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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Mar 04. 2020

재스민

재스민



*** 재스민



“윤 효준 부장님, 재스민을 찾아서 작업 일지와 맨홀 강도 테스트 한 서류를 회수해야 합니다. 부탁드립니다.”


 리브르빌 원청에 출장을 가 있던 민수가 급하게 효준에게 전화를 했다.

효준은 전화를 받고 그 일을 왜 자신이 해야 하는지 의아했다. 담당자가 박 부장이고 해고도 직접 지시했는데? 서류를 직접 본 적도 없었다. 결국 담당자인 박 부장이 빠지고 한 번도 서류를 본 적이 없는 조 부장은 효준과 함께 코노빌 야적장으로 향했다. 작업 일지와 서류가 야적장 어딘 가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추측 때문이었다. 그러나 현장엔 아무것도 없었다. 재스민을 대체한 다니엘이 그와 동거하는 그녀의 집을 안다면서 앞장섰다. 조 부장은 야적장에 남았다.


 재스민은 집에 없었다. 다른 마을의 장례식에 참석했다는 말을 듣고 근처 마을로 가보니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고 거리를 배회하고 있는 그를 데리고 그의 집으로 돌아왔다. 차는 다니엘과 함께 야적장으로 돌려보냈다. 효준은 택시를 타고 가거나 귀가하는 차량을 얻어 타면 될 터였다.


 메인 도로가 하나밖에 없어 매일 다니는 도로 가였다. 도로 가의 조그만 촌락들엔 국기가 세워진 곳들이 있었다. 촌장이 사는 곳이었다. 마을의 중앙엔 마을 사람들이 모여 회의를 하거나 휴식할 수 있는 정자 같은 곳에서 마을 사람들은 파티를 벌이기도 했고 마을 회의를 열기도 하는 모습이 효준은 정감이 갔다.


 대부분 목재로 만들어졌지만 잘 정리된 잔디가 깔려 있고 정원처럼 가꾼 운치 있는 마을이 있는 반면 이 마을은 맨 땅이었다. 네 채의 집이 있는 재스민의 여자 친구 집은, 맨땅 위에 넓은 마당과 정자를 가진 곳에 첫 번째 집이었다. 마을의 집은 넓고 지붕이 높았다. 마당을 같이 사용하는 맞은편 집 안을 얼핏 보니 넓은 창고 같은 곳에 방과 거실의 구분 없이 나무로 만든 침대가 분산되어 나뉘어 있고 부엌을 같이 사용하고 있었다. 밤이 되면 불빛이 있을지 의문이 드는 곳에 마을 뒤는 정글이었다. 재스민의 집은 그나마 거실에 소파도 있고 내실은 분리되어 있었다.


관로 작업 중인 사무실 앞. 도로 가엔 보행자 길이 따로 없어 행인들은 풀이 키 높이보다 훨씬 높게 자란 길가에 바싹 붙어 걸어야 한다.



 마을 장례식에 참석하고 도로를 따라 올라오던 재스민을 발견하고 둘은 재스민의 집 앞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며칠 전에 그가 병원 진료 내역서를 가지고 왔을 때, 경리 부장과 관리 부장과 함께 의논하여 1개월치 급여를 현장에서 지불하고 그의 해고가 결정되었던 터였다. 사소한 돈이었으므로 그로 인한 문제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민수의 의도였다. 재스민은 리브르빌에서 계약서를 작성하고 데리고 온 비파괴검사 전문가였다. 그런 그의 해고 결정을 민수가 못마땅했지만 지난 30년 동안 같이 민수와 일한 인연으로 모른 체했다. 중요한 것은 이 인력들 중에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른다는데 있었다. 한국 체제라면 하청에 맡기면 하청에서 모든 일을 처리하고 문제가 되면 하청에 떠 넘기면 되는 일들이 가봉에선 불가능했다.


 재스민은 기분이 나빴다. 화가 난 상태였다. 진료비에 비해 월급은 많이 받았지만 해고는 기분 나빴다. 리브르빌에서 비탐까지 꼬박 하루가 걸리는 먼 곳이었다. 그래도 비파괴 검사에 대해 알지도 못하는 다니엘 같은 동네 양아치가 기술 좀 배웠다고 자기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었다.


