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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3. 2019

거제도 옥포의 밤거리

미스트 굿바를 찾아서


*** 거제시 옥포동


 미군기지가 있는 용산의 저녁은 외출 나온 군인들을 유혹하는 바들이 밤이면 불야성을 이루었다. 그러한 바들은 저자가 외인부대 생활 동안 경험했던 아프리카에도 많아서 잘 알고 있었지만 아프리카에선 외인부대원을 상대로 눈탱이 치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곳곳에선 한 번 잘못 들어갔다간 좋은 술 마시고 기분을 망치기 일쑤였다. 야하게 차려 입은 세계 각국의 여자들이 비싼 술을 얻어 마시고 계속 한잔 더, 한잔 더 노래를 불렀기 때문에 거기에 넘어가면 눈탱이 맞고 호구되기 십상이었다. 그런 곳이 가장 많은 곳이 용산이나 울산, 거제에 많았다. 다행히 한국인들은 그런 바를 좋아하지 않아 돈 많은 선주사 엔지니어들이 즐겨 찾았다.


 그러나 미군 사병의 급여는 고작 파병 수당 포함한 4백 여만에 불과해서, 그런 여자들을 상대로 펑펑 써가며 술을 퍼 마실 순 없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매상을 올리기 위해, 온갖 교태를 부리며 군인들과 남자들의 주머니를 그렇게 노리면서도 남자들의 심리를 잘 이용했다. 한 번 가보면 두 번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없게 만드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용산의 전반 적인 바 거리와는 달리, 옥포의 바 거리는 선주사들을 상대로 했다.


한때 옥포에서 제일 유명했던 바였던 '정비소'



 선주사 엔지니어들과 테크니션들은 용산의 가난한 군인들과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급여를 받았다. 또한 전 세계의 조선소와 플랜트 현장을 다니면서 잔뼈가 굵었기 때문에, 현지 여자들을 상대하는 방법이 남달랐다. 바를 운영하는 한국 여자들은 상대 외국인이 엔지니어인지 매니저인지, 계약직인지 정직원인지 알 수가 없었고, 외국인들은 흥청망청 돈을 쓰는 애들이 많지 않았기에 좋은 매너와 유쾌한 유머에 넘어갔다.


 그렇게 동거를 하고 지내다가 그들의 나라에 들어가보면 계약직에 프로젝트 끝나면 백수가 되는 친구들 틈에서 어떻게든 살아보려다 되돌아 오는 여자들도 있었고 아이까지 낳아 오는 여자도 있었다. 더군다나, 항상 바를 떠돌던 선주사나 밴드 친구들이라 다른 곳에 가서도 바를 전전하며 쉽게 여자를 만나 유희를 즐기는 남자들에 적응하지 못하고 돌아오는 여자들도 있었다. 그런 여자들은 영어를 잘한다는 자부심과 외국인들과 어울린다는 자긍심이 강했다..


 어떤 핀란드 매니저와 결혼해서 살던 여자가 남편에게 버림 받고 바를 차렸다. 자신이 매니저와 결혼 했기 때문에, 또 다른 매니저 급을 만나 결혼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에 가득 차 있었다. 그럼에도 외롭다고 말하는 그녀의 의식은 단지 잘 가꾼 몸매와 매력적인 미모만으로도 자신이 넘쳤다. 그런 그녀에게 흑인 매니저 친구를 소개시켜 주자, 화를 내며 하는 말이, 어떻게 자기처럼 매니저의 부인이었던 가치 있는 여자에게 흑인을 소개시키는 짓을 할 수 있느냐는 게 이유였다.


 외국인 엔지니어와 결혼했던 젊은 여자도 바를 차렸다. 나이 많은 사람을 가르치려 드는 그녀는 자신의 발언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 상대가 누구든 말을 자르고 자기 주장을 펼치는, 도저히 봐주기도 들어주기도 힘들 정도의 멘탈을 가진 여자였다. 외국까지 따라가서 정성을 다해 남편을 모셨지만 갈라섰다고 말했다. 앞에 대 놓고 말할 수 없었지만, 남자 기 죽이고 대화를 하고 싶지 않을 정도의 마인드라 아는 체 하기가 두려울 정도였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자부심과 자기 주장이 너무 강한 자긍심은 왜, 남자들이 자신을 싫어하는지는 모른 채, 새롭게 만난 외국인들과 염문을 뿌리기에 바쁘면서도 혼자 바의 비싼 와인들을 축냈다.


