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렬하는 햇빛에 달궈진 쇳덩이에서 나오는 열기에 심한 두통과 역겨움을 느꼈다. 곧 토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더위를 먹은 것 같았다. 작업 공간은 추락 방지를 위해 모듈 외부를 막은 덕분에 바닷가이면서도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밖을 잘 내다볼 수 있는 높은 곳으로 올라가 아름다운 바다를 보며 바람을 쏘이면 괜찮아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30도를 넘기는 햇빛을 받을 생각을 하니 끔찍했다. 결국 견디지 못하고 휴식을 요청했다.
“너무 약하네. 너무 약해. 이런 사람이 어떻게 조선소 일을 할 수 있지?”
반장은 안타까운 건지 짜증이 나는 건지, 몸이 좋이 않은 사람을 두고 밥 맛 떨어지는 말을 했다.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고 음악소리와 함께 음료수가 진열되어 있는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어느 팀 소속이냐고 물었다. 그런 질문들은 명백하게 팀장에게 일러바쳐 불이익을 주겠다는 의도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피식 웃으면서 대답하지 않았다. 진심어린 걱정을 해주는 관리자의 따뜻한 말 한마디를 기대한다는 게 무리였을까......
관리자의 말에 '재수 없네!' 속으로 말하곤 약을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올라가서 일했지만 견딜 수 없었다. 오랫동안 운동을 하지 않았던 탓에 단지 의지만으로 일이 진행되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더위를 먹는 사람들은 갑자기 땀을 오랫동안 흘리니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운동을 좀 하고 들어갔더라면 후회 했다.
조퇴를 신청하고 아직 점심이 다가오지 않은 시간에 현대중공업 해양 파트 쪽문을 나가 해양 파트를 둘러싼 거대한 방파제 위에 섰다. 광활한 바다를 앞두고 햇빛 아래 여름 옷차림을 하고 얼굴엔 넥쿨러로 눈만 드러낸 채 낚시를 하는 모습이 분위기 있게 다가왔다. 시원한 바다 바람이 매스껍던 속을 누그러뜨렸다. 해변을 따라 숙소가 있는 곳까지 터벅터벅 걸었다. 길가로 늘어선 바들은 선주사 엔지니어들이 밤이 되면 파티를 벌이듯 축제 분위기였고 한 블록 더 올라가면 시내버스가 다니는 주요 도로가 나타났다.
그 위로는 조선소 노동자들의 숙소가 대부분 자리하고 있어 식당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고 그 주변으로 노동자들 숙소로 사용하는 비슷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바닷가를 배경으로 한 바들과 대비를 이루었다. 꽤 걸어 도착한 숙소에서 찬물에 샤워하면서 머리를 식혔다. 잠에서 깨면 체력보강을 위해 저녁 조깅을 할 작정이었다.
울산 방어진 해안로
울산 방어진의 현대중공업은 그 범위와 규모가 세계 최고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방어진에 해양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지역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 눈 앞의 거대한 바다는 슬도와 대왕암 공원, 일산 해수욕장을 끼고 있어 주민들의 휴식처로 각광받았다. 슬도에서 계속되는 소나무 숲은 산책에 어울리게끔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어 대왕암으로 이어졌다가 일산지 해수욕장까지 이어져 끝 없이 잇닿는 바다와 함께 황홀한 풍경을 연출했다.
