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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Oct 03. 2019

채용 미스

첫 출근과 채용 미스



*** 현대 엔지니어링 첫 출근과 채용 미스



서울 목동에 있는 현대 엔지니어링 본사로 출근했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아파트 거나 거대한 환락가처럼 간판의 네온사인이 노래방과 룸살롱으로 빛나는 화려한 밤거리, 대기업 KT 목동 타워 사무실과 현대엔지니어링 전력 본사 건물을 같이 사용하는 목동 본사는, 현대백화점의 화려함이 SBS 방송국과 함께 중심축을 이루며 거대한 콘크리트 위에 사람들의 눈을 현혹했다.


 지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들이 주변으로 높이 솟아 군락을 이루었다. 주변으론 대기업 체인점들도 큰 상권을 형성하고 있고, 안양 천이 지근이라 산책코스로 각광받았고 조금만 더 가면 거대하게 흐르는 한강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조금만 벗어나면 학원 촌이 형성되어, 서울의 새로운 학군과 상권을 형성하는 곳이었다.


 처음 면접을 보았던 사무실은 현대 41 타워 2층에 있었다. 오목교 역에서 가까웠지만 나는 한 정거장 멀리 목동 역 고시원에 방을 얻었다. 오목교와는 확실하게 비교되는 오래되어 낡은, 구닥다리 유흥의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그러나, 조금만 벗어나도 마치, 도시의 발전상을 보듯, 오래된 유흥가와 신흥 유흥가가 별다른 차이 없이 손님의 발걸음을 끌었다. 그러나, 거제도에 비해 훨씬 물가가 쌌다.


사무실에서 한 정거장 거리의 목동역에 한 사람만 잘 수 있게 만든 고시원 방은 내 상식을 벗어나게 하는 좁은 방이 숨을 턱 막히게 했다. 목동 7단지 아파트를 지나 첫 출근을 했다.


“6개월 후에 입사 제의한 거 기억하시죠? 지금 좀 이르긴 한데 행정 착오가 있었던 것 같네요”


피엠이 말했다.


[아뿔싸, 채용 미스구나]


 고졸 출신이 통역에 대한 명백한 증거자료나 자격증도 없이 자신감 하나로 밀어붙인 것이었지만 막상 들어와 보니 채용 미스였던가? 나는 돌아가도 상관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 곳에서 일할 필요가 없었고, 그래 봤자 당신들 손해라는 생각이었다. 대기업이니, 억대 연봉이니 큰 의미가 없었다. 성취와 발전이 중요했다.


피엠이 내 이력서를 들고 현장 소장인 전무 사무실로 들어갔다. 현대 건설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카리스마가 묻어났지만 친절했다. 엎질러진 물이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전무가 내 이력서를 보더니 얼굴이 실망으로 굳어졌다. 단번에 어떻게 그렇게 바뀔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뭐, 이런 이력서를…… 아무튼 들어왔으니 적당한 자리를 찾아보자고!”


 나도 경직되어 얼굴이 붉어졌다. 그러나 개의치 않았다. 나는 그들의 세계 속에 살지 않았고 그들의 제도화된 시스템 속에 갇히고 싶은 생각도 추호도 없었다. 단지, 각자의 위치와 업무를 존중해주고 협력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대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으로 갑의 직위를 누리며 살아온 사람들이 남의 삶을 무시하거나 하찮게 여기는 부류는 많았다. 그런 부류들의 오만한 한마디는 회사의 얼굴을 먹칠하는 것이었지, 대단하다고 생각할 리가 없었다.

 제도화된 기준에 맞추어진 그들의 사고방식은, 최소한 그들의 학맥인 한양대 공과대나 홍익대 공대 정도 되어서 인맥을 줄줄 꿸 정도는 되어야 했기 때문에, 전무가 전해준 한 마디 메시지에 그의 인성을 의심했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전직 외인부대 출신 앞에 알지 못할 수도 있는 업무를 갖고 호통치는 상사가 아니라 진실되고 좋은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잃는 것이었다.


처음 알제리를 갔을 때, 라마단 기간이 끝나고 동료의 집에 초대받아 진수성찬을 대접받았다. 겉보기엔 허접해도 집으로 들어가면 양탄자와 실내 장식이 화려했다.