옥포에서 제일 핫한 바, 다운타운의 생일 파티쇼를 주인이 직접 보여준다.



 옥포의 유명한 바 거리는 건전하게 술 값 걱정 없이 한 잔 할 수 있는 거리와, 필리핀이나 러시아에서 온 여자들이 술 시중을 드는 바로 분류했다. 외국 여자들을 접대부로 둔 술집에 들어가면 필히, 눈탱이 맞을 각오를 하거나, 눈탱이를 맞지 않을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야 했다. 나는 그런 눈탱이를 맞진 않았지만 끊임없이 달려 들어 한잔 더 사달라는 애들의 예쁜 얼굴 뒤에 남자들을 바보로 아는 숨겨진 상술이 하수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여자와 자고 싶어하는 욕구는 인류 탄생부터 매춘을 만들었으니, 술 매상을 올리기 위해 교태를 부리는 여자들 옆에서 한 두잔 사주는 건 어렵지 않아도 계속 요구하는 것은, 나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닌 돈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히려 반감을 사는 일임에도 그런 상술은 하수 중에서도 하수였고, 손님의 발길을 후회하게 만드는 것을 주인들이 알 텐데도 그런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쳐다 보기도 싫게 만들어 금방 소문이 났다.


 그러나, 외국인 남자들을 하나씩 물고 나온 여자들은, 반가워서 하는 인사에도 모르는 체를 했다. 그 바닥에선 술 마실 땐 아는 체 해도 밖에서 만나면 모르는 체 해야 하는 것이 도리인 것 같았다. 그건 여성성에 대한 가치마저도 저하시키는 행위라는 생각이 들어 확고해졌다.


 프렌치 친구들은 각 바들의 특징과 옆에 달라 붙어 돈을 뜯어 먹는 방식에 대해 혀를 차며 황당해 했다. 마음을 얻지 못한 술집은 그렇게 번창하다가 망할 것이 뻔했지만 그래도 번창하는 곳이 있었다. 바에 대해선 아는 것이 별로 없던 나는 친구들을 따라 다니면서 가지 말아야 할 곳들을 정리했다. 그러나, 좋은 곳인 데도 편견으로 가 보지 못했던 곳도 한 번 가보면 분위기가 축제 같았고 이전 바에서 만났던 친구들이 바 순회 다니듯 돌아 다녔다. 그러나, 웬만한 매니저 급들은 팀원들끼리가 아니면 조용한 바를 선호해서 자신들만의 나와바리를 구축해 두고 있었다.


 그러나, 바에서 일하는 건 즐거웠다. 그렇게 만나 결혼하기도 하고 바에 놀러 가서 만나 결혼한 여자들도 꽤 많았다. 외국인들을 자연스럽게 만나 얼마든지 편한 얘기가 나눌 수 있는 건전한 바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곳은 항상 외국인들로 붐볐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한국 에이전시에서 제공한 아파트나 레스토랑에서 파티를 하고 나면 모두 모이는 곳으로 유명한 바는, 술 값으로 장난을 치지도, 여자들이 와서 한 잔 사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기 때문에 걱정 없이 다른 나라 외국인들을 만나기에도 적합한 장소로 각광받았다.


 그 곳에 가면 아는 친구들이 꼭 한두 명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만나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곧 서울로 출근을 하면 오지 못할 옥포에서 나도 혼자 바 탐험을 나섰다. 여기저기 다니던 바에서 각국 친구들이 노는 모습에 그들이 지정한 나와바리가 하나씩 있는 게 보였다. 마지막으로 나는 가장 자주 가던 재즈 바엘 들렀다. 로랑이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면서 소개 시켜 준 곳이었다.


 그 곳엔 내가 프랑스에서 와인과 함께 제일 즐겨 먹는 살라미가 와인과 절묘한 조화를 이뤘기 때문에 일부러 찾는 곳이었다. 그리고 금요일 저녁만 되면 재즈 파티로 외국인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나는 테크닙에 엔지니어로 와 있는 베네주엘라 친구 오스왈도를 만나 반짝이는 머리에 키스를 하며


‘해이 브라더, 왜 케네디를 암살했어?’


라고 인사했다.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포옹했다.

부장급으로 일하는 필립과 인디언처럼 생긴 필리핀 여자 친구도 자리에 합석했다. 옆에는 토탈 사의 친구들이 쉽게 보기 힘든 미모의 한국 여자들과 미팅을 하고 있어서 눈짓으로만 인사했다.


