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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Feb 27. 2020

민원인들, 그리고 가봉 시스템

가봉인들의 모양



*** 민원인들



 일과 끝나는 시간에 맞춰 숙소로 돌아오니 민원인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민원을 접수할 행정직원들도 휴일이라 자리에 없었다. 민원인은 세 명이었다. 효준과 같이 왔던 코트디부아르 출신의 아몰랑은 휴일이면 사무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저녁 퇴근 시간만 되어도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효준은 그런 그의 판단이 옳다고 믿었다. 한국 업무 시스템에 잡히면 휴일도 없이 일할 게 뻔했다.


 그는 소장과 같이 작업을 다녔다. 처음 통역일을 해본 아몰랑은 다짜고짜 ‘이것 좀 물어봐’ 하면서 시작하는 질문에 중심을 잡지 못했고 우왕좌왕하면서 통역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대화가 결말을 내지 못했다. 한국어 전문 용어들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전달하는 말이 어색했다. 그리고 원체 여러 사람이 동시에 말을 하는 바람에 혼란스러워했다.


 소장이 묻고 답하면 될 것을 여러 사람이 사방에서 물으니 정신이 없을 것이 뻔했다. 그러다 ‘통역 똑바로 안 해?!’ 하면서 혼나기 일쑤였다. 그러한 한국 사람을 경험해보지 못한 아몰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왜 화를 내세요?’하고 어이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럴 때면 눈빛이 완전히 변하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소장은 통역을 사용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 둘이 자주 마찰을 일으켰다. 그런 아몰랑은 현장 업무만 집중적으로 관리했다. 일을 잘하겠다는 욕심이 앞서 해결해주려 나서다가 혼이 나기도 했다.


현장에는 코트디부아르 출신도 꽤 됐다. 대부분이 가봉의 지역민인 비탐 사람들이었고 국경을 넘어온 카메룬 출신들과 심지어 중앙아프리카 챠드에서 넘어온 일꾼들도 꽤 됐다. 그래서인지 아프리카인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아몰랑은 그들과 금방 동화되었다. 또한 한국 업체의 시스템에도 급속하게 동화되어 갔다. 그는 자신이 받는 급여가 하는 일에 비해 작다고 생각했다. 250만 원에 계약하고 왔다고 말하면서 ‘작죠?’하고 되물었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면서 시간 외 수당에 관해서는,


‘사장에게 전화해서 시간 외 수당 챙겨 달라고 해야겠어요!’


 라면서 한국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동의를 구했다. 현장 인부들 월 급여가 만근을 해야만 30만 원이었다. 급여는 2주에 한 번씩 나누어서 지불되고 있었다. 로컬 인력 중에 토목 기술자 엘라가 100만 원으로 제일 많았다. 민수는 민원 문제에서 아몰랑을 제외했다. 한국인 회의에서도 제외했다. 성격 좋고 활달한 성격이긴 해도 아프리카 마인드라 내부의 민감한 사안들이 감리를 통해서 밖으로 세어 나가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 아몰랑은 민원인 상대에도 제외되어 오로지 소장 전용으로만 현장에 참여했다. 그러나 똑똑하고 영민했다. 눈치가 빠르고 방금 적응했지만 교활한 면도 있었다. 그는 확실하게 한국인들 편은 아니었다.


 민원인들은 차량을 렌트해서 돈을 받지 못한 사람들과 장비 주차 문제로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영수증을 가지고 온 사람에게는 바로 해결을 해주었지만 차량 렌트 비용에 차량 유지비용은 문제가 됐다. 계약서엔 유지비용뿐만 아니라 서류비용과 수리비용까지 회사에서 부담하게 되어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행정 조 부장에게 계약서 서류를 변경할 것을 제안했다. 렌트 비용과 오일 교환은 회사에서 주더라도 수리비용은 차주가 해결하고 수리 도중 발생하는 작업 불가 중에는 다른 차량으로 교체해 주어야 한다는 명목을 함께 제시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계약서상의 불합리한 점들이 너무 많았다. 일반적으로 상식적이지 않은 내용들이었다. 효준은, 임대차량 전체를 총괄할 방안을 마련했다. 앞으로 필요한 차량 중에서 여러 차주들 중에 한 명의 차주를 정해서 에이전시로 만들든, 한 명이 대표가 되든, 돌아가면서 하든, 계약서를 명확하게 해서 대표를 지정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때까지 계룡이 사용하던 차량들은 외관이 깨끗해도 보통 2십만 킬로를 넘고 있었기 때문에 부품 교체 비용과 수리 비용이 너무 많이 들었다. 그들이 수리하거나 바꾸는 부품은 품질과 성능이 검증되지 않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임대 비용도 일일 5만 원에서 8만 원씩 차이가 났다.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국경 소도시 비탐에 렌터카 회사가 없었다. 근처 80KM 근처 대도시 오엠에도 렌터카 회사가 없었다. 새 차를 구경하기 힘든 곳이었다. 외관상 깨끗하게 관리된 차량들도 주행거리를 보면 15만을 훌쩍 넘겼던 것이다. 그런 곳에서 제대로 된 수리 센터를 찾아보기도 힘들었고 소문마저 흉흉했다. 로컬 친구들이 해준 얘기에 의하면 차 수리하러 들어가면 새 부품을 빼고 헌 부품으로 교체한다는 것이었다. 렌터카에 필요한 정보를 구해보기로 했다.


