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계 연구소 Mar 25. 2024

당신의 은퇴시기를 정확히 알려드립니다

변하거나 떠나거나

살아있다는 것

모든 사람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들거나 경력이 쌓이면 자신만의 착각 속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이 죽은채로 살아간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나이가 몇인데', '내가 이 바닥 짬이 얼만데', '내가 회사만 몇년인데', '내가 이 단체에 봉사한게 몇 년인데', '내가 그런 사람을 얼마나 많이 겪어봤는데'등등 그들을 위한 변명은 충분히 많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배우는 시기

태어나서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적어도 부모님께 잔소리를 듣는다. 아주 어릴 때는 뭐가 좋은지, 위험한지, 밥을 먹고 잠을 자는 것 등 생존에 필요한 내용을 배우고 그 이후에는 예절, 정리, 공부, 태도, 인성 등에 대한 가르침을 받는다.


그리고 성인이 되면 대학교 같은 교육 기관에서 소양을 쌓고 앞으로 어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교육을 받는다. 그것은 때론 철학적이거나 마인드에 대한 것이기도 하고 그 분야와 관련된 직접적인 기술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음악가는 ‘어떤 음악가가 될 것인가’와 ‘얼마나 기술이 좋은 음악가가 될 것인가’를 배우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시기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어떤 분야에 뛰어들면 치열하게 실무를 배우게 된다. 공부만 할 때는 몰랐던 세상의 냉정함도 배우고, 프로 세계의 치열함도 배우고, 인간 세상의 부조리함에 인생의 씁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이 일은 내 일이 아니구나…’하고 떠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를 악물고 버텨 초보의 티를 벗고 한 단계 올라간다. 그렇게 계속 한 분야에서 버텨내면 대리가 되고 과장, 부장이 되기도 하고, 주니어에서 시니어라는 지위를 갖기도 한다. 파트너나 다이렉터라는 직함을 갖는 분야도 있다. 예술 쪽은 무슨 감독님 소리를 듣고, 종교계는 아래에 작은 스님, 부목사들을 거느리거나 큰 단체의 장을 이것저것 맡게 된다.




성장을 막는 경험과 지식

문제는 이쯤부터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실체를 모르고 살게 된다. ‘내가 이 바닥에서 경험이 얼만데!’ 일단 이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면 제대로 된 판단을 못하는 상태가 됐다고 보면 된다.


이 자부심 가득한 전제는 다른 말로 하면 ‘나는 맞고 너는 틀리다’는 뜻이다. 좋은 말로 “니 생각도 무슨 뜻인지 알겠고… 어쩌고저쩌고…“해도 결론은 늘 같다. ‘내가 맞다 ‘

이런 돌처럼 굳은 유물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아닌데?!’라고 착각하고 자위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충고도 변화도 없는 시기

어느 정도 나이가 되거나 지위가 생기면 아무도 나한테 충고를 하지 않는다. 어릴 때보다 생각은 더 경직되고, 고집은 더 세지고, 경험을 통한 데이터로 기계처럼 살아가는데 외부 자극까지 없어진 상태가 되는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 잘 돌려서 조언을 해도 눈치도 못챈다. 내가 할만큼해서 나이먹을만큼 먹어서 삶이 안정된 줄 아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내가 잘해서 주위의 동생들, 후배들, 함께하는 사람들이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생각한다면 살아있지만 죽은 상태나 다름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함께하는 어떤 그룹이나 단체든 그것은 유기체이기 때문이다. 조직이 늘 변화한다는 것은 나도 늘 변화해야한다는 뜻이다. 살아있는한...계속...


그들은 단지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뿐이다. 그게 권력의 힘일 수도 있고, 나이나 지위에 대한 존중일수도 있다. 괜한 트러블을 만들기 싫어서 일수도 있고, 상처 주는 말을 잘 못해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잘하고 있어서’라고 생각한다면 100% 착각이다. 더불어서 내가 인정하는 사람, 내 편인 사람들의 달달한 충고만 수용하는 스스로의 모습을 가끔 섞어주면 어느 순간 ‘나는 유연한 사고를 하는 사람’이라는 정신승리를 하기 딱 좋은 조건이 완성된다.