재즈와 오스왈도


 떠들썩한 재즈 파티는 동네 바에서 운영하는 유일무이한 콘서트였기 때문에 연주가 끝나면 손님들이 빠져 나가고 조용한 시간이 찾아왔다. 두 명의 여주인이 자리에 합석했다. 5만원 같은 3만 원짜리 살라미 안주가 푸짐했고, 재즈 바 치고는 와인도 비싸지 않았음에도 평일의 손님이 많지 않은 이유가 있었다. 조그맣고 예쁜 고향친구의 자금을 내세워 재즈 바를 인수한 키 큰 친구가 혼자 와인을 꺼내 마시면서 손님들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었다.


 요리와 와인에 뛰어난 자질을 가진 친구의 치명적인 약점을 정작 자신만 알지 못했는데, 오스왈드와 연인관계에 있었다. 적응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였으니 손님들도 뜨악했던 것이고 나도 더 이상 말을 섞고 싶지 않았는데도 눈치를 못 채고 계속 자신의 주장을 듣는 것은 정말 고역이었다. 반면에 영어는 물론, 말 한마디도 거의 하지 않는 작은 여주인은 조명 아래 너무 아름다운 미모를 뽐내면서 숱한 외국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어 남자들이 줄을 섰다. 그렇게 그 둘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성격에 손님을 끄는 스타일과 쫓아내는 스타일이 부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룹으로 앉아있던 친구들과 한국 여자들이 섞여 담소를 와중에 친한 욘과 애들이 자리를 먼저 뜨자, 옆에 있던 여자가 황당해하면서 말했다.


“어머, 어머, 저 남자가 내 허벅지를 만지면서 오늘 같이 자자는데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요?”


 라며 당황해서 말했다. 같이 있는 자리에선 애교를 떨며 스킨십을 마다하지 않던 여자는 고등학교 영어 선생임을 자랑 했다.


 필립이 몇 일전에 동료 들과 같이 갔던 필리핀 여자들이 나오는 바에서 눈탱이를 당했다고 30만원, 50만원이 빠져 나간 은행 계좌를 보여주었다. 세 명이 갔는데, 셋 다 그렇게 빠져 나간 내역을 확인하고 그 바를 혼자 찾았다. 프렌치들은 술을 취할 정도로 마시지도 않는데다, 한잔씩 주문할 때마다 동시에 계산을 하기 때문에, 계좌 내역을 뽑았고 경찰서에 범죄 성립 여부를 묻고 그 바를 찾아갔다. 다행히, 남자 주인은 필리핀 여자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에 한 탕 하려고 그런 짓을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순순히 슈킹한 금액을 돌려주었다.


 다시 바로 돌아와 자정이 될 때까지 마시고 다른 바로 이동했다.

작은 여주인의 눈길이 뜨거웠다. 그녀의 말 없이 순종적인 조선의 미모를 가졌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영어가 됐으면 벌써, 근사한 남자를 만났을 것이라고 짐작하면서도 아이가 있는 돌싱은 외국인들과 결혼에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제대로 된 외국인과 만나 결혼하면 외국에서 교육은 물론, 성장 후의 먹고 사는 문제는 한국과 너무나 확연하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금요일의 재즈파티



 그러나 그녀, 정희는 외국 남자들과 한마디도 섞지 않았고 바르고 곧은 자세로 은은한 조명 아래,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다. 외국 남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볼을 쓰다듬고 싶고 만지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나도 은근히 기대를 했다. 그런 그녀가 나를 초롱한 눈빛으로 바라 보았다. 길거리에 서서 맥주를 마시면서 얘기하는데 내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자정을 넘기고 키 큰 여주인의 술기운이 올라 제 얘기만 하자 얼른 자리를 떠나려고 인사를 했다.


“야!”


정희가 느닷없이 나를 불렀다. 작고 소담스러워 찬란한 아름다움이 빛나던 그녀의 돌발적인 호칭과 단발마의 한 마디가 예상했던 여성스러움과 차이가 났다.


“응? 뭐?”


“니 죽을래?”


“뭐? 이기 오늘 고마. 빨리 가서 자라. 피곤타”


“라면 먹고 가라!”


“이기 미칬나! 이 시간에 뭔 라면이고!”


“안 따라 오면 죽는다”


 살기 위해 따라 갔다가 죽는 줄 알았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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