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계 연구소 Dec 30. 2023

당신의 등급(等級)

하이클래스로 살기

사람에도 급(級)이 있다. 모든 인간이 사회적, 제도적으로 평등하게 대우받는 것과 별개로 사실은 더 가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나 나은 삶을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며,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누가 더 급이 높은 사람인지, 더 나은 삶을 사는 사람인지, 더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타인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이런 광고 문구를 접한다. '격이 다른 아파트', '당신의 품격을 위해'. 그러나 사람의 격은 얼마나 좋은 학벌을 가졌는지,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가졌는지, 어떤 집에서 어떤 차를 타는지, 심지어 얼마나 기부하고 얼마나 봉사하는지로 나뉘지 않는다.  


왜 알 수 없는 타인의 '격(格)'을 애써 짐작하는 것보다 나의 '격(格)'에 집중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 '격'이라는 것을 높이거나 낮추는 결정들은 아무도 보지 않는 장소에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일을 결정할 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돈을 많이 벌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갖거나, 인기가 많거나, 기부를 많이 하거나 등등 타인의 눈에 그럴듯한 삶을 사는 사람, 즉 '품격(品格)이 있는 사람'으로 보이는 일은 실제로 그렇지 않은 사람이더라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그가 아무도 없는 자신의 세계에서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는지는 우리가 알 길이 없지 않은가. 차라리 '나의 품격(品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낫다.


자신의 품격(品格)을 높이는 방법


사람의 '격'을 볼 수 있는 장소중 하나는 '공중화장실'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그곳, CCTV도 없는 그곳.

 

어릴 때 DVD방 알바를 잠깐 할 때였다. 위치가 종로의 번화가였기 때문에 잘 차려입은 커플들이 많이 왔는데, 그들이 나간 방과 다녀간 화장실은 그들의 행색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소파 사이에는 정액이 묻은 휴지가 깊게 끼어 숨겨져 있고, 화장실 손 닦는 휴지는 쓰레기통에 손이라도 닿을까 그냥 던져 버렸는지 쓰레기통 안이 아니라 옆에 산처럼 쌓여있다. 여자 화장실 청소가 하이라이트인데,  잘 말아 버렸으면 하는 생리대가 치부를 드러내듯 쫙 펴져서 쓰레기통에 붙어있는 것이 일상이다. 분명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자신을 멋지게 꾸미고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 신경 쓴 사람들 같았는데 말이다.


가끔 공중화장실에서 마지막 남은 두루마리 휴지가 돌아가다 휴지심이 바닥에 떨어질 때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선택은 어떠한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발로 밟은 그 바닥, 앉아서 똥오줌을 싸고 간 그 바닥에 있는 휴지심을 주워 옆에 있는 휴지통에 넣는 것, 그리고 내가 본 변이 아직 묻어있어는 변기를 닦는 내는 것이 '하이 클래스(상위계급)의 품격'이다.


'격'을 볼 수 있는 볼 수 있는 또 다른 장소는 '숙박업소'다.


이불 정리를 하지 않아도, 쓰레기를 소파 위에 올려두고, 먹다 남은 음식을 주방에 널어놓고 떠나도 돈을 더 내거나 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입실할 때 보다 더 잘 정리를 하고 나온다. 왜 그럴까? 머물고 떠난 자리에도 자신의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닌 ‘격조 높은 나’님이 머문 자리니까.


또 자신의 '격'을 볼 수 있는 일상의 쓸데없는 순간들이 있다. 먹고살만한 요즘에는 뜸하지만 예전에 굉장히 흔하게 듣던 표현이 있다. "그거 한다고 쌀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쌀 나오고 돈 나오는 일에는 누구가 열심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일을 할 때는 그 사람의 본래의 태도가 나오기 마련이다.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을 위해 문을 잡아주는 것이 그렇고. 아이나 노인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이 그렇다.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우연히 놓친 쓰레기를 다시 주우러 돌아가는 것이 그렇고, 운전을 하며 어린이 보호구역을 지나갈 때 그렇다.  


또 '격이 높은 사람'은 민폐를 끼치는 빈도가 현저히 낮다. 사실 우리는 많은 빚을 지며 산다. 단지 자각하는 경우가 드물 뿐. 대놓고 신세 지고 피해 주는 상황들이야 어느 정도 상식이 있는 사람이면 스스로 느낀다. 하지만 살다 보면 당하는 사람이 먼저 말하기는 민망하고 민폐를 끼친 사람도 눈치를 전혀 못 채는 상황들이 생각보다 많다. 심지어 폐를 끼치고도 자신이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으니 얼마나 상황들이 애매한가. 예를 들면 남이 안 쓰는 공간이나 물건을 빌려 쓰는 경우다. "어차피 우리 집 비니까...", "어차피 나는 안 쓰니까..."는 품격을 높이는 사고라면 그 반대는 품격을 낮춘다. "어차피 너네 집 비니까…“어차피 너는 안 쓰니까…”“어차피 너는 잘 버니까…”


남의 시간이, 공간이, 물건이, 감정이 어떤 상태인지는 판단할 때는 가장 높은 가치를 적용해라. 그게 ‘격’이다.


내 안에 깊게 숨겨진 것들이 나의 ‘격(格)‘이다.


내 머릿속은 어떤 생각들로 채워져 있나.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것, 심지어 어떤 다른 형태의 창조물로 표현한다 해도 그것은 이미 왜곡되어 있는 상태다. 정말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하지도 않을 그것. 글로 쓰지도 않았고 쓰지도 않을 그것. 하지만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것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아무것도 아닌 일을 대하는 태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그 생각들이 당신의 ‘등급(等級)’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은 잘 팔려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