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제도 대포항 아일랜드 호 선상 낚시
새벽 5시,
지인의 초대로 배낚시를 가기로 했다. 눈만 뜨면 바다를 마주하던 유년 시절의 기억엔, 대나무를 잘라 돌멩이를 달아 아무 미끼나 달아도 하루치 식사량을 거뜬히 해결할 수 있는 형형색색의 물고기를 잡았었다. 동네 꼬추 친구들과 같이, 세상 부러울 것 없던 완벽한 유년의 기억이었다. 사는 게 바쁜 어른이 된 후론, 프랑스에서 오래 살아 아프리카와 유럽 등지를 여행하며 20년 만에 돌아 온 한국에선, 시간 날 때마다 갯바위나 등대의 테트라포트에서 낚시를 했다.
비싼 낚시대를 사고 원줄과 목줄, 각종 찌와 봉돌, 고기에 따른 각종 낚시바늘과 밑밥까지 포함하면 10만원 대의 완전 아마추어 수준의 도구를 구입할 수 있었다. 거기에 추의 무게에 따른 찌의 호수 등등, 간단한 일이라 생각하고 홀가분하게 갔다가 세월을 낚는다는 게 뭔지를 처절하게 깨닫고 나서야, 고기들이 사교육을 받아 영리해졌다는 걸 알았다. 유투브에서 감성돔이나 참돔을 잡는 낚시 법을 보면서도
'저건 구라야!
낚시꾼들 구라가 제일 심하다더니 고기랑 두뇌싸움을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많이 잡는 걸 보니 마음이 혹했다. 그러나 아무리 따라 해도 원하는 감성돔과 참돔은 눈을 씻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 무심한 마음에, 부처의 마음으로 열반의 경지에 이른 듯 기다려도 기다림일 뿐이었다. 그렇게 세월을 낚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절감하며 손을 씻고 낚시계를 떠나기 수십 번. 그러다 한 두 마리 새끼라도 잡을라치면 고기를 넣어둘 살림 망과 두레박, 밑밥을 담을 통까지, 돈 드는 일이 아닌 게 없는 고급 레저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을 알고서야, 한국을 오랫동안 비웠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으니, 이번 배낚시는 나를 설레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옥포에서 거의 한 시간이 소요될 정도로 멀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며 도착한 대포 항에서 30여분 나가자 도착한 곳은 매물도 였다. 거제도의 한려 해상이 유명해도 그다지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바다에 나오니 그렇게 좋았다. 출렁이는 배 위에서 섬을 바라보니 올라가서 돌아다녀보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낚시가 시작되었다. 업계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지만 배낚시의 기대감이 컸다. 오늘은 바다의 미녀 참돔을 보고야 말겠다는 의지 같은 건 아예 없었다. 부처가 된지 오래였지 않던가!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전문 낚시꾼들이었다. 준비해 온 장비가 장난 아니었는데, 그들도 지금까지 갯바위 낚시만 하다가 배를 타는 게 처음이라고 했다. 그들은 흘림 낚시를 했고 나는 원투 낚시대로 무거운 추를 달아 들대 낚시를 했다. 마음을 비우고 부처의 마음으로, 알라 신까지 동원한 넉넉함으로 흔들리는 배와 함께 덩실거리는데 저쪽에서 '왔네 왔어!' 고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낚싯대는 휘어질 대로 휘어져 바다로 처박고 들어가는 고기와 힘 싸움을 시작했다. 얼핏 보기에도 낚시대가 부러지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로 치고 들어가는 광경에 부러움 한 가득, 아, 참! 난 부처지……!
이윽고 다른 사람들도 열심히 퍼 올리는데, 내게는 침묵을 지키는 바다의 일렁임을 따라 춤을 추면서 주변 사람들의 모습을 시기와 질투 어린 시선으로 힐끔거리며 배시시 웃기도 한다. 누가 보면 살짝 간 거 아닐까 싶을 정도의 히죽거리는 웃음 속에 내겐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음…… 낚싯대 탓이군! 아냐 아냐, 미끼로 쓰는 새우가 너무 흐느적거려 빠져버렸을지도 몰라]
자주 올려보니 역시, 입질의 흔적 없이 미끼만 빼먹는 현상이 계속되었다. 열심히 미끼를 갈아주며 부처의 마음을 헤아리길 수시간, 멀리 보이는 조그만 섬들이 아기자기하게 스푸마토 기법처럼 은은한 자태를 감상하는데 낚싯대가 휘어졌다. 오, 예! 부처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흥분한 몸이 순간적으로 반응하며 허리를 잔뜩 뒤로하고 들어올리니, 무거운 원투대가 바닷속으로 들어갈 듯 치고 들어가는 힘이 예사롭지 않았다. 가늘고 긴 찌 낚시에 비해 짧고 굵은 원투대가 이 정도 휘어질 정도에다, 180의 키에 백 킬로에 달하는 육중함에도 이 정도 힘을 쓰는 놈이라면 예사롭지 않은 크기가 분명했다.
