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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May 10. 2019

배치 전 건강검진 비용

거제 터의원 배치전 건강검진



*** 거제 터의원 그리고 고용노동부



 삼성 중공업에 들어가기 위해 나는 건강 채용 검진을 받았었다. 7만 원이었다. 

거제도 터 의원에는 삼성중공업이나 대우중공업, 현대중공업으로 가기 위해 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다른 하청업체인 세진중공업이나 신한 중공업, STX 중공업 같은 곳엔 가본 적이 없어 건강검진이 필요한지 몰랐다. 그동안 알제리에 프랑스어 통역을 위해 다녔던 회사들에서도 병원은 다녀왔어도 개인비용으로 처리되는지는 알지 못했고 검진이 까다롭지도 않았다. 그러나, 한국 빅 3 조선에 들어가려면 까다로운 건강검진과 재검, 체력검사를 거쳐야 했다.


 거제도 삼성 중공업 앞에 있는 ‘거제 터 의원’에서 돈을 주고 검진을 받았던 터였다.

그 많은 인원은 일사불란한 직원들의 통솔 하에, 잠시의 틈도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다. 팔목에 이름이 적힌 띠를 두르고 검진비용을 지불하면 3층으로 올라가 채용검진을 받았다. 검진은 ‘조선소 배치 전 건강검진’이란 이름으로 산업안전보건법에 의한 법으로 진행되었다. 직원은 내게 


“삼성으로 가시나요? 대우로 가시나요?” 하고 물었다.


 그리고 무슨 일을 하는지도 적어야 했다. 나는 그것이 지극히 당연한 절차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그러한 경험을 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조선소 들어가는 게 이렇게 까다로웠나 하는 생각에 뭐 대단한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 일당 십만 원에 숙식이 제공되는 혜택이 조선업의 위험을 감수해도 될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인가에 대한 의문은 들지 않았다. 숙식제공의 걱정 없이 푼돈이라도 벌고 싶은 욕심과 무엇이라도 해야 한다는 궁지에 몰려 있었던 탓이었다. 


 직원들이 안내하는 대로, 신체검사를 받고 시력, 악력, 혈액, 소변 검사와 가래까지 뱉어 객담 보관소에 넣어둔 뒤에 다음 검사를 위해 대기 중이었다. 대기자들 중에는 외국에서 온 노동자들도 다수 보였다. 조선족도 있었고 동남아나 우즈베키스탄, 그리고 국적을 알 수 없는 나라에서 온 친구들이 대기자 명단에서 호명하는 순서에 따라 검진을 받으러 들어갔다. 대부분 여직원들은 큰 소리로 검진 방법을 알리기 위해 고함을 쳤다. 그 속에서 내 이름이 불려지는 게 싫었다. 마치 궁지에 몰려, 조용히 숨고 싶은데 누군가 눈치도 없이 큰 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사람들 앞에 모욕을 보이는 것처럼 목소리가 우렁찼다. 


 방사선과에서 이름을 불렀다. 시키는 대로 해도 마음에 안 드는지, 자세를 교정하고 사진을 찍었다. 심전도 검사를 받고, 청력 검사를 받고 다시 방사선 검사를 끝으로 검진은 끝났다. 카운터 직원은 마지막으로 의사 진단을 받아보라며 다시 대기시켰다. 나는 이 검진 과정과 용도가 정말 궁금했다. 의사가 조선소의 이력을 물었다. 발판 경력을 얘기했다. 그는 이전에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오로지 할 일과 경력이 얼마나 되었는지를 묻곤 이전에 병력이 어떻게 되는지를 묻곤 컴퓨터에 입력했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네, 여쭤보세요”


“삼성 중공업에 들어가려면 3개월에 한 번씩 채용 건강검진을 받아야 하는데, 다른 곳에선 6개월인데 정상인가요?”


“…… 오히려 6개월에 한 번씩 하는 게 더 이상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법에 따라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의사가 간략하게 답하곤 더 이상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듯, ‘됐습니다. 가보세요’라고 말했다. 

다음날, 건강검진 결과가 나오고 팀장에게 전해주자 다음날 다시 연락이 와 혈당과 청력에 문제가 있으니 재검을 받으라고 했다. 재검을 받는 비용이 21,470원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통과가 되었으나 이번에는 심전도에 문제가 있으니 의사 소견서를 받아오라고 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의사는 가족의 병력을 물으며 소견서를 작성해주었다. 25,000원을 지불하라고 했다. 이제 화가 났다. 모멸감과 함께 혐오스러운 감정이 퍼졌다. 특수 건강검진란에 작업환경에 노출되는 시간을 8시간이라고 적은 것을 보고 '아침 8~12시, 오후 1~6시면 9시간 작업환경 노출인데 왜 8시간이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작성한다"고만 대답했다. 아직 국가가 미개한 터라 점심을 업무에 포함하지 않더라도 9시간 업무시간을 8시간이라고 눈속임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 노동부 통영지청의 산재예방 지도과의 한 담당자는 이 질문에 불편하다는 듯 째려보면서 짜증을 잔뜩 담아 민원인을 대했다. 지난 번에, 배치전 건강검진 건을 각 협력업체에 뿌려, 검진 비용이 사측이 처리해야 할 비용이라는 업무에 대해서 자상하고 친절한 안내를 해주었었다.


