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간계 연구소 May 01. 2024

내 4000억짜리 작품을 함부로 베끼다니

내 고유한 지적 재산을 보호하라

저작권이라는 개념은 생각보다 매우 복잡하다. 현업에 있는 사람들도 조금만 다른 분야로 가면 헷갈릴 정도로 종류가 다양하고 법적으로 복잡하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내가 작품을 만들었으니까 쓸라면 나한테 돈 내"라는 개념은 대충 '저작재산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작재산권은 저작자가 사망한 지 70년이 지나면 보호 기간이 만료하는 것이 원칙이다.(저작권법 제39조) 이 기간이 이렇게까지 길어지게 된 것은 우리가 잘 아는 '미키 마우스'의 주인 '월트 디즈니'의 노력이 컸다.


미국의 저작권법은 ‘미키마우스 보호법’이라고 불렸다. 1790년, 미국에서 저작권법이 최초로 제정되었을 당시 저작권 보호 기간은 14년이었고, 그 이후 14년 추가 연장이 가능해 최장 보호 기간은 28년이 되었다. 1928년에 디즈니는 다시 보호 기간을 늘려 저작권 보호 기간은 총 56년이 되었고, 디즈니사는 미키마우스 저작권 보호 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1976년 미 의회에 저작권 보호 기간을 19년 연장하는 저작권법 개정안을 요청했고, 이후 1998년, 추가로 20년이 더 늘린다. 결국 디즈니사의 입김으로 미키마우스 원조 ‘증기선 윌리(Steamboat Willie)’는 1927년부터 2023년까지 총 95년 동안 보호받은 후, 올해 2024년 1월부터 저작권이 풀렸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면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이렇게 까지 강해지고 보편회된 가장 큰 이유는 거대자본을 지키기 위해서다. 힘없는 한 명의 예술가를 위해서가 아니다. 그 말은 저작권이라는 개념의 시작이 그랬듯 발전하는 방향 역시 거대 자본을 더 거대하게 만들어 주는 방향으로 간다는 뜻이다. 사실 세계를 통틀어 자신의 저작권료로 먹고 살만큼 돈을 버는 사람들은 창작자의 수에 비할 바 없이 적다. 그러나 거대 자본은 강력한 저작권 보호를 통해 엄청난 부를 창조한다. 그 와중에 음원 스트리밍으로 용돈 벌이를 하고, 지리한 저작권 소송으로 명예회복하는 예술가들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거대 자본이 큰 파이를 먹으려면 어쩔 수 없이 떨어지는 부스러기에 가까울 뿐이다.




지난 2022년 유희열이 일본의 세계적인 음악가 류이치 사카모토를 표절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유희열의 ‘아주 사적인 밤’이라는 곡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Aqua’와 유사하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유희열 스스로가 그 유사성을 인정했다.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 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되었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 유희열의 입장문 중-


솔직히 이건 누가 들어도 비슷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jqRhGSKrU&t=64s

아주 사적인 밤

https://www.youtube.com/watch?v=dqfLH0opCPk&t=23s

Aqua


이 정도의 유사성은 대중음악의 한계에서 오는 코드(Chords)의 유사성 - 대중음악은 듣기 좋고 익숙해야 하기 때문에 같은 코드진행(Chord Progression)을 가진 곡을 수백 수천 개 찾을 수 있다 -  이나 사운드 트렌드에서 오는 유사성 - 예를 들면 808 드럼 소스가 유행을 하면 수천수만 곡의 일로트로닉 음악의 드럼 소스는 같은 소리다 - 에서 오는 정도가 유사성이 아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모든 세상의 구석구석이 연결된 이 시대에 이웃나라의 음악가, 그것도 골든글러브와 그래미상의 탄, 아시아 최초로 아카데미 음악상을 탄 세계적인 음악가를 베낀다는 것이 말이 되나. 절대 '설마 모를 거야...'라는 마인드로 표절을 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 이유는 요즘 음악이 작업되는 방식 어딘가에서 빵꾸가 났기 때문이라고 본다. 한 작곡가가 여러 새끼 작곡가들을 둔다던지, 한 기획사의 여러 작곡가들이 경쟁체제로 곡을 만든다던지, 한 기획사사가 여러 레이블을 운영하는 멀티 레이블 빙식이라던지, 혹은 점점 더 세분화된 얽히고설킨 협업 방식 등등 지금의 작품이 만들어지는 방식은 창의성을 가진 한 사람으로부터 0-100까지 만들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리고 유명인이 될수록 프로젝트의 규모가 커질수록 그것은 점점 여러 사람의 아이디어와 노력과 수고가 복잡한 방식으로 얽히기 마련이다.