“야호! 이~~~하!!!”
오도방정을 떨며 그간의 질투를 한 번에 만회하려는 듯 열심히 끌어올리자, 선장이 뜰채를 가지고 와 옆에서 잔뜩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곤 신중하게 올리라고 충고를 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원체 내 액션이 컸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뭔가 싶어 이쪽으로 눈길을 던지는 짜릿한 시선을 느끼며 내 생애 첫 참돔의 모습을 보겠구나 싶은 설렘 가득 안고 힘껏 들어올리고 다시 올리는데, 어떤 저항의 힘 없이 하늘로 치솟는 낚싯대! 어? 뭐야? 빠져버린 거?
[아! 신은 날 사랑하지 않구나!]
조류가 거세게 바뀌고 위치를 바꿔 햇빛을 받기 시작하자 입질이 뜸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짧은 시간에도 끊임없이 끌어올리는 걸 보니, 과연 이곳이 참돔 포인트로 각광받는 곳이구나 하는 감탄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에 황홀한 날씨까지 조화로움 속에 우리는 아점을 먹기로 했다. 나도 몇 마리의 자잘한 참돔을 잡았고 꽤 큰 쥐치까지 잡아 낚시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낚시 참여 객은 한의원을 하는 꽤 나이 든 원장과 중곡동에서 온 컨테이너 공장장, 대우조선에서 업을 하는 사람까지 5명이었다. 선장이 가지고 온 김치와 초장을 꺼내 회를 썰어 뚝딱 식사가 완성되고 우리는 잠깐 낚시를 멈추고 식사를 시작했다. 각각 모르는 사람들이 만난 자리에, 지인의 초대로 마련된 즐거운 시간에 서먹서먹한 아침 인사 이후에 함께 모인 자리였다.
아침 일찍 일어나 땀 흘리고 먹는 먹는 식사는 모자라는 반찬에도 최고의 만찬이 될 수 있는 것처럼, 큼지막한 냄비에 끓인 라면과 잘 익은 김치만으로도 황홀한 맛이 느껴졌다. 이윽고 우리는 선장이 장만한 방금 잡아 올린 싱싱한 회를 먹기 시작했다. 큰 돈을 들여 마련한 장비에도 갯바위 낚시의 재미를 보지 못하던 사람들은 모두 선상 낚시에서 이렇게 많은 참돔을 잡은 기분을 흥분한 마음을 가득 담아 한마디씩 했다. 나는 비록, 두 세 번 놓치긴 했어도 짜릿한 손맛을 보았던 터라 아쉬움은 없었지만 아직도 시간은 많았다.
원장이 회를 먹으면서 잠깐 얘기를 나누는 사이, 공장장과 한 때 같은 산악회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었고 맛나게 식사를 하는 동안 대화를 주도하며 목포에서 주문해 먹었던 홍어회 얘기를 시작했다.
“캬! 그리고 있지, 그 톡 쏘는 홍어를 굴김치에 싸서 한 입 먹으면 심 봉사 눈뜬 것 같은 신세계지! 톡 쏘는 맛이야 다 아는 얘기니까 집어 치고, 야! 근데, 그냥 요새 유투브나 방송에 나오는 먹방은 죄다 허당이야!, 목포에서 바로 배송해서 며칠 묵혀, 자연 상태로 녹여놨다가 저녁에 와서 술 안주로 먹으면 그야말로 산해진미 안 부럽다니까!”
“이야~ 형님도 그 맛을 아시네요! 삼겹살에 백 김치랑 먹는 건 완전 하수지예! 의외로 계피 넣은 김치에 거기에 잘 익은 밴댕이 젓갈에 같이 먹으니 그것도 죽이더만예!
원장과 공장장은 번갈아 가며 형언할 수 없는 홍어회와 젓갈 얘기를 30여분 이상 이어갔다. 익히 알던 음식이었고 잘 먹지 않기도 했지만, 그저 차려준 음식에 먹는 것 밖에 몰랐던 지난 날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대화는 내게 생소했다. 어쩜 저렇게 얘기를 맛깔 나게 할까, 끼어들 수 없는 그들의 찬사에 귀가 혹해 듣고는 있었지만 음식 맛 표현에 아연실색한 기분에도 두 사람의 얘기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그들의 얘기에 따라 군침을 삼키고 귀를 쫑긋거리면서도 엔돌핀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식사 내내 둘의 음식 찬미는 마련된 음식이 초라해도 넉넉했고 ‘왕후의 밥, 걸인의 찬’이 저절로 생각날 만큼 황홀한 오감만족을 시켜주었다.