 재스민은 감리회사의 친구들에게 자신의 해고가 부당하다고 하소연했던 덕분에 감리회의에서도 문제를 삼고 야적장에서도 같은 가봉인이 해고당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자신의 편을 들어달라고 부탁했지만 사정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효준이 찾아온 것을 보니 혹시, 재채용의 기회가 있을지 몰랐다. 효준은 소파 사이로 서류를 감추는 재스민을 나무 창문 넘으로 흘끗 보았다. 그리고 재스민은 말하지 않아도 효준이 왜 왔는지 알고 있는 듯 작업 일지와 개인용 노트를 들고 나왔다.


“재스민 성공했네. 여기 와서 저렇게 아름다운 부인도 구하고?”


조금 전까지 보지 못했던 그의 아내가 어디선가 나타나 주변을 배회했다. 물 한잔을 건네기 힘든 집안 형편인가 보았다. 재스민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존재 이유가 없을 정도로 감사하고 있어”


“지금까지 다른 외국회사랑 일해봤어?”


“딱히 해본 건 아니지만 두 번 다시 한국 회사랑 일하고 싶지 않아!”


“아니 왜?”


효준이 놀라며 물었다. 월 100만 원이면 많은 금액이었다. 인부들이 30만 원이었다. 거기에 비해, 로컬 감리들은 월 200만 원씩 받는 것에 비하면 적은 금액이었다. 재스민은 이유를 대지 못했다.


“한국인들은 일이라면 목숨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 재스민. 오로지 일만 하고 일에 자신과 가족마저도 희생시키는 불쌍한 사람들이지. 대신에 가봉 사람들은 일을 너무 안 해. 게으르고 책임감이 없지 않아? 그 중간 즈음에서 절충점을 찾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나는 생각해. 가끔 일하다가 예쁜 아가씨가 지나가면 휘파람도 불고 수작도 부리면서 일하면 받는 스트레스도 풀 수 있으면 좋을 거야.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그런 여유와 즐거움이 없어. 나태함과 일에 대한 성취감 중에 어떤 게 낫다고 생각해?”


“성취감이야 말로 최고의 기쁨이지. 난 그 성취감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어. 하지만 코노빌 사람들은 나를 따라주지 않았고 난 그들이 도둑질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어. 어휴, 말도 못 해! 네가 걔네들 집에 가서 확인해 봐! 어마어마할 거야!”


“아, 그래? 어떻게 했길래?”


“저녁이면 애들이 모여 세워 둔 장비의 기름을 빼 가서 몰래 팔아먹어. 나중에 너희들이 급할 때, 물통에 든 리터로 되샀을 거야. 너희들은 장비들이 그냥 고장 나는 줄 알지? 얘들은 명색이 프랑스 식 교육을 받은 애들이야! 프랑스 사람들에게도 해 먹는데, 언어도 안 통하는 너희 한국인들은 이미 가봉 시스템에 갇혀 있어!”


“오~ 흥미로운데? 그렇지만 나는 알고 있어! 난 그 한국인들이 아니 거던^^”


 효준이 말하며 재스민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재스민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 말에 동의했다. 외인부대 출신은 아프리카에서 공포와 경의에 대상이었다. 효준이 담배를 건네자 거절했다. 재스민은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많은 가봉인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 비싼 이유도 있었다. 맥주 값이 천 원인데 반해 담배 한 갑이 2천 원이었다.


 멀쩡한 하늘에 갑자기 후다닥 비가 쏟아졌다. 저녁이 되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비였다. 우기로 접어든 날씨는 밤이 되면 하늘이 구멍 난 듯 비를 쏟아냈지만 이 비는 전초전인 것처럼 짧게 오다가 말았다. 재스민이 거실로 이동할 것을 제안했지만 효준은 밖의 풍경이 좋았다. 장작불이 타고 있었고 어미 닭이 병아리들을 이끌고 여기저기 헤치는 모습이 잃어버린 동심 같아 보기 좋았다. 비는 계속 내리지 않았다. 비탐 시내가 가까웠지만 전화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밤이 되면 촛불을 켜는 곳이었다. 그것 마저도 정감이 갔다.


“난 말야, 재스민. 가봉인들이 천사라고 생각해.”