 로컬 정비 직원 둘은 빚쟁이처럼 사무실로 와서 수리를 위해 돈을 요구했다. 고작해야 4, 5만 원 밖에 안 되는 금액으로 부품 교체를 하러 떠났다가 거의 그대로인 상태로 돌아왔다. 수리 비용 영수증은 없었다. 그게 왜 필요한지도 몰랐다. 따져 묻기 시작했다.


“인터넷에 찾아보고 4만 원 정도 할 거라 하고 받아 갔잖아. 그런데 부품을 못 찾았지? 그런데 너희 정비소에 가보니 마침맞는 부품이 있어서 교체했지? 그럼 중고로 바꾼 건데 중고 비용을 청구하는 게 맞잖아. 그리고 영수증도 없이 어떻게 고쳤다고 장담해? 다시 며칠 후에 같은 고장이 반복되면 네가 책임 질 거야? 네 정비소 사장에게 따져 묻지 않을 테니 영수증 가져와!”


 그들은 자신들의 말을 믿지 못하느냐고 항변했다. 물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숨 쉬는 것만 제외하곤 믿을 수 없었다. 며칠 후, 영수증을 주었냐고 묻자 사무실에 주었다고 말했다. 확인해보니 거짓말이었다. 차는 금방 다시 같은 고장이 났다.


 너무 많은 차량들이 고장이 났고 민수에게 최고의 신임을 받는 이브라임은 언제나 불평불만 없이 현장에 나타나 온몸을 기름으로 칠하고 되돌아가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고쳐도 고장 나는 장비들이 신기했다. 하긴, 차량들은 노후화되었고 이렇게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오랫동안 작업을 해 본적이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었다. 민수는 사람도 저렇게 일하면 병이 나는데, 기계가 고장 나는 것은 당연하다고 인정했다. 픽업차량들은 정상적인 운행을 하는 차량이 거의 없을 정도로 자주 고장이 났다. 일부러 고장을 낸다고 로컬 애들이 효준에게 일러바쳤다. 증거를 확보할 방법이 없었다.


 계약서 변경을 안전의 파브리스와 행정 직원 팔과 정리하고 앞으로 필요할 차량들을 섭외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효준에게는 통역이 아닌 다른 잡무들이 발목을 잡고 있었다. 주간회의 번역과 현장 감리 대응, 대민과 대관 업무가 동시에 떨어졌다. 공정에 신경을 너무 쓴 나머지 행정과 대민 대관은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민수는 모든 문제를 효준이 해결해 주길 바랬다. 그러나 효준은, 어느 것도 권한도 전문 지식도 없었기 때문에 보고 후 실행을 원칙으로 삼았다. 설사 권한이 있더라도 회사 돈이 들어가는 부분은 필히 보고 후 승인이 철칙이었다.


숙소 겸 사무실 앞 테라스의 강아지. 엄마가 되었다고 곱게 다가와 먹을 것을 간절히 바라는 모성애로 나를 감동시켰다.



 팔이 들어와 찾아온 민원인 얘기를 했다. 회의록 번역에 전력을 쏟고 있던 효준이 고개를 들어 팔의 얘기를 들었다. 장비를 이틀 동안 세워 둔 비용을 받으러 왔다고 했다. 계약서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1일 1만 원씩 2만 원이었다. 민원인을 사무실로 불러들였다. 민원인은 우리 측 정비사인 이브라임이 구두로 지불을 약속하고 세워 두고 간 장비라 계약서가 없다고 했다. 이전에 이틀 동안 세워 두었던 비용은 받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내놓으라고 언성을 높이며 생떼를 썼다.