세상에 대해 웬만큼 안다고 생각하고 고집을 부리다 보면, 전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의외의 전문가들을 만났다. 시골 들판과 산에 피어있는 무심한 들 꽃 이름과 풀들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축을 키우면서 소나 돼지의 식성과 성향, 환경까지 파악하는 전문가들의 이야기는 매일 보기만 할 뿐, 무관심했던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나고 자랐던 시골의 기억이 그러할진대, 성장하면서 경험했던 음악, 미술, 군대, 근 현대사, 세계 역사, 고대 문화, 건축사와 종교사를 통해 배웠던 그 이상의 전문가는 얼마든지 많았고 다양한 표현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러면서도 각자의 전문가적인 지식 이면에, 자신의 경험 저편의 취미 생활을 통해 알아가는 몇 가지의 일 외에는, 개인이 알 수 있는 분야가 많지 않은 것도 세상사 참 넓고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는 사실에 겸손함의 미덕이 최고의 가치라는 깨우침도 있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는 세상사, 내 지식에 만족한다고 오만 방자했던 과거를 회상하며 반성하는 시간을 갖게 한, 뜻하지 않게 온 낚시에, 자연에 취하고 처음 만난 사람들에 서로 어울려 즐기는 여유로움이 사소한 행복으로 다가왔다.
식사를 끝내고 우리는 다시, 낚시를 시작했다. 한려해상의 조그만 섬들에도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물살이 이렇게 거세었던가 새삼 실감하며 전갱이 떼가 지나가는지 넣을 때마다 올라왔다. 전갱이의 또 다른 이름이 매가리라고 선장이 알려주었다. 내가 구라 치지 말라고 바득바득 따지니 소탈하게 웃으며 매가리가 ‘전갱이’ 혹은 ‘아지’라고 크기에 따라 이름을 달리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심지어 전라도에선 ‘매생이’나 ‘가라지’, 그리곤 회로 먹어도 맛있고 구워 먹어도 맛있으니 꼬박꼬박 챙겨주는 게 아닌가!
다른 사람들은 올라오는 전갱이는 버리고 빠른 물살에 멀리 떠내려가는 흘림 줄에도 간간히 참돔을 올렸고 내게도 드디어 예사롭지 않은 입질이 왔다. 전갱이와는 다른 유형의 입질과 힘, 흥분한 가슴이 콩닥거리며 흥분한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이번에도 빠지려나, 염려 속에 올라 온 놈이 준수한 씨알이다.
[오오오! 신이시여! 졸라 쌩유!]
그렇게 두어 마리 더 잡고 나자 소강상태로 들어갔다. 생애 첫 참돔 포획이었다. 신나서 참돔에 키스했다. 오후 1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선장은 ‘이제 철수 합시다’하고 외쳤다.
갯바위 낚시는 기본적인 비용이 10여만원 들었다.
선상 낚시도 그 정도 드는 가격이었지만 수확과 씨알에서 갯바위와 비교할 수 없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배를 타고 선상낚시를 떠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따라서 떠났던 낚시 계의 복귀를 이번 참돔 포획 사건과 홍어회, 젓갈을 보지도 않고 맛있게 먹은 날을 기념하여 선언한다 ㅠ,.ㅠ;;;
대포항으로 돌아오는 길, 저 멀리 가라산 정상의 아름다운 바위가 우리를 반긴다.
만선의 부푼 꿈을 안고 항구를 떠난 배가 길을 잃지 않고 집으로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등대가, 밤사이 임무를 마치고 햇빛아래 낮잠에 들어갔고, 방파제 안에 고이 잠든 바다가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아일랜드호의 귀환을 거품을 물고 반겼다. 선착장에 배를 대자 여러 가족들이 선상 낚시 체험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가 내리자 왁자지껄 배위로 올라섰다. 꼬맹이들까지 포함한 저들도 우리처럼, 즐거운 낚시에 행복한 하루를 보낼 테지!
집으로 돌아와 전갱이 회를 떠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친구들을 불러 저녁 회로 먹기에 이른 시간, 낮잠을 즐기고 일어나 준비한 회를 들고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 소박한 하루의 행복이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