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Ce que le jour doit à la nuit (밤에 빚진 날)
영화감독 알렉산드르 아르카디는 루마니아에서 태어난 헝가리 출신 외인부대원이었던 아버지와 알제리 유태인 엄마 사이에서 알제리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알제리가 독립전쟁을 수행하던 시기와 맞물려 프랑스로 돌아온 감독은 영화에 몰두하게 되고 18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한국에 잘 알려진 영화로는 유대인 납치 살해를 다룬 ‘24일’이 가장 유명하다. 소개하는 이 영화는 2012년에 Alexandre Arcady에 의해 알제리의 오란, 1960년대 말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프랑스 영화다. 프랑스로부터 알제리 독립 과정을 담았으면서도 젊은이들의 우정과 사랑, 배신, 불륜, 전쟁을 다루고 있다.
프랑스 군국주의의 상징인 190년 전통의 외인부대에서 근무한 필자가 식민지를 다스리기 위해 창설된 부대라는 것을 배웠고, 알제리에서 4년 동안 곳곳을 여행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직접 경험한 그들만의 문화, 도시와 사막, 종교가 전통과 밀접하게 연관된 나라에서 외인부대가 지배했던 132년간의 식민지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총칼로 다스렸던 알제리라는 나라, 같은 외인부대원으로서 만났던 북아프리카 동료들, 파리에서 만났던 도저히 섞일 수 없었던 북아프리카인들의 혐오스러운 언행, 그리고 알제리 본토에서 만난 사람들의 순박함, 종교와 인종을 떠나 내 고향 이웃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고 일제 치하를 경험했던 식민지를 상기해 보았다. 132년 동안의 식민지는 완전히 독립하지 못할 것 같이 프랑스 문화가 완전히 뿌리내린 곳에서 독립전쟁은 완전한 패배로 끝났음에도 영화 ‘알제리 전쟁’에선 [알 수 없는 힘]이 알제리를 해방시켰다고 전했다.
언어와 생김새, 전통과 종교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 그리고 생활환경마저도 척박한 사막 지형에 온통 황금빛 토양이 눈부신 사하라 사막의 땅, 지중해를 공유한 토속 민족과 아랍 이주민들이 섞여 너무나 이국적인 풍경과 인물들을 보여준다. 거기에 알제리를 점령한 프랑스인들이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고 토착민들과 거리를 두어 서서히 그들의 세계에 끌어들이는 문화의 우월성, 자연스럽게 계급사회가 형성되지만 결코 융합될 수 없는 민족성이 서로 부대끼며 지배자와 식민 사이의 간격을 여실히 보여준다. 프랑스의 문화는 훌륭하나, 견고하지만 완벽하지 못했던 군국주의 식민지배가 현재의 프랑스 테러로 이어지고 있는 아이러니가 탄생된 배경이 되기도 한다. 알제리 땅에서 물러난 알제리 출신 프랑스인들과 프랑스에 부역했던 알제리인들, 토착민인 베르베르 족의 후세가 온전히 프랑스 교육을 받으면서도 테러리스트로 성장하게 되는 비밀이 여기에 있다.
영화 초반, 광활한 대지에 밀을 키우는 아빠와 아들 요나스의 단란한 한 때는 악덕 농장주의 농간으로 한순간에 불바다로 변하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 줄거리
주인공 유네스는 알제리 토박이로 열 살이다. 알제리 2대 도시 오란 근처에 거대한 밀 농장을 가진 부지런한 농부의 아들로, 온통 황토 빛 대지에 황금빛 밀의 물결이 곧 풍요로운 수확을 앞두고 있다. 이 기름진 밀밭을 눈독 들이던 근처 지주는 그간의 빌려준 돈을 빌미로 밀밭을 착복하기 위해 화재를 일으킨다. 불타는 밀밭을 보고 미쳐버린 아버지, 부채를 갚을 능력이 없어 지주의 농간에 의해 식민통치자로부터 토지를 수탈당하고 빈민가로 쫓겨가 고된 막노동으로 생계를 유지하려 하지만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탈출할 수 없는 가난의 늪에 빠져버린 아버지는 술을 마시고 더 이상 구제불능이 되어버린다. 절망하는 어머니와 여동생 앞에 앞날은 암울하기만 하다. 아버지는 결국 오란에 사는 형을 찾아가 아들의 교육을 부탁한다. 형은 피아노 선생인 프랑스 여자 마들렌느와 결혼한 유명한 약국을 운영하는 성공한 약사다.
