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엔 무지막지한 해고가 수시로 일어났다. 현장에서 자리를 비우고 숲에서 쉬거나 시장을 돌아다니거나 부재자를 출석체크하는 일은 다반사인 데다 거짓말과 불성실은 그들의 일상이었다. 그러다가 도둑질도 일어났다. 그런 자들은 한국인 팀장들이 가차 없이 잘랐다. 심지어 아침 조회 때, 이름을 불러 밖으로 불러 낸 다음 개인 공구를 뺏어 슬리퍼를 신겨 내보냈다. 맨발로 보내기도 했지만 인권이 문제 된다고 해서 슬리퍼를 사서 신겨 보냈던 것이다.
그들은 ‘존중’을 얘기했지만 작업장에서 그들의 행위는 존중받을 만큼 성실하지도 정직하지도 않았다. 존중을 하면 거짓말과 도둑질로 돌아왔다. 아프면 현장에서 발생했다고 병원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아프다는 정도가 넘어졌다거나 말라리아에 걸렸다는 정도여서 병원 진단을 받으면 대부분 회사에서 일하다 다친 것으로 돌렸다. 워낙 비일 비재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말없이 진실된 사람들이 두각 되기보다 오늘도 무사히 아무 일 없이 넘어가기를 바랐다.
야적장과 경비 오소노. 뒤쪽 나무집이 숙소이고 팔자 좋게 드러누운 개 이름이 ‘망제(먹어)’다.
민수는 맨홀을 만들어 쌓아 놓은 야적장으로 향했다.
두 번째 도시와 가까운 곳에 있는 꽤 먼 거리였다. 시멘트 강도 테스트를 위해 맨홀 감리는 휴가를 떠나 자리에 없었기 때문에 감리 에바와 함께 도착했다. 작업자들이 모든 과정을 준비하고 시료 채취를 위한 준비를 마치고 대비하고 있다가 보스의 지시대로 제작을 시작했다. 제작과정과 시료 채취 후 양성과 연구소에 보내 강도 테스트를 하는 과정이 중요했다. 그래야 제작된 맨홀 비파괴 검사를 하고 비로소 설치 허가가 떨어졌기 때문에, 앞으로 설치해야 하는 수량이 부족했다. 민수는 조심스럽게 하나씩 지시해가며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모든 게 순조로웠다.
그런데, 갑자기 야적장 숙소에서 약간의 소란이 생겼다. 고개를 돌려 보니 에바와 함께 인력 여러 명이 숙소 문을 열어놓고 있었고 안에 누군가 누워 있는 모양이었다.
“저 새끼는 한 달 중 20일은 아프다고 여자 친구 집에서 자고 10일만 일하는 놈입니다. 리브르빌에서 비파괴 전문가로 데려왔는데 며칠 전에 관리부장이 해고했습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았는데 모든 병이 현장에서 생겼다고 1개월 전부터 현장에 나오지도 않다가 감리 왔다고 쇼하는 겁니다”
민수가 숙소에 눈길도 던지지 않고 증오를 담아 그렇게 말하면서 작업자들에게 몇 마디 프랑스어로 업무 지시를 했다. 효준이 숙소로 가보았다. 병색이 짙은 사람 하나가 금방이라도 죽을 것처럼 신음하고 있었다. 야적장에서 그를 대신한 다니엘이 근심 어린 표정으로 환자를 내려보았다. 숙소라기보다 창고 같았다. 위생적인 것은 하나도 없이 오히려 병을 가중시킬 정도로 환경이 나빴다.
그러나 일반적인 가정 집도 대부분 넓은 지붕 하나를 두고 가족들이 목재로 만든 침대 위에서 생활했으므로 개인적인 공간, 문화를 누릴 것은 거의 없었다. 휴대폰도 터지지 않는 곳이었다.
사실, 웬만한 부자가 아니면 개인 방을 가진 곳을 발견하기 힘들 정도였다. 밖에서 보면 목재로 지어진 커다란 집도 안에 들어가 보면 탁 트인 공간에 부엌과 맨 땅 위에 목재를 엮어 만든 침대가 집 안 살림의 전부여서 겨우 풍찬노숙을 모면한 곳들이 많았다. 효준은 움직일 수 있느냐고 묻고 햇빛과 맑은 공기를 마시게 밖으로 나올 수 있느냐고 묻고 밖으로 나왔다.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로 다니엘에게 의지한 환자가 밖으로 나와 간이 테이블에 앉았다.
“이름이 뭐지?”
“재스민”
“나이는?”
“39세”
“적지 않네. 나랑 반말해도 돼. 결혼은?”
“동거 중이야.”
“아이는?”
“동거녀가 임신 중이야.”
“오! 축하해. 병원 진단서 볼 수 있나?”
“지금 갖고 있지 않아”
재스민은 몸을 떨면서 힘겹게 대답했다. 키가 작고 허약했다. 리브르빌에서 계약직으로 채용해서 데려온 직원이라고 했다.
“병원에선 뭐라고 했지?”
