 서두르지 않아도 되는 걸어가는 여유를 준다는 게 신기했다. 그 짧은 여유가 큰 것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의 관리도 한결 여유로웠다. 이만하면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으로 보기엔 아름다운 대우조선해양 옥포 풍경.

 

 지원센터는 멀리서도 보이는 근사한 현대식 건축물이었다. 사무실이 있는 5층에 올라가기 전에 여유롭게 담배를 한 대 폈다. 이치스 프로젝트를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일본과 호주 회사가 합작하는 프로젝트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안전교육을 받을 때도 그렇게 들었던 것 같았는데 프랑스 토탈과 합작이라니 의외였다. 나는 5층으로 올라가 안전 매니저를 찾았다. 키가 큰 프랑스인이 나를 보고 웃었다. 내가 오른쪽 허벅지를 소리 나게 치며 인사하자 그도 그렇게 인사를 받았다. 베레나 군모, 총을 들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할 때, 오른쪽 허벅지를 내려치면서 고개를 쳐들어 눈을 마주치는 외인부대 식 인사 방법이었다. 


“봉쥬르 몽 깨피땐!”


“봉쥬르 마쑤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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