전문가는 위험하다

한 분야에서 오래 몸담고 있을수록, 혹은 그냥 생각하던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던대로 행동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가 오기 마련이다. 그때 보통 ’아 내가 이제 어느 정도 괘도에 올랐구나 ‘라는 착각을 한다. 그건 경제적 안정이 오는 시기일 수도 있고 직장 내의 부하직원들이 군소리 없이 일하는 시기 일수도, 내가 이끄는 조직이 분쟁 없이 조용한 시기일 수도 있다. 혹은 내 실력을 인정받거나 인기가 생기는 시기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실 그 이유는 내가 실력이 좋아져서, 경험이 많아져서, 경지에 올라서라기보다는 그냥 새로운 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전이라는 말도 거창하다. 그냥 습관이상의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오랫동안 공들여 만든 자신의 편안함(Comfort Zone)에 머물러 뭐라도 된 것처럼.



어떤 과학자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생각난다. 갑각류는 딱딱한 껍질 때문에 성장을 하기 위해 허물을 벗는데, 그때는 작은 충격이나 공격에도 쉽게 상처받고 위험해질 수 있는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때만 유일하게 딱딱한 껍질을 벗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 우리 인간 또한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나는 얼마나 자주 껍질을 벗고 위험한 곳으로 나아가는가. 어색하고 창피한 상황에 나를 던져야한다. 불안하고 걱정되는 상황에 나를 던져야한다. 주위 사람들의 말을 믿어봐야한다. 늘 숨겨진 내 모습을 발견하려고 애써야한다. 그것은 그냥 자신을 가꾸고 늘 같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경험을 쌓고 성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다.


변화할 생각이 없으면 떠나야 할 때

‘이 정도면 할만큼 했다’라던가 ‘이 나이에 뭘 더...’라고 생각하면서 그냥 '이대로' 사는것을 자기만의 선택이라 치부하는 경우가 많지만, 변화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혼자만의 일이 아니다. 민폐고 해(害)다. 본인만 모를 뿐. 그 안의 누군가는 고통을 받고 있거나 그 조직이 곪아가고 있을 것이다. 당신이 그 조직에 어른이나 리더라면 더더욱 그렇다. 보통은 그 해악이 바로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역시 내 방식은 틀리지 않았어!' 그렇게 자위를 하면서 나름 만족스러운 죽음을 맞이 하는것 같다. 본인의 생각에는 모든 것이 잘 돌아가고 있고 아무도 충고나 비난을 하지 않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스스로 만든 딱딱한 껍질, 그 경험과 지식 그리고 착각, 안에 있어서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할 뿐.


변화하지 않는 모든 방식은 틀렸다


그것은 부모자식같은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고, 전문가, 정치인, 예술가, 종교인, 직장인 분야를 따질 필요도 없다. 무슨 철학책을 몇 권씩 내고, 대기업 강연을 다니고, 큰 행사나 단체에 불려다녀도 다르지 않다. 그 크기나 모양은 상관없이 자기 다람쥐통을 돌리고 있을뿐이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많아져서, 어디서 한자리를 하고 있고 나름 좋은 소리를 들어서, 한 단체를 속속들이 안다고, 또는 주위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거나 생각을 알아보는 일을 종종 한다고해서 꽤 괜찮은 어른이나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생각과 말은 다르기 일쑤고, 내 앞에서와 뒤에서 다를수도 있으며, 내가 잘될때와 안될때가 다를 수 있다. 오직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내 모습'만이 내가 아직도 이곳에서 쓸모있는 인간인지를 증명한다.




어제의 나와 내일의 내가 오늘과 다르지 않을 것을 알고 있고, 내가 내일 할 결정을 오늘도 알고 있다면 그때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변하거나 떠나거나.





매거진의 이전글 내 인생 최고의 스탯(sta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