해수욕장이 끝나는 편엔 '일산 수산물 센터'에서 각종 해산물과 회를 값싸게 먹을 수 있어 좋았으나 주변으로 온갖 유흥가가 들어서 술 한잔 얼큰하게 마신 사람들의 주머니를 가볍게 하는 유혹이 빨간 네온사인 아래, 고정 아가씨 항시 대기라는 문구와 베트남, 필리핀 여성 항시 대기라는 문구와 함께 아름다운 해변을 찾은 사람들의 밤을 카오스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그 너머로 현대 중공업 공과대학을 비롯한 광활한 세계 최대의 조선소, 현대 중공업 미포조선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태화 강변에 위치한 현대 자동차와 더불어 울산은 현대의 도시라고 불렀다. 드라마와 책에서 접했던 정주영의 신화가 만들어 놓은 도시 울산과 방어진은, 단기간에 이렇게 위대한 중공업과 자동차를 만들 수 있었는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적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그런 이유로 울산에서의 현대의 영향력은 절대적이었고 거제도보다 더 여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넓은 동해의 탁 트인 바다는 대우조선 해양에서 바라보는 남해의 바다보다 더 시원했다. 더 깊은 쪽빛 바다의 빛깔이 고왔고 시야에 방해되는 것 없이 펼쳐진 망망대해가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조깅에 나선 길에 만나는 방어진 활어센터와 슬도 등대까지 도착해서 만나는 바다는 막혀 있던 가슴이 탁 트였다. 먼바다를 향해 기지개를 폈다.
어둠이 내려 시원해진 바닷가는 거북하던 속도 가라앉아 오전의 고역을 말끔하게 씻고 깨질 것 같던 두통도 사라졌다. 간단한 조깅으로 따뜻해진 몸이 금방 정상을 회복한 듯 개운했다.
대왕암에서 바라 본 현대 중공업
일을 마치고 온 사람들이 조퇴해서 간 사실을 알았지만 괜찮냐는 안부 대신에 현장 관리들과 비슷한 말을 하거나 아무런 인사도 없이 후다닥 씻었다. 노곤한 노동의 때가 묻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그만큼의 마음의 거리를 유지한 채, 또 하루를 보내고 출근을 했다. 걸어서 출근하는 길은 꽤 멀었지만 산책하듯 운동 삼아 도보로 출근하는 사람들 속에 섞여 방어진 버스 종점을 지나 현대해양 본관 건물을 지나는 육교를 지나면 곧장 식당이 나타났다.
한 여름의 열기는 아침에도 신선함은 덜했지만 가까운 바다 덕분에 바람이라도 불어오면 아침의 신선함이 새롭게 온몸을 감쌌다. 아무런 생각 없이 아침을 먹고 현장 탈의실로 출근하면 팀끼리 모여 오손도손 커피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거나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의 여유를 즐겼다. 현대 중공업의 파란 작업복은 시간이 지나면 청바지처럼 물이 빠져 꽤 옷맵시가 났다. 옷 맵시만 보아도 상대의 기술 능력을 알 수 있을 만큼 간지가 흐르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정확하게 각을 잡고 군화를 신은 것처럼 각반을 숨기게끔 아랫단을 늘여 마치 군대 조교들처럼 행동도 각이 잡혀 그런 사람들을 경계했다. 그들의 의식 속에 모든 이들의 언행을 가두고 그들처럼 일할 것을 요구하고 가르치려 들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일이 힘든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들의 수준이 지배하는 조선소 현장은 끔찍하다 생각하면서도 기술을 가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문득 적지 않는 나이와 맞물려, 현장에서 일하면서 마음에 드는 기술을 배워야겠다는 계획이 먼저 들었다.
대우조선해양으로 가서 로랑을 만나면 안전감독관 한자리는 흔쾌히 꿰찰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지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은 판단을 후회하지 않았다. 알제리엔 아직도 할 일이 많았고 1년씩 계약을 맺고 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부대끼다가 알제리에 일자리가 생기면 훌쩍 떠나겠다는 계획이 막연했다. 그러나, 현장에서 노동자들과 부대끼다 보니 현장 돌아가는 상황도 보여, 알제리에서 작성했던 ‘프로젝트 최적화 플랜’도 완성 단계에 이른 것이 성과였다.
어제 일하던 현장으로 다시 올라가서 팀원들은 도면을 보며 작업해야 할 곳들을 숙지하면서 이동했다. 팀장은 계속 도면을 들여다보았고 다른 팀원들은 모두 흩어졌다가 다시 모여 해야 할 일을 의논했다. 팀장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지 못한 업무를 나이 어린 친구가 완전히 파악했다고 말하면서도 어떻게 파악했는지 설명을 하지 못했다. 우리는 셰브론 프로젝트의 모듈 제작 작업의 배관 파트에 참여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