“일하다가 말라리아에 걸리고 몸이 허약해서 병가가 필요하다고……”
“넌 회사의 급여를 받고 현장에 숙소도 마련해줬어. 그런데 여기 오자마자 여자 친구와 동거를 했고 현장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의무를 저버렸다고 들었어. 회사 일을 하다가 그랬다면 명백한 우리의 의무야. 그런데, 출근하지 않다가 오늘 온 이유가 뭐야?”
효준은 가만히 재스민이 대답하는 모습을 세심하게 눈여겨보았다. 그는 힘겨운 숨을 내쉬며 몸을 떨면서도 대답하지 않았다. 효준은 가만히 재스민이 대답하는 모습을 눈여겨보았다.
“좋아 재스민, 언제부터 아팠지?”
“사람이 아프다는데 언제부터 아프다는 게 중요해, 보스?”
“나보고 보스라 부르지 마. 난 동료이자 코디네이터이니까. 대답해 봐”
“두어 달 전부터……”
“여기 언제 왔지?”
“지난해 9월부터” “그럼, 여기 작업 시작할 때부터네? 그런데 넌 그때부터 여기 오자 마자 현 여자 친구를 만나 동거했잖아. 현장에는 결근한 횟수가 더 많고. 그런데 어떻게 현장에서 아팠다고 단정하지?”
“난 현장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최고 책임자였어. 이 거지 같은 코노빌 새끼들이 내 명령을 따르지 않고 도둑질하는 모습도 많이 봤단 말야. 이 놈들 집에 가 봐. 네가 상상도 못 할 도둑질이 많아. 그런데 회사에서 병이 생기지 않았다니 이게 무슨 처우야?”
그가 몸을 심하게 떨며 분노하듯 대답했다. 다니엘이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
“이들이 도둑질을 했는데 재스민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나?”
“하나님께 맹세코 나는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
효준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거짓말이라고 확신했다.
“좋아, 재스민. 여긴 집보다 환경이 나쁠 것 같아. 집에서 휴식하고 병원 진단서 갖고 사무실로 찾아와. 병원에 물어보고 회사에서 병에 걸린 것이 확실하다면 병원비 일체와 치료비를 주도록 하지. 그러나 거짓말일 경우엔 민병대에 신고할 거야. 프로젝트 고의적인 방해로”
재스민은 그러겠다고 하며 저 도둑놈들 사이에 자신은 기어코 결백하다고 주장했다. 에바는 환자가 저 지경인데 왜 병원비와 치료비를 대주지 않고 해고했느냐고 따지고 물었다. 회사 내부의 일이라, 보고를 해도 상관없지만 간섭은 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시료 채취가 끝나고 둘은 현장을 벌초 팀이 진행된 곳을 둘러보며 천천히 비탐 시내로 들어갔다. 고장 나 서있는 장비 몇 대가 마을에 서 있었고 그나마 운행 가능한 장비들은 시시때때로 고장이 나서 하루에 300미터 정도밖에 진행되지 못했다. 한 대당 하루에 1킬로미터의 공정률을 예상하고 투입된 장비들이었다.
야적장에 세워 둔 고가의 장비는 75cm 밖에 팔 수 없어서 무용지물, 흉물로 전락한 터였다. 새로운 장비 투입이 예정되어 있었다. 장비를 투입하면 새로운 사람들이 와야 했고 잡부 인력도 더 충당해야 했다. 계약서 상, 95%의 가봉인들을 채용해야 한다는 규정 때문에 한국인이 들어오면 그만큼의 인력을 더 늘려야 했지만 이들과 계약서를 작성하게 되면 프로젝트는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 들게 뻔했다. 어떡하든 계약서 작성은 피하고 싶었다. 민수는 리브르빌 변호사를 통해 3개월 이하 일당 인력에게는 계약서 작성이 필요치 않다는 정보로 시간만 끌고 있었다. 그런데 효준이 그들과의 계약서를 왜 작성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다.
야적장 전경. 뒤쪽에 있는 산을 깎아 오옘에 아코아캄 경기장을 중국인들이 지었던 야적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다.
어김없이 일요일이 찾아왔다. 공사는 지지부진했고 좀처럼 시원하게 치고 나가지 못했다. 효준은 그것이 용병술과 조직 체계의 문제라고 보았고 민수는 장비 고장과 인력들의 거짓말이라고 보았다. 눈 앞에 보이는 기성이 민수의 목을 죄는 동아줄을 풀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고 장비가 퍼지는 문제는 더 많은 장비와 정비 인력들을 쏟아부으면 해결될 것 같았다.
