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는 과정의 증명이 아니다
30억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보통 돈의 가치를 생각할 때, 그 돈을 '어떤 사람이 가졌는가'를 제쳐두고 '액수'와 '상품'으로만 계산을 하곤 한다. 30억이면 어느 동네에 어떤 평수의 아파트를 살 수 있다던가, 어떤 차를 살 수 있다던가, 매일매일 하루에 얼마를 써도 돈이 줄지 않는다던가 하는 식이다.
그러나 그 30억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따로 있다.
'그 돈을 어떤 사람이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오랜 기간 길거리에서 생활하는 거지에게 거처할 곳을 공짜로 제공해도 다시 길거리로 나간다는 말은 많이 들어 본 이야기다. 직업을 갖게 해 줘도 도망간다고 한다. 그 말은 거지에게 30억을 그냥 줘도 거지는 곧 다시 그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는 뜻이다.
통장에 3,000,000,000이라는 숫자가 찍힌 날 이후로 잠깐이나마 행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사고 싶은 것도 많고,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망가진 자기의 인생을 재건해 볼 희망도 각오도 쏟아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만한 돈을 벌어 본 적도 써 본 적도 없다. 무엇보다 '그'라는 사람의 인생을 대하는 태도, 살아가는 습관은 30억의 가치를 컨트롤할 만큼 훈련되지 않았다. 일단 원하던 술을 마음껏 사고 마약을 마음껏 하면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할 테고, 머지않아 그 돈은 더 많은 빚으로 변해 그를 쫓아다니게 될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의 생활 습관, 인성, 태도까지 가기도 전에 그 백일몽은 끝날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는 그 돈을 지킬만한 능력이 없다. 아마 여기저기에 뜯어가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착취를 당할 확률이 제일 높다. 아마 그 돈이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갈 수도 있을 거이다. 그에게 30억의 가치는 오히려 '죽음'이다.
성공한 우리의 인생도 30억 거저 받은 거지나 다를 것이 없다.
우리는 인생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을 거라는 착각을 갖고 산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참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예민하게 감각하면서 살면 언젠가 결과로써 인정받을 날이 올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우러러볼 왕관을 쓸 수도 있을 것이라는 기대로 산다. 인심 후하게 써서 남들 시선 하나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라도 치면 '나'님이 스스로 인정할 만한 무엇을 이루려고 발악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결과는 과정의 증명이 아니다.
우리가 대단한 결과를 얻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위에 언급한 거지처럼 능력도 안되는데 거저 얻게 된 결과. 그것은 위에서 이미 '상'이 아니라 '독'이 되는 것이 어느 정도 증명됐다고 본다.
그리고 우리가 '대단한 결과물'을 갖게 되는 또 다른 길은 인내와 노력으로 천천히 얻어내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능력이나 경험이 있어서 그 결과물이 얻을만한 사람으로 성장해 있을 확률이 크다. 천천히 차곡차고 이루어냈을수록 그렇다. 아마 그것이 돈이라고 치면 그 돈을 누구에게 쉽게 뺏기거나 흥청망청 다 써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데 있다.
사람들은 내가 이미 가진 것에 대해서는 큰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식구들 각방 쓰게 해 주는 게 꿈이었던 사내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만한 집을 얻었지만 그 행복은 얼마 가지 못했다. 살다 보니 동네도 변두리고 이것저것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차도 좀 바꾸고 싶고, 옷도 좀 더 좋은 걸 입고 싶어졌다. 이전에는 무시받지 않고 살고 싶었는데 이제는 남들이 나를 우러러봤으면 하는 욕망도 생긴다. 강남에 입성해서 더 좋은 차 더 좋은 곳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면 그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 믿고 그는 또 달린다./
어마어마하게 부자가 되고 누구나 아는 스타가 돼도, 예술 분야든 과학 분야든 실력하나로 세계를 씹어먹게 돼도 이루고 나면 모두 부질없게 느껴진다. 불 꺼진 방에 혼자 있으면 외롭고 바쁘게 일하러 다니며 이동하는 차 안에서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다...'라는 공허함도 온다. 우울함에 발버둥 치면 약에 손을 대기도 하고 일탈이 하고 싶어 기행을 하기도 한다. -돈 있고 힘 있는 자들의 기행은 무섭다.- 인생의 허무함에 허덕이다 심지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재벌과 예술가와 연예인, 모든 걸 가진 것 같은 그들이 비참하게 생을 마감하는 모습을 얼마나 많이 봤던가.