 각 파트 별 공구 장들과 인사를 하고 업무 체계를 익혀 갔다. 피엠의 권한을 높이기 위해 쓸데없는 보고 체계가 너무 많았다. 회의를 한다고 자주 자리를 비웠다. 그런데도 대기업 본사답지 않게 권위의식보다 자유스러운 분위기는, 지금까지 다녔던 하청업체의 프랑스어 통역이 나 혼자여서 잘하든 못하든 대화 상대만이 알 수 있었는데 비해, 사무실에 와보니 프랑스인 번역 직도 한 명 있었고 알제리 여자 직원도 한 명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합격한 입사 동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사업관리 팀, 통·번역 직원도 자리를 잡아갔다.


“과장님, 이거 전문위원님이 번역한 건데 영어로 감수 좀 부탁드려요”


면접 때도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앉았던 대리 직급을 가진 동료가 업무를 가지고 오자 나는 데인 듯 놀랬다.


“불어를 영어로? 저는 영어 못한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래도 한 번 봐주세요”


 그녀가 놓고 간 몇 장 안 되는 분량의 번역서는 이미 전문위원이 구글 번역으로 하나도 고치지 않고 내게 전달해준 것이었다. 이런 난감함이란! 나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불·영 번역을 거절했다. 그러자 내게 찾아온 평화는 계약서를 파고드는 일이었다. 난생 대기업의 계약서를 처음 보는 나로서는 흥미를 가지고 몰입해서 계약 내용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통역 부분에 와서,


[원어민 수준의 프랑스어를 구사하는 자로써, 능력이 부족할 땐 교체 요청할 수 있다]는 문구를 보며 ‘잘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문해 보았다.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내 실력에 비해 과분한 대접을 받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그 문장을 보니 내 생사여부는 발주처 소넬가즈(Sonelgaz)의 위임을 받은 알제리 국영 엔지니어링 회사, CEEG의 피엠이 갖고 있을 터였다.


 현엔 피엠은 자상하고 얌전한 사람이었다. 언행이 조심스럽고 신중하면서도 권위의식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존중과 배려로 나를 대했다. 말이 필요 없이 전무가 심한 얘기를 해도 어깨를 쓰다듬으며 위로해주는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전에 갖고 있던 한국의 갑질 기업 문화가 완전히 잘못되었다는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겉만 보고 속을 파악할 수는 없으니 경계를 놓지 않았다.

 

 현엔은 지연, 혈연, 학연을 타파한 채용을 추구한다는 것을 사람인이나 잡코리아를 통한다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2차 임원 면접 때 만난 경쟁자는 임원 면접을 보면서 홍익대학교 어느 교수에게 하사 받았냐는 얘기를 듣고, 저래도 되나 하는 생각을 하는 게 다였지만 대부분 한양대 출신으로 이뤄져 있다는 것을 오래되지 않아 알았다.


 복합화력 프로젝트를 위해 현대건설에서 온 소장과 기계 공구장이 한양대 ROTC 출신이라고 자랑삼으면서 보니, 피엠도 한양대 출신이라는 거였다. 대학에 대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학연이 주는 의미는 몰랐지만, 1개월 먼저 들어왔던 토목 차장이 라인을 타고 들어왔다고 자랑삼으면서 학연과 지연이 판치는 곳인가 하는 의심을 하기도 전에, 개개인이 사람을 대하는 모습에서 편견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개인의 인간관계이거나 개인적인 성향일 뿐, 갑질 문화는 없는 것으로 확인해가고 있었다.


 발주처 피엠, 모하메드와의 전화 통화가 이뤄지고 드디어 알제리로 가는 비자가 2주 후에 나왔다. 사무실 스타일이 아니라 좀이 쑤셨던 나는, 모든 언행에 권위주의와 가식, 간 보는 게 온몸으로 느껴지는 토목의 김 차장과 함께 여수에 건설 중인 복합화력 발전소를 견학하고 나서야 본사로 복귀해 알제리로 갈 수가 있었다.


입사 2개월 만이었다.

그곳엔 내가 청혼한 알제리 여성이 있었다. 알제리로 오면 답변을 주겠다던 그녀를 삼성 엔지니어링 알제리 스킥다 프로젝트에서 만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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