자식이 없는 삼촌과 마들렌느는 열렬하게 유네스를 맞이하고 마들렌느는 유네스를 조나스로 개명한 뒤 프랑스 학교에 입학시킨다. 그러는 동안에 엄마와 여동생은 엘-케비르 (Mers el-Kébir) 전투로 사망하고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로 행방불명되어 혼자 남은 천애 고아 조나스. 그러나 과격한 독립주의자이며 파시스트로 분류되어 프랑스 경찰로부터 추궁당하게 된 삼촌과 함께 오란 근처의 리오 살라도로 이사를 가게 된다. 그곳은 알제리에서 태어난 스페인계 프랑스인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는 조그만 시골 도시인데, 주민들로부터 진심 어린 환영을 받고 약사로서의 품위와 삶을 회복하여 약국을 연다. 거기서 조나스는 인생 친구 장 크리스토퍼, 파브리스, 시몽을 만난다. 그리고 피아노 학원에서 한번 스친 귀여운 프렌치 소녀 에밀리와 아이들의 세상 걱정 없는 동심이 시작된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어려서부터 같은 학교에 다니면서 친구가 되고 추억을 쌓아가는 와중에 해수욕장에서 잠수를 했다가 나오는 순간부터 성인이 된 그들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된다. 너무나 멋지게 성장한 조나스, 해수욕장에서 어떤 귀부인을 만나면서 하룻밤을 보낸 조나스는 그녀의 정부로 밀회를 즐긴다. 그게 프랑스다라고 보여주는 듯! 그러던 어느 날, 친구 파브리스가 ‘산 프란시스코 카페’를 오픈하고 파티를 연다. 파티 중에 조용히 등장해 카페에 앉는 청초하고 우아한 미녀를 보게 된 친구들이 서로 그녀의 미를 찬미하는 와중에, 갑자기 일어나 그녀에게로 다가가는 조나스의 눈빛이 먹이를 발견한 호랑이처럼 저돌적이다. 친구들의 부럽고 놀라운 시선을 뒤로하고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으며 조나스의 눈을 응시하는 미녀를 바라보며,
“당신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군지도 모르지만 내 이름은 조나스입니다”
눈을 떼지 않고 웃음을 참지 못하는 미녀,
“웃지 마세요. 거기도 이름이 있잖아요?”
“첫눈에 반했어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입니다. 당신 앞에 무릎을 꿇으라면 당장 꿇겠습니다”
“꿇어요. 꿇어보세요!”
당황하여 웃는 조나스에게 여자는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당차게 무릎을 꿀라고 요구하고 일어서서 무릎을 꿇으려 하자 여자가 황급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린다.
“대신에 춤을 신청해 주세요”
둘은 무대로 나가고 친구들은 지켜보며 한 마디씩 한다.
“조나스가 춤을 신청한 게 아냐.”
“저 놈 역시 다르네!”
“난생처음 여자한테 데이트 신청하는데 역시 아무나가 아냐!”
사람들 틈에서 춤추며 미녀가 말한다.
“나도 당신을 오랫동안 기다렸어요. 마침내 만났지만”
“무슨 뜻이죠?”
“기억해보세요. 멀리, 아주 멀리서 찾아보세요”
“우리 아는 사인가요?”