“좋습니다. 무슈.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서 들어왔던 얘기와 다른 방식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우리는 먼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왔습니다. 가봉이 광케이블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서 한국에서 부른 손님들이죠. 저는 아프리카에서 5년 동안 프로젝트를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인들이 착하고 좋은 마음씨를 가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가봉에서는 한 발짝씩 움직일 때마다 돈을 달라고 합니다. 먼 곳에서 손님이 오면 따뜻하게 손 내밀어 악수하고 포옹하는 것이 가봉인들의 마음입니다. 당신들처럼 멋진 문화인들이 멀리서 온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하는 대신에 돈을 내놓으라고 말하니 상심이 큽니다. 큰돈이 아니니 그냥 줘 버리고 해결하면 끝입니다. 그러나 회사 돈은 아무리 작은 돈이라도 함부로 지불되는 게 아닙니다. 가봉인들은 돈을 좋아한다는 의식을 가지면서 나중에 가봉을 떠나게 되겠지요. 저는 그것보다 우리가 서로 포옹하여 따뜻한 마음을 나누었으면 좋겠습니다.”


“……”


 민원인이 침묵을 지키더니 ‘당신 말 참 잘한다’면서도 영수증을 가지고 오겠다며 조용히 떠났다. 이브라임에게 알아보니 장비를 주차한 일이 없다고 했다. 민원인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야적장 인근 코노빌 촌장이라는 사람이 찾아왔다.

야적장 사용료와 수도 및 전기 사용료를 사용할 물건이 아닌 돈으로 바꿔 달라는 얘기를 하러 온 것이었다. 그렇게 말을 전달하고 일을 하는데 계속 머물러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멀리서 왔으니 돌아갈 차비를 달라는 것이었다. 조 부장과 효준이 눈을 끔뻑이며 이게 무슨 소리냐고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심각했다. 촌장에게 왜 돌아갈 차비를 주어야 하느냐고 묻자, ‘가봉 시스템’이라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가봉 멘탈’과 시스템은 같은 말이었다. 이제 지겹지도 않았다.


“그렇게 돈을 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특히 회사 돈은 그렇게 지불되지 않습니다.”

“가봉 멘탈이니 따라야 합니다.”


 둘은 아무 대답도 없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고 계속해서 기다리겠다는 표정이었다. 사무실에 들어와 업무에 집중했다. 한참 후에 그들은 사무실까지 들어와 돌아갈 차비를 요구했다. 효준은 밖으로 나가 자세하게 지불할 수 없음을 설명해야만 했다.


 일과가 끝나고 나면 민원인들이 항상 찾아왔다. 휴일도 없이 찾아오는 민원인들 때문에 여간 골칫거리가 아니었다. 민수는 사무실과 숙소를 분리시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지만 경비 절감과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다고 후회했다. 그러나 민원인들은 이전 통역에게 지시한 대로 민원 보상 협의서를 작성해서 관리하고 있었던 탓에 계룡 측 사인이 들어가 있으면 결재를 해줘야 했다. 그런 금액이 하루, 이틀이면 몰라도 월말에 계산하면 적잖은 돈이었다. 금액은 대부분 40만 원 정도에 맞춰져 있었다. 민수는 그 금액은 빠른 공정 진행을 위해서라면 약간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효준의 판단은 달랐다.


 민원은 국가에서 보상해주는 농가의 과수나무 보상과 시내의 주유소, 민가의 과일나무가 거의 모두였고 시공사는 시내 공사 시에, 개별 수도배관이나 장비 주차, 사유지 기물 파손이 거의 모두였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들을 문제 삼고 손해배상을 목적으로 찾아왔다. 민원의 내용은 대부분, 사유지의 돌기둥에 장비가 부딪혀 조그만 손상을 입힌 것이라던가 벽에 부딪힌 흔적, 타이어가 밟고 지나간 흔적 같이 시시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딱히 돈을 요구하지 않으면서도 전과 같이 복구해달라는 내용의 끝은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조 부장과 효준은 서로를 바라보며 허탈한 웃음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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