유희열이 의도적으로 표절을 했는지, 사회적으로 어떤 지탄을 받아야 하는지를 얘기하고자 함은 아니다. 내가 가장 인상 깊게 본 것은 원작자 류이치 사카모트의 반응이다. 유희열 사태를 접한 그의 대답 중에 중요한 문장이 있다.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할 일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며 많은 것을 배운 바흐나 드뷔시에게서 분명히 강한 영향을 받은 몇몇 곡들을 가지고 있다"라고 유희열의 상황을 이해하며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를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할 일이다. 그것이 나의 오랜 생각"


그는 결과적으로 "유희열은 내 음악을 표절하지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아쿠아'와 '아주 사적인 밤'의 유사성은 인정하면서도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이 아니며, 오히려 자신에 대한 유희열의 존경심을 알 수 있었다고 밝혔다. 심지어 문제를 공론화하고 사과까지 한 유희열에게 감사하다고까지 전했다.



故신해철 역시 영국에서 작업하고 1999년에 발매한 모노크롬(Monocrom) 앨범에 있는 Machine Messiah곡을 역사적인 메탈밴드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가 Metal Messiah라는 제목을 달고 표절한 사건이 있다.


아마도 신해철과 같이 영국에서 작업한 프로듀서가 자신의 하드 드라이브에 들어있던 파일을 주다스프리스트랑 작업할 때 무단으로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故신해철은 자신이 진행하던 라디오(고스트 스테이션)에서 대인배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2011년 8월 6일 고스트 스테이션에서 주다스 프리스트 특집 방송을 하면서 "어떻게든 몸부림을 치기 위해 동양에서 온 신비로운 아티스트의 곡을 무작정 베끼면서 멀티테잎까지 갖다 썼다던가... 하는 추문들은 그냥 묻어두기로 한다. 전설은 전설로 남아있는 것이 좋은 법. 왜냐하면 우리에겐 미래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g"이라 말면서 아무런 고소나 대응도 하지 않고 사건을 덮어두었다. 존경하던 밴드에 대한 예우였는지,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창의성의 본질에 대한 이해였는지 진의는 알 수 없다.


*멀티테잎을 그대로 썼다는 것은 단순 표절의 문제를 넘어 자신들이 녹음하고 작업한 파일을 그냥 가져다 썼다는 뜻이다.


참고로 신해철의 원곡이 훨씬 좋다. 비교해 보시라.



https://youtu.be/iVIufrK-M9c

신해철 모노크롬 1999년 발매

https://youtu.be/yOwgrKz4 EIM

Judas Priest - Demolition 2001년 발매


철저한 자본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기에 개인의 아이디어 창작물들을 자본주의적 개념에서 보호할 필요가 생겨났지만, 과연 그 창작물은 누구의 것인가를 파고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는 누구나 시대의 영향을 받고 또 얼마나 많은 트렌드와 모방과 변형이 있는가. 세상의 모든 분야는 동시대를 관통하는 큰 틀을 공유하면서 굴러간다. 동시대뿐 아니라 큰 역사의 흐름 속에 자유로운 창작자는 아무도 없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말에 따르면 나의 작품 100%중에 내가 순수하게 갖고 있는 지분이 5% 정도만 있어도 대단하다는 거다. 그렇다고 그 작품을 통해 얻는 수익을 내가 영향받은 역사 속 예술가들과 동료 예술가 혹은 예술가는 아니지만 영향을 끼쳤던 모든 이들과 나눌 수도 없는 일이다. 바흐나 드뷔시의 후손에게 몇 프로, 비틀스에게 몇 프로, 이런 식으로 나눌 수도 없는 노릇이고. 꼭 음악이 음악가의 영향만 받는 것이 아니기에 영감을 준 모든 이게 게 경제적 이득을 나누기도 힘들다.


그래서 나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필요는 이해하나 전전으로 참에 가까운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만약 창작물로 돈을 버는 시대가 아니라고 가정하자. 옛날 언젠가는 그랬을 것 아닌가. 내가 무엇을 만들고 누가 따라 하는 일이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따라한 이유가 ‘내 돈(창의성)을 훔쳐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재미있기도 하고 커뮤니티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마치 지금 틱톡에서 챌린지를 하고 밈을 돌려쓰듯이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의 모든 것이 발전했다.


만약 빗살무늬 토기에 저작권 걸어서 아무도 못 만들게 하고, 배흘림 양식을 저작권 걸어서 아무도 못 만들게 했다면 우리 시대는 어떻게 발전했을까. 그것이 물건이건 생각이건 우리는 늘 영향받고 모방한다. 이제는 AI가 만들어내는 온갖 종류의 창작물들이 넘쳐나는 시대를 살고 있고 앞으로는 이것이 누구의 지적재산인지를 판단하기 더 어려워지는 상황이 올 것이다.


모든 창작자는 내 작품에 대해 그리고 내 창의성에 대해 조금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댓글창은 토론의 장이 아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