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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3. 2019

지방 노동 위원회

첫 출근과 지방노동위원회 부당해고 진정

 지리산 산행을 하고 있을 때, 지방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건으로 연락이 왔다. 

지방 노동위원회에서 절차를 거치는 과정을 처음 경험했기 때문에, 나는 어린 물량 팀장과 반장이 아니라 계약서를 맺은 협력업체 대표에게 진정을 제기한 것이었다. 지노위 조사관은 부당해고 건에 관해 협력업체 사장에게 물었고 당연히 사장은 알 리가 없다고 말하고 물량 팀장과 반장을 타고 내려가자 해고했던 반장이 걸렸던 것이다. 

 해고 이후, 회사의 다른 사람들에게 보고하고 부당해고 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모두 진정서 내용에 포함되어 있었지만 확인 차 물었다. 협력업체 물량 시스템이 팀장에게 권한이 몰려 있었고, 그 팀의 반장은 물량 팀장 사람이라 실질적인 물량 팀장의 권한을 행사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들끼리 사진을 돌려보고 합의해서 내린 결정이고 다른 쪽에 말해봤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입사하게 된 경위와 계약서 작성 여부를 다시 물었다. 


 나머지는 이전에 노동부에 진정했던 것과 다를 바 없는 절차여서 대답을 마치고 나자, 곧 지노위 결정에 참여해야 하니 협력업체와 연락해서 경위 파악을 하고 날짜를 정해 연락을 준다고 했다. 담당 조사관의 업무 처리가 빨랐다. 협력업체로부터 부당해고를 한 일이 없다는 말과 더불어, 밑에서 일어난 일이라 모르고 있었다는 답변서가 도착했던 것이다. 답변서에는 내가 일은 하지 않고 농땡이를 피웠고 숙소생활도 어울리지 않고 분란을 조장했으며,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내용의 동료들 진술서가 들어가 있었다. 


 그러나, 나는 협력업체 사장을 상대로, 해고의 권한이 없는 사람이 배에서 내려 집으로 가라는 명백한 녹취록을 가지고 있고, 또한 진술을 한 동료들은 반장과 친한 사람들이라 다른 사람들에게 현장 조사를 해보라고 요청하면서 삼성중공업 족장 팀에서 일했던 숙소비용 착복과 야간 수당, 작업복 비용 공제, 9월 1일에 퇴사를 했는데도 9월 23일까지 퇴사처리를 하지 않았던 사건도 포함하여, 관련 된 조사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같이 조사를 바란다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이어, 최근 급여가 250만원 이하였기 때문에 무료 노무사나 변호사 선임이 이뤄지고 있으니 신청서에 요청했다. 이렇게 완벽한 체계가 있는 것을 왜 몰랐을까? 이렇게 철두철미한 약자에 대한 보호 체계가 마련 되어 있는 것을 사람들은 왜 모르고 고작 팀장과 반장, 직장 동료 들의 갑질에 휘둘리며 살았을까……


 결과는 의외로 빨리 왔다. 

물량 팀장이 합의를 해줄 테니 진정을 취하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 사이, 숙소비용 조사는 근로기준법위반으로 처벌을 원하느냐고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처벌을 원하며, 숙소 비용과 배치전 검진비용 착복이 법 위반으로 처벌대상이 된다는 것을 조선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야 하기 위한 공익 목적을 분명히 했다. 


 물량 팀장이나 반장은 협력업체 사장의 지시를 하늘처럼 따르는 자들이었기 때문에, 같이 일하는 동료 들에게 저지르는 만행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처럼 역으로, 국가 노동기관을 통해, 노동부에 출석하거나 재판에 출석하라는 법적 처분을 두려워했으므로 업체 사장에게 300만원을 진정서 취하 비용으로 요청했다. 금액 지급에 동의했고 다음 날 바로 통장에 부당 해고 수당이 떨어졌다. 그러나, 추후 이 부분에 관한 어떤 문제를 제기하지 않되, 나머지 착복한 부분은 계속 조사를 하고 법적인 처분을 원한다고 밝혔다.