재스민이 하얀 이를 드러내며 세상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것 봐! 너의 미소와 제스처는 영락없는 천사의 모습이야. 그런데 네 등 뒤에 날개가 보이지 않아. 오히려, 날개 대신에 칼과 마체테(벌목용 큰 칼. 르완다 대학살 때 사용한 칼, 우리나라의 낫)만 보여. 천사에 미소 뒤에 감춰진 그 칼로 언제든 이방인들을 찌를 준비가 된 것 같아”


맞아!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사실이야! 우리 가봉인들끼리 그렇지 않은데 외국인들을 보면 항상 피해의식에 의한 연대의식이 생겨! 너희 한국인들에게도 마찬가지야. 오히려 식은 죽 먹기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만약 다시 들어와서 일하라면 할 거야?”


“진짜라면 들어가서 일할지도 모르지만 나를 배신한 코노빌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어! 그들은 가봉인의 단결을 해친 자들이야. 그리고 이 노트장은 네게 줄 수 없어. 가져가면 경찰에 신고할 거야. 개인 재산이거든!”


재스민이 단호하게 말하곤 입술을 굳게 다물며 분노 띈 얼굴 표정을 지었다.


재스민이 기록한 강도 테스트 기록 노트

“그렇지 않아. 재스민! 이거 네 돈으로 샀어? 회사에서 사준 회사 재산이야. 그리고 너는 회사에서 이걸로 네 업무를 기록하라고 월급을 주는 거고, 따라서 너의 지식과 노동은 회사 재산이야. 네가 그렇게 주장하면 오히려 내가 너를 경찰에 신고할 수 있고 너희 집을 경찰의 입회 하에 수색할 수 있어!”


“……”


“난 너희들을 한국 사람들보다 더 좋아해. 거짓말 좀 하고 도둑질 좀 한다고 해서 한국 사람들보다 나쁘게 생각하지 않아. 진짜 악마들은 한국 사람들이거든! 내게 세상 어느 나라 사람들이 제일 싫으냐고 물으면 단연코 ‘한국인’이라고 답할 거야! 넌 내가 왜 이렇게 얘기하는지 모를 거야! 그러나 난 지금 한국 회사를 위해 일하고 있고 싫어도 따라야 해. 내게도 보스가 있거든! 그리고 너의 천사 같은 미소와 지금까지의 멋진 대화에도 불구하고 난 널 믿지 않아. 내가 스스로 특별하다고 믿듯이 너도 특별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모두를 존중하지. 너를 버린 한국 회사에 대한 증오가 생길 수 있어! 그러나 돌려줄 건 돌려줘야 해”


 잠시 생각하던 재스민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옆에 가만히 서 있던 부인에게 방에서 빨간 통을 가져오라고 시켰다. 그녀가 고급스러워 보이는 통을 가지고 나왔다. 재스민이 열어보더니 안에 있는 내용물을 꺼내 보였다. 효준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비파괴 검사기였다. 소파에 감추던 서류 생각이 나서 한 얘기에 가지고 나온 뜻밖의 물건이었다.


“코노빌 애들이 훔쳐갈까 싶어서 내가 보관하고 있었어. 내가 가지고 있는 게 안전하고 너희들이 찾으러 오면 줄 생각이었어”


“고마워 재스민! 다른 서류는 없었던 거야? 나는 강도 테스트 기록을 찾고 있어. 네가 작성했던!”


“무슨 얘기야? 서류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아. 컴퓨터도 프린트도 없는 곳에서 무슨 서류를 말하는 거야?”


“알았어. 확인해볼게. 아! 참! 여긴 전화가 안되지!”


감춘 서류는 며칠 전에 준 급여명세서와 계약 해지가 포함된 것일지도 몰랐다. 효준이 이만 돌아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이 내리고 있었다. 시내로 들어가는 아무 차나 타고 들어갈 요량이었다.


“윤! 나에게는 아내 뱃속에 든 아이가 있어. 이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해? 리브르빌에서 여기까지 왔어!"


“그랬으면 회사에 충성했어야 했어!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회사가 널 붙잡아 둘 수 있게!”


 효준이 택시를 타고 사무실로 돌아오자 다시 민원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책사업을 하고 있으면서도 국가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이런 불합리함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무실에 냉장고를 뒤져 맥주를 꺼내 마셨다. 모두들 고생한 하루, 도대체 어떻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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