4km마다 하나씩 설치하는 맨홀은 제작이 더뎠다. 모두 오래 일해서 숙련공이 되었음에도 일하는 체만 했지, 초기에 제작되던 수량의 반의 생산량을 유지한 지 오래였다. 민수는 그들과 특별한 유대관계를 유지했다. 초창기에 들어와 그들과 축구도 하면서 다져진 마을 공동체의 인물들이었다. 민수는 효준을 데리고 코노빌 마을에 들어섰다. 마을에 있던 꼬맹이들이 한국인 보스가 왔다는 소문을 내고 금방 일꾼 몇과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나왔다. 찾아올 이방인이 없을 조그만 마을에 보스가 왔다는 소문에 사람들과 아이들이 둘러쌌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약에 취한 듯 말이 느리고 눈빛이 몽롱했다. 빨갛게 충혈된 눈빛엔 흰자가 거의 없이 빨갛든지 먼지가 쌓인 듯했다. 눈빛이 맑거나 온전한 정상인을 거의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둘은 마을 가의 음료수를 파는 집 앞에 멈추어 섰다. 8미리 말보로 라이트가 제일 약한 담배였는데 말보로는 없고 14미리 던힐과 민트 향 담배만 팔았다. 던힐이 목구멍을 쏘듯 했다.
효준이 마을 사람들과 왁자지껄 농담을 했다. 이들의 마인드는 바다와 같이 넓었는데 한국에서 통용되지 않는 농담들이 잘 통했다. 특히 성적인 농담이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어떠한 비난에도 관대했다. 중국인들이라고 말하거나, 중국인으로 알고 ‘니홍’이라고 인사하면 효준은 불 같이 화를 냈다.
“너 바보지? 한 마디 말로 나의 혈통과 문화와 국적을 바꿔버렸어!”
그러면 바로 사과를 하고 정정했다. 그런 그들에게 애정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왁작 지껄하던 슈퍼 앞에 사람들이 더 몰려들었다. 신나게 웃고 떠드는 모습이 신기했던 민수는 연신 웃음을 지으면서도 무슨 말을 하는지 신기하지 않았다. 50이 넘은 나이에 저렇게 젊게 사는 것이 신기했고 사람들과 저렇게 잘 어울리는 게 기특했다.
“아니, 일할 때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제가 허접해 보이지요? ㅎㅎ 염려 마세요. 일은 일이고 즐기는 건 즐기는 거니까요^^”
효준의 말엔 여유와 즐거움이 넘쳐났다. 화를 내는 법도 없이 사람들에게 차분히 설명하면서도 즐겁게 일하는 게 신기했다. 자신은 속이 타는데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능글맞았다.
“부장님, 제가 맨 처음 여기 왔을 때 말이지요. 야적장 찾아다니다가 이 마을에 들어왔는데 제가 유일하게 위안 삼고 행복한 곳이 여깁니다. 여기 친구들과 같이 축구하고 같이 밥 먹고 술 마시면서 진짜 특별하게 지냈습니다. 저에게는 모두가 가족 같은 사람들입니다.”
민수는 정말 마음에 위안을 얻는 모양이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항상 근심과 분노로 일관하던 일상과는 다른 모습을 발견하자 그가 정 많은 사람이지만 환경이 이중성을 띠게 만들었다고 믿었다.
마을 사람들이 둘을 에워쌌다. 음료수를 마시고 담배를 핀 다음, 할 말이 없는데도 효준이 마을 사람들과 신나게 놀고 있자, 그 원천이 신기했다. 이전의 두 통역은 말 수도 없고 내성적이었던 터라 이런 환경이 어색했지만 효준에게는 난관을 극복할 만한 카리스마가 보였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야적장 인부인 맥스가 다가와 은밀하게 여자를 소개해 준다며 우리를 불러냈다. 그를 따라 큰길에서 벗어나자 허름한 주막 같은 곳이 나타났다. 넓은 공터에 햇빛이 잘 드는 곳에 나무 한 그루가 햇빛을 차단하는 곳이었다.
습도가 높았음에도 견디기 힘들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젊어 보이는 여자 하나가 나타났다. 눈을 내려 깔았지만 젊었고 약에 취한 듯 정신이 몽롱했다. 우리가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자 그녀가 떠나고 다른 여자가 나타났다. 나이가 꽤 들어 보였다. 자매인 듯 모녀인 듯 닮은 두 사람을 모녀인지 물어보니 자매라고 했다. 맥스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맥스는 둘 다 데리고 가서 자라고 말하고 있었다. 민수가 농담 삼아 지금 가서 자면 따라올 거냐고 물었다. 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음료 시켜 마시는 사이 숲에서 잡아온 고라니를 잡아온 꼬맹이가 있었다. 집주인이 몇 번 드나들더니 꼬마는 고라니를 놔두고 돈을 챙겨 떠났다.
“저 꼬마가 와서 1만 천 원에 팔겠다고 했는데 주인이 1만 원 밖에 안된다면서 흥정하다가 결국 1만 원 받고 가네요.”
민수의 갑작스러운 소리에 대화하고 있던 효준이 좀 전의 상황을 되짚어 보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말에 놀라 민수를 되돌아보며
“나는 신경도 못썼는데…… 프렌치 다 됐네요^^”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맥스가 소개한 두 여자는, 오늘 저녁이라도 준비하고 기다리겠다고 했다. 우리는 급히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