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의 메커니즘
나의 문제는 복잡하고 남의 문제는 단순하다.
밥 먹다가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성질을 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이 그런다.
"쟤는 뭘 그런 거 같고 저렇게까지 화를 내냐..." "삐질일도 참 많다..."
그는 진짜 누군가 던진 어떤 한마디 말 때문에 성질이 났을까? 거의 100% 확률로 그렇지 않다. 물론 그 어떤 한마디라는 것이 아주 무례하거나 참을 수 없는 수위였으면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경우에는 대개 주위에 사람들이 발언자를 나무라고 그의 편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다.
그럼 그는 진짜 왜 삐졌을까? 아니 왜 화가 났을까? 아니 왜 분노했을까?
짧게 보면 밥 먹기 전까지 일진(日辰)이 사나워 하는 일마다 꼬였던지 또는 출근 전 집에서, 아침부터 대판 했을 수도 있겠다. 밥 먹기 전에 부장님에게 한소리 듣고 '걸리기만 해 봐라'모드였을 수도 있고, 배가 엄청 고파서 예민해졌을 수도 있겠다. 아니면 그 자리에 있는 누군가를 좋아했나?
조금 더 길게 보면 그는 어릴 때부터 갖고 있는 콤플렉스나 트라우마가 있었고 그 '한마디'라는 것이 그것을 폭발시키는 트리거 됐을 수도 있다. 또는 그 식사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과의 복잡 미묘한 관계가 쌓이고 쌓이다 그 시점에서 터져버렸을 수도 있겠다.
이 모든 조건들은 빙산의 일각이다.
그의 분노는, 생각할 수도 없이 긴 시간 동안, 셀 수도 없이 많은 이유들이 얽히고설켜 일어난 일이다. 100%의 확률로 정확히 그렇다. 그가 "미안... 어제 잠을 못 자서 너무 예민했네..."라고 그의 분노를 퉁치려고 한다 해도 그것은 거짓말이다. 아니 거짓말이기보다 제일 최근에 있는, 제일 그럴싸한, 제일 사람들이 그리고 그 스스로 받아들여줄 만 이유를 '하나' 찾아낸 것뿐이다.
이건 남의 얘기니까 이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하는 게 확대해석? 과대망상? 뭐 그런 거 같게 들리기도 하겠다.
그러나 이제 '나'(당신)의 문제를 보자.
'나'(당신)는 그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의 별거 아닌 한마디를 듣고는 화를 내고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말은 동석자 모두가 생각하기에 딱히 무례하거나 공격적이지 않았다. '나는 식사자리에서 화 안 내는데', '나는 사람들 있는데서 그렇게 감정 표현 안 하는데'라고 반문하는 사람이라면, 다른 상황을 떠올려봐도 좋다. 운전할 때 별것도 아닌 일에 감정이 상했다던지, 혼자 방 안에서 본 영상하나에 마음이 뒤숭숭했졌다던지.
일단 화가 나기 직전 좋아하는 사람과 기분 좋은 통화를 했다면 그 화는 안 났을지도 모르다. 그때 그 애인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르고, 오늘 아침 입고 나온 옷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른다. 식사가 조금만 더 빨리 나왔더라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르고, 앞에 그놈의 부장이 앉지만 않았어도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른다. 알아주는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르고,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사람이었다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른다. 어릴 때 더 많은 칭찬을 들었다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르고, 엄마가 몇 번만 더 안아줬으면 그 화가 안 났을지도 모른다.
1000억 개의 신경세포와 100조 개의 신경 연접부를 갖고 있는 '나'의 뇌가 하루동안 생각을 위해 쓰는 세포수는 1000만 개다. 물론 머릿속에서 뿐 아니라 '나'의 몸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과정들을 '나'는 알고 있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나의 행동에 대한 납득할만한 이유와 변명정도는 충분히 찾고도 남는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기억이 있는 모든 시간을 털었는데 그거 하나 못 찾을까.
그러나 '남'의 이유는 못 찾는다. 그는 '나'가 아니니까.
그래서 우리는 늘 '내로남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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