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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ssoud Jun Feb 25. 2020

가봉 멘탈

점심을 주세요


*** 가봉 멘탈


 효준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하자 팀장이 고개를 떨구고 할 말을 잃었다. 민수는 효준의 통솔력이 마음에 들었지만 이러한 조직력 강화와 교육, 행정에 관심이 없었다. 어떡하든 공정을 빨리 마쳐 기성금을 받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어디서 돈이 세는지 관심이 없었다. 상당한 자금 압박에 시달리고 있었고 국책 공사에서 있을 수 없는 공사 금액을 40%나 받았던 터였다. 그 돈이 이미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공사를 시작한 지 7개월 남짓, 아직 첫 출발점이었던 미요케 목재 다리와 마을 민원 때문에 어쩌지 못하는 구간을 포함해서 남겨둔 부분이 너무 많았고 흐지부지 시간만 자꾸 흘러갔다.


 민수는 최선을 다했다.

프로젝트 성공은 트렌치 장비였다. 시내의 기설된 관로는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해도 대부분의 공사는 마을이 없는 곳들이라 트렌치 장비가 튼튼하고 보수유지가 간단한 제품들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한국에서는 500km 구간도 정말 2개월 만에 끝낼 수 있는 땅 짚고 헤엄치기 수준의 작업들이었다. 그러나, 가봉에서는 그런 장비들을 구하기 힘들었고 오는 장비들마다 고장과 정비에 사력을 다했다.

 처음부터 한국에서 기계를 들여왔더라면 하루에 5km 공정은 식은 죽 먹기였음에도 리브르빌의 매니저는 현지 장비를 사용해도 된다는 너무 안이한 판단을 했던 것이다. 그 판단에 따랐던 것이 최대의 실수였다. 장비 공급도 늦어져 고작 새해 들어서야 작업이 진행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같이 오랫동안 회사에서 일하면서 호형 호재 하는 사이인 형님이 PM으로 있으니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잘못된 점이 있더라도 기꺼이 감수하면서 지내 온 과정이 점점 어려운 길로 빠져 들고 있었다.


 어쨌건 새로운 시스템 채택의 소식을 알렸고 과정을 지켜보면 될 터였다. 그러나, 예상한 시스템대로 빨리 돌아가려면 시작과 끝이 좋아야 하는데도 그 과정을 장담할 수 없는 암초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렇게 간단해 보이는 작업에 개인 수도 배관을 건드려 시시때때로 민원이 들어왔고 주유소 앞을 지난다고 시비를 걸었을 뿐 아니라, 자기 집 앞의 모레와 공사에 쓸 돌을 덮어버렸다고 손해배상을 요구하기 했다.

 게다가, 프랑스 법의 지배를 받는 가봉의 일꾼들은 계약서를 작성한 사람이 거의 없었고 더불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는 이도 아무도 없었다. 너무나 기본적인 것이 준비되지 않았던 탓에 작업 지시를 하기도 민망했다. 그러나 통역의 한계는 명백했다. 내 말을 정확히 전달해주고 반응이 와야 했는데 나아지는 게 없었다. 오히려, 왜 계약서를 체결하지 않고 작업을 하는지, 분명 문제가 된다고 말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업 구간이 길어짐에 따라, 통역의 인원이 더 필요했다. 현지인 교육이 필요한 인력이 아니라 공구장들이 시키는 말만 잘하면 되는 통역이었다. 사실, 그러한 통역은 무의미했다. 왜냐하면 가봉 인력들은 무엇을 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도 못 알아듣는다는 시늉으로 한국인들을 골탕 먹이고 있었으므로 괜히 비싼 인력을 낭비하는 것일 뿐, 효준의 약속이 공허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거짓말쟁이들과 도둑놈들을 상대로 교육을 시켜 현장이 그냥 스스로 돌아가겠다고 공언하던 효준의 말을 민수는 가볍게 받아넘겼다. 무슨 용쓰는 재주가 있어서 자신이 지금까지 같이 일해 오면서 보았던 이들을 교육시켜 인재로 만든단 말인가! 그냥 현상태로 유지하여 무사히 끝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사무실에서 아침에 먹지 못한 늦은 밥을 찬물에 김치를 말아먹었다. 모두들 떠난 자리에 고요가 찾아오고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는데 작업 조끼를 입지 않은 민간인이 찾아왔다. 화가 굉장히 난 표정이었다. 팔에게 상대를 하게 하고 밥을 계속 먹자 한 두어 명이 더 찾아왔다. 모두 민원인들로 장비 주차와 차량 정비 내역서를 가지고 있었다. 지불할 날이어서 관리부장에게 얘기하고 바로바로 처리가 되었다.


