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연예인이 유독 불행한 이유
뉴진스의 엄마라 불리는 민희진 인터뷰가 대박이 났다. 수십만 명이 아니 수백만이 보고 있을지 모르는 기자회견에서 울분을 토하고 쌍욕을 박는 전사의 모습에 누구의 편에 서있던 상관없이 강렬한 임팩트를 받은 모양이다.
뉴진스와 민희진, 하이브의 싸움에서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누구나 인정하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가요계가 시스템적으로 아주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민희진의 인터뷰를 관통하는 한 가지 주장 역시 ‘가요계가 썩었는데 나는 그런 거 아무것도 안 하고도 된다는 거 보여줄라고 싸웠고, 지금 이렇게 됐다.”로 요약된다.
음원 순위를 조작하고, 어린 팬들이 앨범을 수십 수백 장이 사주고, 언플을 통해 마케팅을 하고, 힘으로 꽂아주고 내리찍고 하는 것들. 무엇이 불법이고 무엇이 합법인지, 무엇이 도덕적이고 무엇이 비양심적인지. 그런 얘기는 한국 연예계에서 의미가 없다. 이런 이야기들은 한국의 가요계나 연예계가 아니어도 세상 돌아가는 어디에도 있는 얘기들 아닌가. 그것이 민희진의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평범한 회사원들이 엄청난 감정이입을 경험하고 대리만족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연예인들이 유독 불행한 한국 연예계 전반의 문제점을 얘기하고 싶다.
세상 어디에도 한국 같은 나라는 없다. 연예인의 영향력과 책임감이 어떤 위치에 있는 어떤 사람보다 강력한 나라. 기업가든 정치인이든 흔히 ‘공인’ -공적인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 말하여지는 사람보다 더 ‘공인’이 되어버린 정체성을 연예인들이 갖게 된 것.
그래서 한국의 연예인들은 사실 한국의 경제 규모나 하는 일에 비해 비상식적으로 많은 돈을 벌고, 비상식적으로 많은 사회적 존경을 받는 것이다. 물론 그런 이유로 이해할 수 없는 도덕적, 사회적 책임과 개인의 자유에 대한 침해, 사생활에 대한 공격 등을 감수해야만 한다.
나는 이것이 많은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거나 심리적 정신적으로 폭발해 버려 반사회적 성향을 갖게 되는 중요한 이유라고 생각한다. 강력한 경제력과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존재인 동시에 처절하게 개인이고 싶은 욕망이 충돌하여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한 인생을 망쳐버리기 충분하다’
대한민국의 연예계는 왜 이렇게 됐을까?
1. 대한민국은 하나다.
기본적으로 한국이라는 작은 땅떵이에서 무언가 이뤄내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가 되어야만 했다. ‘온 국민이 힘을 합쳐…’로 시작해야 세계라는 판에 명함을 내밀 수 있는 건덕지라도 만들어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이 유명하면 전 국민이 알고 드라마가 유명하면 온 국민이 그 얘기를 한다. 예능 프로에 나오는 사람들은 온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 MC가 된다. 그것이 가수던 배우던 운동선수던 정치인이던 그 팬이나 지지자들이 모인 특정한 장소가 아닌 불특정 다수의 공공의 영역에서 그들이 언급되고 칭송받고 비난받는 일은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있다.
2. 당신이 보는 그 사람은 ‘그 사람’이 아니다.
한국은 미디어를 통해 보는 연예인과 실제 ‘그 개인’의 모습을 동일시한다. 리얼 버라이어티가 대세가 되면서 더 그렇게 됐다. 미디어를 통해 연예인은 연예인으로서의 ‘일’을 한다.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철강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 출근해서 철강 관련일을 하는 것은 ‘그 사람’ 자체가 ‘철강’으로 치환될 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직업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직업은 ‘그 사람’의 일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전체는 될 수 없다.
3. 너무 많은 신뢰와 책임감
한국의 연예인은 방송에서의 일거수일투족을 통해 국민의 신뢰와 신임을 받기도 하고 비난과 욕설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예전 무한도전에서 추격전을 할 때 박명수가 지나가는 행인의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가는 장면을 본 외국인 친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한국은 그냥 연예인이 저렇게 작 오토바이 타고 가면 놔두냐고. 한국처럼 연예인에게 무한 신뢰를 하는 나라는 없다. 티브이 광고에 모두 스타를 이용해 스타 마케팅을 하고 그 많은 개런티를 주는 나라도 대한민국뿐이다. 그만큼 연예인의 이미지가 사회적 파급력을 갖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반대로 외국은 연예인이 대마초 피고, 음주 운전한 걸로 사회적 비난을 받지도 않는다. 실망하는 팬이나 비난하는 사람이 없지는 않겠지만 그 일로 사회적 지탄을 받고, 반성의 기자 회견을 하고 자숙의 기간을 갖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의 영역이고 사회가 나서서 비난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이 한국의 그들보다 매우 작기에 가능한 일이다.
4. 연예계 시스템이 빈약하다
연예계뿐 아니라 사람자체가 상품이 되는 문화 예술계는 다 똑같다. 그 영향력과 돈이 오가는 규모에 비해 시스템이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그 뒤에서 얼마나 많은 스텝들이…”라고 해도 일단 스타가 되고 나면 그 스타만 등장해도 돈이 만들어진다. 좋은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스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유독 연예계는 그 간극이 심하다. 문화산업 중 단독으로 가장 많은 돈이 굴러가는 곳이고 하룻밤 사이에도 스타가 될 수 있고,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곳이라면 시스템이 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번의 뉴진스 사태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이브의 시가 총액, 언급되는 돈의 액수, 사회적 영향력에 비해 그 시스템 안에 언급되는 사람 수, 서류, 조직은 형편없지 않은가. 그 액수와 인기를 걷어내면 마치 동네 상권 다툼하는 양아치들 싸움 같은 모습이다. 어떤 시스템도 없고 보호장치나 빈틈없는 계약서, 서류 따위도 없으며, 사회적 권위와 책임감을 느낄 수도 없다.
대한민국의 연예인이 더 행복해지는 방법은 있다.
그들이 ‘연예인’이라는 직업을 가진 더 작은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아무런 노출이 없는 평범한 회사원처럼은 아니겠지만 더 적은 영향력과 더 적은 책임감을 가진 존재로서 사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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