에밀리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 희열에 찬 포옹
하고 묻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한 번 만났던 조나스의 소싯적 유일한 사랑 에밀리였다. 그리고 젊은 치기로 육체적 쾌락의 대상이었던 귀부인이 에밀리의 엄마라는 사실을 알고 에밀리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로 흘러간다. 엄마는 성당에서 조나스에게,
“최소한 엄마와 관계를 맺은 남자가 딸까지 그럴 순 없어. 절대 그럴 순 없어! 그건 짐승들이나 할 짓이야. 용납할 수 없어, 조나스 제발 부탁이야. 그녀에게서 떠나 줘! 만약 그러지 못하겠다면 딸에게 고백하겠어! 딸을 잃겠지만 너도 마찬가지야! 맹세해줘! 절대 에밀리를 손대지 않겠다고!”
조나스는 그 맹세를 지킵니다. 그리고 영화는 복잡한 인간관계를 거쳐 에밀리는 시몽과 결혼하고 영원할 것 같던 멘토인 삼촌이 죽고 영화는 알제리 독립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삼촌을 따라 약국을 이어받은 조나스를 찾은 에밀리의 엄마는 약속을 지켜주어 고맙다고 말한다.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고 마음을 실어 얘기하고 프랑스로 돌아간다.
불만 가득하게 파브리스의 카페에서 일하던 젤룰은 알제리 독립군이 되어 어느 날 부상당한 상관을 치료하기 위해 조나스를 찾아오고 치료를 끝내고 탈출을 도와준다. 돌아오는 길에 귀부인의 하인에게 그 사실을 들켜 위기에 처하지만 파브리스의 아버지 도움으로 풀려난다. 알제리 정착의 선구자였던 파브리스의 아버지, 마을 시장이자 권력의 중심이었던 루실리오와 지중해를 사이에 두고 황금 들녘을 마주한 나무가 우거진 거대한 산맥 앞에 서서 나누는 대화는 식민시대를 대변하는 듯하다.
“이거 알아 조나스? 우리 증조할아버지가 안달루시아에서 여기 왔을 땐 여긴 아무것도 없었어! 알아들어? 아무것도 없었다고! 이 나라는 우리에게 모든 걸 빚졌어. 돌과 풀, 모래밖에 없는 황무지를 우리는 에덴의 정원으로 만들었어. 이 땅이 왜 고귀한 줄 알아? 우리가 사랑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야! 그런데 무엇이 너에게 집이나 태우고 가난한 농부들을 죽이는 알제리 독립군을 돕게 한 거야? 우리가 알제리를 떠난다면 20년 내에 포도밭도 밀밭도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거야! 아무것도! 내 말 이해하겠어? 다시 돌만 남겠지!”
“돌은 당신들 것이 아녜요. 프랑스인들이 오기 전에 이곳에 선 사람들은 아무것도 없는 자체를 사랑했어요. 불행이 닥치기 전까지! 이 땅은 당신들 것이 아닙니다. 저기 목동 것이죠! 당신들은 그 사실을 거부하죠. 하지만 저 목동이 확실히 이길 겁니다. 확신합니다!”
루실리오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피를 보기 싫다는 평화주의자로서의 일반적인 프랑스인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랑스인들이 밝고 건강한 의식의 소유자들이 많으며 분쟁과 논쟁보다는 미소와 협상, 업무적인 능력이 탁월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하면 알게 되는 모델이랄까! 바로 루실리오 같은 사람에 의해 프랑스인들이 존중받고 대단한 의식의 소유자들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치 않다.
지중해변의 비옥한 밀밭을 바라보는 루실리오와 조나스는 식민지 정당화와 침략에 대한 얘기를 나눈다.