 민수가 왓츠앱에 올라온 감리단과의 대화 내용을 효준에게 보여주었다. 감리 에바가 부적합 판정을 내리겠다며 사진과 함께 내용을 적어 올린 것이었다. 엘라를 급하게 불러 사무실에서 가까운 현장으로 향하자 에바가 기다리고 있었다. 현장에는 아직 되메우기가 되지 않은 곳에 콘크리트 위로 올라가 있는 배관이 그대로 묻힐 것을 예상한 에바가 성급하게 부적합 판정을 날린다고 했다.


“봐라, 에바야! 우리 지금 저기까지 되메우기 하고 여기까지 아직 안 왔지? 우리가 이렇게 되메울 것이라고 혼자 스스로 판단해서 부적합을 날리겠다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저기 인부 하나가 되메우기 하는 것을 내가 중지시켰고 메요케 구간처럼 되메우기 할 거잖아. 이건 협상할 수 없어”

“야 이 개새끼야, 이게 무슨 부적합 사항이냐! 네가 감리가 맞긴 하냐?”


 민수가 화를 내며 눈빛이 분노로 이글거렸다. 엘라는 아무 말도 없이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민수에게 보고할 때는 에바가 자주 말을 바꾸고 변덕이 심하지만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했던 터였다. 그러나, 에바와 막상 맞부딪히자 아무 말도 못 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다가 에바에게 ‘니 말이 옳아, 다시 할게’라고 말하곤 바로 꼬리를 내렸다. 사무실로 돌아와 에바가 끊어주는 부적합 판정서에 기입하는 내용을 보았다. 민수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분노를 씩씩거리며 표현하고 있었다. 효준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았지만 감정이입이 되지 않았다. 에바가 내용을 채우고 사인을 하라고 하자, 내용 확인을 하며,


“그래 이 개새끼 에바야. 지옥에나 가라!”


 사인을 끝낸 민수가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트렌치 장비로 포설 지역을 작업하는 인부들

 새로운 시스템이 도입된 첫날, 대부분의 조회는 사무실 앞에서 이뤄졌다. 광장으로의 출근은 없어지고 아침 6시 반인 데도 출근 인력은 거의 없고 맨홀 담당 이 부장 팀만이 제대로 통솔된 채,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밥도 거르고 조금 늦게 몰려온 인원들에게 작업 지시를 끝내자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찬물과 김치에 밥을 말아먹었다. 민원인들이 테라스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사무실엔 관리 팔과 안전 파브리스, 공구 담당 다비가 항상 있었다. 거기에 정확한 보직을 알 수 없는 클로테르가 부산스럽게 다니며 공구를 챙겨주거나 행정 보조 역할을 했다. 그중에, 항상 말없이 할 일만 하는 팔과 다비가 효준의 마음에 들었다. 대부분의 민원은 그들을 통해 효준에게 맞는 언어로 전달되었다. 그러나, 왜 그런 민원 계약서를 만들었는지 이해되지 않았고 차량 계약서도 모든 정비와 서류까지 해 주는 것으로 되어 있어 수정이 시급해 보였다.



*** 왜 밥을 안 줘?



 오후, 민수가 시내 관로 작업장에 효준과 관리 감독하고 있을 때였다. 엘라가 관리하는 인력 터파기 은쿨루 팀이 주유소 앞에서 열심히 땀을 흘리고 있었다. 효준이 담배 피는 모습을 보고 인력 중 누군가가 담배를 달라고 요구하자 단번에 거절했다. 그러자 이제는 배를 잡고 먹을 것을 달라는 것이 아닌가. 효준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다들 먹을 것을 사주기를 기대하고 있던 동료들도 같이 효준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노란 모자를 쓰고 있던 반장 은쿨루가 땀을 뻘뻘 흘리다가 대표로 일어나서 효준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보스, 우리 점심도 못 먹고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데 먹을 것 좀 사줘?”