또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열등감에 사로 잡혀있는 사람은 그 열등감이 더 좋은 결과물로 사라질 것이라 믿지만 결코 그런 일은 없다. 그는 지금 보다 더 좋은 직장에 좋은 연봉을 받아도, 더 좋은 차를 타고, 남들이 굽신거리는 위치에 올라가도 열등감 덩어리일 것이다. 아니 더 해롭고 쌘 영향력을 가진 열등감 덩어리일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돈을 잘 벌고 성공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열등감에 더 치장하고 더 처바르으고 더 비싼 거 더 화려한 걸 하다가 인간 위에 지배하려고 미친 짓을 한다.
어머니의 먼 친척 중에 한국에 건물이 몇 개나 있고 떵떵거리며 사는 80살의 할머니가 계신다. 어릴 때부터 그 할머니의 어머니가 수완이 좋으셔서 여장부로 사업을 하셨고 그 할머니 역시 돈 버는 능력이 좋으셔서 부자가 되었다. 근데 그 할머니가 옛날 얘기를 하면 서럽게 우신다. 어릴 때 엄마한테 식모취급받고 존중받지 못하면서 자란 것이 한이 된다며 펑펑 우신단다.
그래서 결국 얼마나 대단한 결과물을 갖느냐는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오히려 곪아 썩고 있는 고름을 이쁘게 덮어줘서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독'이 될 것이다.
단지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가진 것을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지금 이 순간 나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는가'
그뿐이다.
마음이 조급하면 이렇게 내 생활에 안주하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렇게 편한 게 발전이 산다면 그것은 진짜 사랑하는 마음이 아니다. 진짜 감사하는 마음이 아니다. 당신이 지금 가장 소중이 여기는 물건이 있다고 치자. 그러면 절대 그것을 방치하지 않는다. 먼지 쌓이고 녹슬게 절대 놔두지 않는다. 갈고닦고 어떻게 하면 더 멋지게 만들까 고민하고 매일 노력할 것이다. 일구월심 그 생각만 할 것이다.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게 되어있다.
더 갖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가진 것이 너무 감사하고 소중하기 때문에.
AI 시대에는 더더욱 과정에 의미가 있다. 음악이고 영상이고 모든 것이 인공지능이 뽑아내는 시대다. 제발 '이거는 아직 인간을 못 따라가지'같은 머저리 같은 소리를 짚어치우고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무리 통역기가 좋아져서 아무 불편함 없이 통시 통역이 되는 시대를 살아도 외국어를 배우는 기쁨은 통역기 만들어 줄 수 없다. 그 외국어 실력이 통역기 보다 형편없어도 말이다. 내 그림이, 내 영상이, 내 음악이 AI의 결과물 보다 보잘것없어도 그것을 배우고 만들면서 느끼는 감정과 과정에 가치를 부여하면 게임이 달라지는 것이다.
당신이 지금 보다 저 노력해서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되어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내가 장담한다. 결과를 위해 달린다면 말이다. 누가 당신에게 30억을 그냥 준다고 해도 거절해라. 당신이 30억을 가진 사람이 되는 것과 30억을 벌어 본 사람이 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얘기다.
지금 이 순간을 더 사랑하고 감사하는 것만이 가치의 전부다.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게 아니고 진짜 그냥 전부다. 적어도 개인의 삶에서는 그렇다.
결과는 과정의 어떤 증명도 될 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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