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assoud Jun Oct 30. 2019

몽마르뜨 언덕의 소매치기

자유로움에 대한 댓가?

 

 2018년 7월,

몽마르뜨 언덕에 올라 파리 시내를 내려다 본다. 일주일에 못해도 세네 번은 올랐던 곳이다


 광활한 들판에 아기자기하게 솟아있는 조그만 지붕들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을 만한 특이점이 없어 보인다. 주의를 기울여 세심하게 살펴보니 퐁피두 센터의 지붕에 빨갛고 파란 지붕 뒷 편으로 병풍처럼 솟아 있는 고층빌딩은 파리 13구, 일명 최대 차이나 타운으로 알려진 곳이다. 미테랑 도서관과 팡테옹, 노트르담 성당이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곳곳에 보석처럼 숨겨져 있다. 단조롭고 특색 없어 보이는 도시가 천 년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성심성당 앞의 계단과 뒤보아 추기경 거리 저 멀리 파리의 지붕



 밤 9시 30분, 아직도 햇살이 남아있다.

몽마르뜨 언덕을 오르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예술과 낭만의 도시를 만끽하기 위해, 명사화된 예술과 낭만을 즐기기 위해 몽마르뜨를 오른다. 화가들의 광장에서 그림을 구경하고 성심성당도 구경하지만 무엇보다, 성심성당 앞 계단에서 파리를 내려다 보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여행 책자를 통해, 파리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올라가고 20세기를 풍미했던 '나 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 간 고호'의 발자취를 찾기도 하고 르느와르와 피카소, 로트렉의 흔적을 찾아 '라뺑 아질'을 찾기도 한다.


 몽마르뜨는 가난하고 불운한 화가들, 작가들이 값싼 월세를 찾아 모여들었던 곳이다. 밤이되면 빨간 불을 밝히고 돌아가는 물랑루즈의 풍차, 주변의 홍등가는 이미 수차레 영화에 등장하기도 했으니 그 유명세야 따로 말할 필요도 없겠으나, 주변에 위치한 회사에선 양복을 입고 와인과 맥주를 사와 경사가 진 잔디 위에 앉아 만찬을 즐기는 회사 사람들과 여행객들이 섞여 몽마르뜨는 언제나 축제 분위기다. 그 파티와 더불어 사람들의 여유로운 흥겨움은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 여행의 참맛을 느끼게 한다.


 프랑스 20년의 체류 경력과 여행 전문가의 눈으로 보니 소매치기가 여럿 활동하고 있다. 북아프리카 애들이다. 동네 양아치들도 모여, 여행객처럼 가장을 했지만 도둑 고양이 같은 눈빛과 물기를 발라 놓은듯한 헤어스타일과 언행이 눈에 거슬린다. 끊임 없이 담배를 피워댄다. 한 갑에 만원씩이나 하는 담배를 나는 돈이 없어 끊었는데, 저 놈들은 대부분 야행성에 실업자들인데 어디서 돈이 생기는 걸까? 주변의 담배 냄새가 폐부 깊숙이 호흡을 괴롭힌다. 애연가였을 때 충분히 맛있고 내 권리이던 담배였다.


 얘들의 생김새는 기분 나쁘다. 눈빛도 행동도 그렇다. 그들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편견을 가졌다 해도 그들의 언행은 충분히 혐오스러웠다. 영화에서 보고 들어온 아름다운 프랑스어가 아니다. 거칠고 독특한 억양때문에 멋진 프랑스어 감각이 둔화된다. 군대에서 사용하는 억양도 아닌, 북아프리카 마그렙 특유의 언어, 뱅상 카셀의 영화 '증오'에 나오는 언어가 딱 그들의 언어다. 그 영화를 통해 '앙팡 테리블(무서운 아이들)'이란 용어도 생겨났을 정도이나 오리지날 프랑스인인 그의 언어가 아무리 마그렙 흉내를 냈다한들 그들에게 비길 바가 아니다.


 두 명이던 애들이 다른 곳에 또 두 명, 잔디에 세 명, 내 바로 앞으로 한 명이 와 있다. 그 옆으로 한국 여자 세 명이 앉아 있다. 그들의 특징을 모르는 사람들이 볼 때는 이탈리아 사람을 닮기도 하고 스페인 남자를 닮기도 했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은 구분이 힘들다. 그들은 또한 집요하게 여자들의 전화번호를 물으면서 추근대기도 했다. 추근대는 수준이 성추행이었음에도 아무도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래 전에 가이드를 할 때, 몽마르뜨를 올라가는 루이즈 미셸 공원 초입에 있던 흑인들은 경찰들의 단속이 심해서인지 보이지 않았다. 가이드를 할 때는, 손님들에게 행운을 실을 묶어 준다면서 괴롭히던 흑인 무리의 대장을 불러 예의를 갖추라고 요구한 적이 있었다. 흑인들의 착한 심성을 잘 알아서 말을 하면 알아들을 거라 믿었고 믿음에 대한 답례로 그 후로 괴롭히지 않았다.