 팀장은 곧 체력 테스트 날짜가 잡혔다고 했다. 


 삼성중공업뿐만 아니라, 한국의 조선소는 누구나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인데도 퇴사하기 전 발생한 질병에 관해선 거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한 산재를 회피하기 위해 이런 병원들이 기업 편에 앞장서서 문제가 될 만한 사람들을 미리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게다가, 몇몇 주요 정직원들을 제외한 나머지 시급이라 불리는 최저시급 직원들의 퇴직금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꼼수를 부렸다. 1년 전에 퇴사시키고 재입사시키는 방법이었다. 처자식을 부양하기 위한 가장의 노력은 그러한 꼼수에도 불만을 가질 뿐, 꼼짝없이 당했다. 그것이 사람을 고용하는 기본 원칙이고 가족과 같은 처우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야 말로 회사 발전의 기본임에도 불구하고 기업과 얽힌 주변 상황들이 반대로 성장해 왔던 것이다. 사람이 소중한 가치가 우선되지 않은 세계 최대의 조선소에서의 질병과 사고 처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다.


거제 터 의원

 

 삼성중공업은 체력테스트를 받고 안전교육을 받아야 했는데 장평동 삼성중공업 휴센터에서 이루어졌다. 체력 테스트는 약 40cm 높이의 단을 3분 동안 오르내리고 윗몸일으키기 15회, 여성은 7회, 마지막으로 발을 모으고 뒷짐을 쥔 자세에서 그대로 발꿈치가 들리지 않게끔 앉았다 일어서면 끝이었다. 마지막 테스트에서 여럿이 탈락했다. 체력테스트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중공업 생활을 하는데 어떤 혜택이 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었고 이해도 되지 않았다. 현장 작업과 전혀 무관한 테스트라는 생각이 들면서 2시간 정도의 테스트를 위해 하루를 버렸다는 기분 나쁜 생각이 엄습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중공업이길래 이런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 날, 하루 종일 법정 8시간 안전교육을 받고 숙소에서 사용할 이불과 베개를 사는데 10여만 원, 또 자전거를 의무적으로 사는데 14만 원이 들었다. 더욱이, 6개월 이상 근무하지 않으면 작업복 지급한 비용도 급여에서 공제한다고 말했고 실제로 급여에서 공제했다. 그야말로 선택의 여지없는 강매에 악덕기업이 따로 없는 지옥 같은 현장에 투입되어 2개월이 지난 터였다. 


 급여는 회사에서 기본급 7만 원으로 계산해서 주었고 모든 보험을 떼고 나면, 물량 팀장에게서 다시 급여가 들어오면서 다시 4대 보험을 뗐다. 이중으로 보험이 떼이고 피복 값과 자전거 비용, 출근 미타각에 퇴근 때도 두 번이나 타각 하지 않았다고 0.5로 포함해서 급여에서 빼니 개같이 일하고 월 급여가 200이 채 못되었다. 삼성중공업은 아침에 타각 하지 않아도 아침 조회 때 출석체크를 했고 출입증으로 아침, 점심, 저녁 모두 타각을 해야 했으므로 결근 처리가 될 수 없음에도 협력업체 출퇴근부에 타각 하지 않았다고 급여에서 공제했다. 


 원하지 않음에도 강제로 단체 사진을 오전, 오후, 야간으로 찍어야 했고 반장이 실시간으로 사무실에 보고했음에도 급여에서 공제했다. 더욱이, 야간작업은 두 시간 반이면 0.5 공수가 노동부의 의무인데도 시급으로 15,000원을 지급했다. 퇴사를 위해 방문한 사무실에서도 근무수를 확인했다. 나는 이 모두를 기록해서 고용노동부 통영지청에 고발했다. 


 며칠 후, 하성 기업에서 연락이 왔다. 총무부의 과장이라고 했다. 


“왜 노동부에 신고했습니까? 하성 기업에 불이익을 주려는 악의적 고발 아닙니까?”


“……?”


 과장이 말하는 목소리 저편에 악의에 찬 감정이 드러났다. 마치, 주면 주는 대로 받지 무슨 발악이냐는 뜻으로 들렸다. 그의 이름을 묻자 대답하지 않았다. 내가 받지 못한 30만 원은 세금으로 들어갔다고 한 푼도 받지 못했고 출퇴근에서 지불하지 않았던 금액만 포함해서 받았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리고 업무 처리 완료를 요구하는 통영지청의 노동 감독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는 방문을 하겠다고 약속을 잡았다. 그리고 다시, 물량 팀장에게서 연락이 왔고 형이라고 부르던 호칭에서 훈육하듯 욕을 하곤 죄인 다루듯 했다. 


“보세요, 전준호 씨. 이게 뭐 하는 짓입니까? 아 씨 진짜! 짜증 나 죽겠네! 회사를 노동부에 신고하면 나는 뭐가 됩니까? 그리 살랍니까?”


 이는 대부분의 물량 팀들의 공통된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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