“왜 점심을 못 먹어? 난 너희들 보스도 사장도 아냐! 그렇게 부르지 마!”

“점심 값을 안 줬잖아!”

“뭐? 점심값이 급여에 포함되니 알아서 도시락 싸오라고 했잖아! 점심 안 먹으면 일도 없다 했지!”


둘의 대화를 지켜본다고 모두들 작업을 정지하고 귀를 쫑긋 세웠다. 민수가 무슨 일이냐고 묻자, 간단하게 ‘점심 때문에, 애들이 도시락을 안 싸왔다고’ 대답하면서 은쿨루에게 시선을 돌렸다.


“오늘 아침 조회 때, 점심에 대해 내가 뭐라고 했지?”

“아침 모임에 참석 안 했어!”


효준이 작업을 중지하고 모두를 불러 모았다. 이들이 거짓말에 장난을 쳐 보겠다는 의도를 간파하고서 다시 한번 다짐을 두자고 불러 모았다. 모두들 잔뜩 기대를 하고 있는 눈치였다.


“모두들 점심 안 먹었나?”

“안 먹었습니다. 보스”

“좋다. 모두들 작업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가라. 도시락을 싸올 사람들을 찾겠다. 그리고 너, 나보고 보스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다.”

“……”

“점심을 먹지 않으면 일도 없다고 아침에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내가 점심을 안 줬다고?! 아침 조회 때 나는 분명히 은쿨루를 보았다. 그런데 현장에 없어서 듣지 못했다고 한다. 나를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 더욱이, 너희들은 점심 값을 급여로 받고 현장에서 먹을 것을 다시 요구하는 것이다. 맞나?”


몇몇은 ‘그렇다’고 대답했고 몇몇은 ‘아니다’라고 대답이 엇갈렸다.


“우리도 먹고 일해야 해. 점심 값을 안 줬잖아”


누군가 다시 얘기했다. 조삼모사가 생각났다. 점심 값이 급여로 들어가는데도 현장 점심을 따로 요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았다. 이들은 점심 값을 아끼고 점심 값을 다시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들의 습성이었다. 그 습성이 현장을 뒤덮고 있었고 그것을 가봉 멘탈이라고 불렀다.


“너 이름이 뭐야? 관리에게 말해서 현장에서 아웃시키겠다. 이름 대”

“…… 그래도 점심 값을 안 줬잖아”

“너희들 나와 놀아보겠다는 심산이지? 너희들과 대화하지 않겠다. 오늘 이해 못했다면 내일 확인해서 점심 싸오지 않은 사람은 무조건 귀가 조치한다. 이의 있는 사람?”


그들은 군말 없이 구덩이로 들어갔다. 민수가 무슨 상황이냐고 묻자, 자초지종을 얘기해 주었다. 효준은 화도 내지 않고 유연하게 그들을 다루었다.


“하여튼, 거지 같은 새끼들! 윤 부장님은 아직도 이들이 여유롭고 행복지수가 한국 사람보다 높다고 생각합니까?”


민수가 효준이 했던 말을 비아냥거렸다.


“그리 생각합니다. 없고 배고파서 사람들에게 손 벌리는 게 행복의 척도는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일하지 않는다고 해서 우리보다 못하다고 할 수 없지요!”


“그 멘탈 한 번 좋네요”


 오후 네 시, 아직도 햇빛이 쨍쨍했다. 햇빛 아래 선 모두의 살갗이 까맣게 타고 있었다. 작업자 하나가 급하게 다가와 장비가 고장 났다고 했다. 기름이 줄줄 센다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민수가 앞장서서 포클레인으로 다가가 확인해 보았다. 장비를 확인하던 나이 든 작업자는,


“어? 괜찮아졌네?”


 하고 아무 일 없던 듯했다. 장비 기사가 눈만 멀뚱하게 뜨고 딴짓을 했다. 그들은 민수에게 잡혀 다섯 시가 넘어서까지 일일이 작업 지시를 받았다. 이제는 주차할 곳이 없다고 했다. 민수는 장비기사를 데리고 가서 광장에 주차 위치를 지정해 주었다.


주유소 앞의 터파기 작업과 왼쪽의 에바 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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