 그러나, 북아프리카 아랍 애들은 대화가 통하지 않았다. 강자에게 눈을 깔고 혐오스러울 정도로 비굴하게 굴었고 약자에겐 혐오감과 위압감을 주었다. 그것은 너무 깊이 각인되어 설령 알제리에서 좋은 사람들을 경험했다고 해도 변하지 않을 파리의 북아프리카 마그렙들에 대한 인식이각인되었던 탓이다. 그들과 대화를 하려면 싸우거나 기분 상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가급적 가까이 하지 않았다.


몽마르뜨 언덕의 초입인 루이 미셸 문. 경찰들의 단속으로 흑인들이 보이지 않았다.
단속이 덜한 겨울엔 이렇게 서서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손가락을 실로 묶어 삥을 뜯는다.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으로 여름에도 15~25도로 춥고, 건조하지만 한번씩 폭염으로 정신 없던 파리가 밤 10시가 넘어가자 서서히 해가 졌다. 후끈한 열기가 남은 몸 위로 시원한 바람이 애무하듯 산들거리자 더위가 물러간다. 황금 빛으로 반짝이던 미테랑 도서관의 유리에 비친 석양이 사라지고 파리의 지붕이 하나씩 불을 밝힌다. 야경에 관심이 없지만 저녁이면 술로 밤을 세우려는 습관을 고치고 맑은 정신으로 사물을 보겠다고 생각했다.


 몽마르뜨의 밤 낮을 속속들이 안다고 생각했지만 느닷없이 파리의 야경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옆의 한국 여행객들은 꼼짝 않고 서로 대화도 없이 밤을 기다린다. 엉덩이가 장난 아니게 아픈데 대단한 인내다. 계단 앞 뒤보아 추기경 거리에선 가끔 쇼를 보여주는 친구들이 관광객들의 관심을 끌었지만 오늘은 보이지 않았다. 소매치기들은 연신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경계한다. 소매치기 대상자를 물색하는 것일까?


 계단엔 마치 유명한 공연을 관람하러 온 사람들처럼 점점 사람들은 늘어나고 양 옆의 정원에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온 사람들이 이것저것 음식을 싸들고 와서 푼다. 꽤 경사가 심한 곳인데도 아랑곳 없이 들판 같은 파리의 지붕이 불 밝히는 야경을 즐기겠다는 여유는 한국과는 많이 다른 차원을 보여준다. 이곳엔 낯선 사람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다. 거리감 없이! 반면에 한국에서는 다가서기 위해선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렇게 두 문화의 차이점이 한국에 가면 거리감을 가지게 된다.


 서서히 자리를 옮겨 화가들의 광장으로 발길을 옮겼다.

광장의 반은 식당의 야외 테라스로 채워졌고 화가들의 자리는 구석으로 밀려났다. 몽마르뜨 언덕의 유명한 화가들의 테르트르 광장이 식당의 영업에 밀린 탓일까, 들어가는 입구에 보니 옛날, 아주 옛날, 2001년부터 퐁피두 광장에서 초상화로 첫 밥벌이를 시작했을 때, 여름철이면 오던 러시아권 친구들 중에 하나인 삐에르를 만났다. 가이드를 하면서 몽생미셸 근처에서도 보기도 했던 언제나 즐겁게 살던 친구인데 테르트르 광장에 터를 잡은 모양이었다.


 '예술가들의 집'에서 시험을 치뤄 자리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광장에서의 초상화는 세계 여행책자에 꼭 소개되는 곳이고,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라 벌이가 꽤 짭짤했다. 삐에르가 자리를 잡은 것을 보니, 신기에 가깝게 그림을 그리던 이들의 실력이 의심된다. 삐에르는 유화로 그림을 그렸다. 한 장 그리는데 원체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도 초상화를 그리는 손님들의 인내는 참으로 대단했다. 여름 여행 성수기가 되면 삐에르를 브레타뉴의 유명 관광지인 해적들의 도시, '생 말로'에서 만나기도 했다. 50이 넘은 나이, 항상 긍정적으로 웃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손님이 찾아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가운데 빨간 체크 무늬 옷을 입은 삐에르



 테르트르 광장은 가만 있어도 손님이 찾아와 돈이 되는 곳이다. 그러나, 광장을 돌아다니며 서서 호객하는 화가들은 화가라기 보다 소매치기와 같은 부류들이었과 카르텔이 형성되어 있었다. 성질도 얼마나 나쁜지 마음에 안든다고 대들었다간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퐁피두 광장의 중국인들은 그 정도가 너무 심했다. 규정도 예의도, 명예는커녕 오로지 한 푼 버는 것에만 몰두했다. 그럼에도 그들끼리는 기가 막히게도 잘 협력했다. 삐에르는 성수기가 끝나면 다시 화가들로 광장이 채워진다고 했으니 식당들의 자리 싸움도 여름 한철로 운영되는 듯 했다.

 


작가의 이전글 낚시, 그리고 홍어회와 젓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