집으로 돌아온 조나스는 숙모 마들렌을 달래다가 에밀리의 집에 불이 난 사실을 알고 달려가지만 독립군들에 의해 친구 시몽은 목젖이 잘려 살해되고 에밀리는 조나스를 내쫓는다. 친구의 장례식에서도 쫓겨나고 외톨이가 되는 조나스. 청춘을 함께 했던 상징인 산 프란시스코가 불태워지고 마을의 프랑스인들이 모두 알제리에서 물러가고 독립군이 마을을 점령한다. 포로로 잡힌 장 크리스토프를 풀어주는 독립군과 조나스, 그들의 우정이 알제리인 답고 프랑스인답다는 생각이 든다. 독립으로 혼돈에 빠진 오란으로 에밀리를 찾아가서 모든 것을 주고 지켜주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에밀리는 이 나라는 자신의 모든 것을 앗아갔다고 말하며 끝난 것은 되돌릴 수 없다고 선언하며 프랑스로 떠난다.
그리고 2010년 오란.
할아버지가 된 조나스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 에밀리의 아들이 전해 달라는 편지를 받고 찾아간 에밀리의 무덤 앞에서 오열한다. 그리고 만나는 친구 장 크리스토프.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전쟁의 광풍 속에 깨졌던 우정이 영원한 우정으로 기억되고 서로 포옹하는 두 사람. 조용한 음악이 흐르며 지난날의 영상이 노래 속에 스며든다. 그렇게 이 신비한 언어에 빠져들고 한층 더 깊이 알제리의 역사 속을 탐구한다.
*** 비평
영화는 알제리의 황량한 사막과 척박한 환경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속의 원주민이었던 카빌 사람들, 베르베르인들, 아랍인들을 구분하지 않고 프랑스와 알제리로만 구분해서 보여준다. 알제리인들이 말하는 아랍어는 4년 동안 프랑스어 통역을 알제리에서 수행했던 필자에게 몸짓과 더불어 친숙하게 들리고 생김새마저도 이웃을 보는 것 같이 친근하다. 출연진도 한때 유명했던 뱅상 뻬레(Vincent Perez), 노라 아르네제데(Nora Arnezeder), 영화 니키타의 여주인공이었던 안느 빠릴로(빠리요가 정확한 불어 발음)(Anne Parillaud)가 매력적인 프랑스 귀부인, 에밀리의 엄마로 등장한다. 그러나,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 노인이 된 남자 주인공 후아드 아잇 아투(Fu'ad Ait Aattou)는 너무 형편없이 변해버려 확 깬다......
그것만 제외하곤 전체적으로 괜찮은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우리와 다른 문화, 다른 언어에 또 다른 언어가 들어가서 헐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우리에겐 그다지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겠다. 영화 다운로드하기도 힘들고 구하기도 힘든데, 한 번씩 알제리가 그리울 때마다, 그 배경과 언어들의 유희를 즐기다가 영화 마지막에 나오는 노래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어, 오히려, 영화 음악에 더 심취되었던 영화였다. 프랑스에서 오래 살았는데, 전혀 모르는 가수가 외계어와 같이 전혀 따라 할 수 없는 언어로 부르는 노래에 매료되어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프랑스 영화, Ce que le jour doit à la nuit'밤에 빚진 날', OST 알제리 카빌 노래 'A vava Inouva' by IDIR - YouTube
*** A vava Inouva(이누바 할아버지) 가수; Idir
알제리 토착민이지만 지금은 소수민족으로 그 전통과 문화를 간직하고 살아가는 20%가량 정도의 베르베르인의 언어로 불려졌다. 알제리에는 카빌리(Kabylie) 지역이란 곳에 걸쳐 있는 광활한 땅이 지중해에서 아틀라스 산맥까지 끼고 있고 티지우즈(Tizi Ouzou), 베자이아 (Béjaïa), 세티프(Sétif), 지젤(Jijel)이란 도시들을 아우르고 있는 행정구역상 우리나라의 도라고 할 수 있다. 그곳 출신 중,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은 바로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이다. 알제리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대부분 어렸을 때 이 노래를 자장가 삼아 자랐다고 한다.
가사는 할아버지와 딸, 아들 간의 세상에 대한 두려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 혹은 오래전부터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다루고 있다. 혼자 알기에 아까운 음악과 영화를 공유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