 일이 이렇게 진행되자, 그때까지 하늘 높은 줄 모르던 협력업체와 물량 팀장들의 기가 죽었고, 사람 하나 잘못 건드려 그들이 감추어 두었던 노동자의 권리와 사회 전반에 걸쳐, 탄탄한 조직력을 갖춘 정부기관의 업무와 역할에 대해 모르던 것을 알게 되었지만, 왜 노동자들이 이용하지 못하는지도 얼핏 이해하게 되었다. 자신의 권리인지도 몰랐고 신고할 방법도 몰랐던 데다, 성립이 되는지의 여부와 높은 기관의 문턱 때문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시천면에서 삼신봉 터널을 지나면 만나는 풍경 


 그리고 노동부 통영지청 산재예방과에서 전화 한통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먼저 저희 청에 방문하셔서 신고했던 배치전 검진비용건 관련하여 전 협력업체에 공문을 뿌렸습니다. 이제 협력업체와 물량 팀장들이 검진비용을 착복하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거제 터의원에서 3개월에 한 번씩 진행하는 검진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삼성중공업에 공문을 보내 재취업이 3개월 이후에 가능하게 했던 것도 금지하는 공문을 내려 보냈습니다. 이렇게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그녀가 공문을 뿌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장 감독관으로 일하는 친구가 연락이 와 공문서 사진을 찍어 내가 한 것이냐고 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6개월로 정한 검진의무를 터의원과 삼성중공업이 3개월에 진행하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라 따져 물었더니, 조사관이 참지 못하고 짜증을 냈다. 그것은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낸 것이 아니라, 본색을 드러낸 것 같이, 한마디 말에 짜증과 분노가 서려 있는 것이라 나중에 찾아가면 어떻게 욕을 퍼부어 줄까......, 내게도 짜증이 일었다. 우리의 통화는 깔끔한 듯, 긴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나는 물고 눈 앞에서 확인해야 할 그들의 업무 처리 과정과 결과가 많았지만 앞으로의 일들에 서서히 묻혀갔다. 


 그리고 폭행 관련 재판도 받았다. 100만원의 벌금이 떨어져 항고했다. 

폭력이 내 일상일 때가 있었다. 아무 감정 없이 전투를 펼쳐야 하는 외인 부대의 특성상, 유럽에서 외인 부대원은 공포의 대상이자 존중의 대상이기도 했다. 유럽이나 외국인에게 내가 외인 부대 출신이라 밝히면 모두 존중을 표했을 정도지만 한국에선 상대에 대한 비하와 동경이 반반이었다. 

 외인 부대 제대 후의 프랑스 생활 20년은 그저 평화롭고 자유로운 영혼으로써, 아무 걱정 없던 생활이, 한국에 와서는 아무런 의미 없이 그저 밑에 일하는 쫄따구처럼 대했기 때문에, 그런 문화적인 차이와 상대 비하가 일상화된 한국에서는 외인 부대원이면 못 배워서 무식하고, 할 일 없어 목숨 걸고 돈 벌려는 용병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재판에서, 국선 변호사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24살 때 있었던, 까마득한 사건을 떠올렸다.

한국의 법 체계가 궁금했다.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또한 한국에 만연했던 이명박근혜 정부 시대에 일어나고 있던 공권력의 부정의한 현실을 너무 잘 직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법에 대한 신뢰도가 오히려 불신이 강했다. 그러나, 재판이 끝나갈 무렵, 마지막 발언 기회에,


“고향 사천의 조그만 마을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형 동생으로 상부상조하며 살다가, 프랑스 생활 20년 후에 한국 사회에 나와보니, 폭행이 일어난 과정과 같이, 사람이 좋으면 모함하고 짓밟아 존중과 배려가 부족한 불신이 만연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든 개인으로써, 가정의 구성원으로써 존중 받을 가치고 있으므로 존중하는 마음을 계속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억울한 일이 없게 하는 법이, 정확한 초등수사도 이뤄지지 않아 따귀 때린 것을 주먹으로 폭행했다고 올려도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고, 주변 증언도 이루어지지 않고 부실하게 오로지 폭행했다는 단순함만으로 이렇게 벌금이 떨어지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저는 벌금 100만원 결정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쌍방에 의한 폭행이 있었습니다. 상대 진술서에도 폭행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주먹으로 쳤다는 얘기도 거짓말입니다. 작업현장에서 기술자로서 솔선수범을 보이지 않고 갑질만 했고, 저를 보고 자기가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할 때 만났던 전무라고 거짓말을 일삼는 자였습니다.

 정의는 상식적이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게 공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억울함을 없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방적인 진행은 정의가 아니라, 법이 얼마나 허술한가를 보여주는 동의할 수 없는 비상식입니다. 제가 가진 정의에 대한 존중과 법에 대한 엄중함이 정당한 판결을 내려주길 바랍니다”


그렇게 70만원이 떨어졌다.

나는 전 과정을 거치고 싶어 다시 항고하고 서울 목동의 현대엔지니어링 전력 본부로 출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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