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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May 02. 2024

페기 구(Peggy Gou)가 베를린을 떠나는 이유

당신은 힙스터 입니까?

한국 사람들에게 베를린은 어떤 이미지일까?


독일의 수도 베를린. 누군가는 나치의 연설이나 통일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유럽 스타트업의 중심이라 생각할 수도 있으며, 누군가는 브란덴부르크 문(Brandenburger Tor)이나 분데스탁(Bundestag)- 독일의 국회의사당- 같은 랜드마크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위 스스로를 아티스트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혹은 예술을 사랑한다는 사람들에게 베를린은 ‘천국’의 이미지다.


베를린에서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의 종류나 강도에 상관없이 이런 말을 자주 한다.


Hier ist Berlin! 여기 베를린이잖아!

Alles kann passsieren! 아무 일이나 다 일어날 수 있지!


그들에게 베를린은 다 가능한 도시고, 모든지 수용하는 도시며, 세상 힙하고 쿨한 것들을 모두 모아 놓은 듯한 도시다.


한국의 많은 아티스트들도 틈날 때마다 베를린으로 놀러 오기도 하고 작업을 하거나 공연을 하러 온다. 그렇게 아예 베를린으로 이사를 온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자유와 에너지를 너무 사랑해서.


그렇게 유행이 된 단어가 ‘힙스터(Hipster)‘다. 원래는 1940년대 벌써 사용되기 시작한 단어지만 언젠가부터는 아주 유명한 단어가 됐다. 사실 정확한 정의를 내리기는 힘든 단어지만 혹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뜻을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이렇다.


주로 자연친화적인 음식과 복장을 좋아하고, 인디 음악과 인디 영화, 서브컬처 예술을 즐긴다. 자전거에 관심이 많고, 담배와 대마초, 좋은 차와 커피에 관심이 많다.


신경 안 쓴듯한 혹은 노숙자에 가까운 헤어스타일과 수염, 의류함에서 꺼내 입었을 것 같은 의상 등으로 ‘나는 달라요’라고 써붙이고 다니기를 좋아한다.


몸 여기저기에 낙서하듯이 툭툭 새긴 문신이나 스케이트 보드도 힙스터로 보이기 아주 좋은 요소다.


출처 GQ코리아
베를린 힙스터 길거리 댄스 축제 - Hipster tanzen auf der Straße. Foto: Imago/Snapshot Photography/F Boillot




유튜브 피식 쇼(PSICK SHOW)에 출연한 페기 구(Peggy Gou)가 베를린 10년 있었는데 이제 베를린을 떠날 거라고 말하면서 그 이유는 베를린에 있는 사람들이 다 자기가 힙스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란다. 만나는 사람마다 자기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고, 자기는 DJ고, 포토그래퍼고 다 갖다 붙인다는 것.


정말 흥미로운 부분이 여기 있다.


베를린에서 나름대로 쿨하고 힙하고 특이하게 사는 사람들, 그중에서 베를린에 살만큼 살아 본, 거의 모든 사람들이 페기와 똑같은 얘기를 한다는 것. 다 자기는 진짜고 다른 애들이 가짜라서 짜증이 난다는 거다. '아... 베를린이 예전에는 괜찮았는데 왜 이렇게 됐지...' 그런 사람들이 많은 건 완전 사실이다. 그러나 내 눈에는 예전에도 지금도 원래 그런 도시였는데 왜 소위 힙스터들 눈에는 변한 걸로 보일까.


왜냐하면 베를린이 세계적인 예술도시로 급부상하면서 이제는 성공한 힙스터들이 많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현상도 부자나 성공한 사람들이 남들과 차별화되고 싶은 생각과 절대적으로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처음에는 성공하고 싶어서 치열하게 공부하고, 돈 벌 수 있다는 일은 다 해본다. 예를 들면 피식 쇼 페기구 편에서의 민수처럼 말이다. (그는 거기서 계속 자기는 힙해지고 싶다고 말하면서 이미 너무나 힙해진 페기 앞에서 찌질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 페기는 진짜 힙한 건 그런 게 아니라고 계속 그를 가르친다)


그러나 그렇게 약간의 성공을 이루게 되면 그 이후에는 자신감이 생기고 이제 남들이 알만한 명품들을 사거나 누가 봐도 돈 좀 있다는 게 많이 티가나는 인생을 산다. 예술계로 말하면 페기가 말하는 베를린에서 다 자기가 예술계 뭐 좀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로 일 좀 하는 사람들 정도가 될까.


그리고 이제 그 이상을 넘어 세계투어를 다니고 나름 메인스트림 기업들과 일을 한다던가, 베를린에서 열리는 국제적인 축제에 참여들 한다던가 하면서 급이 다른 아티스트가 되는 것이다.


이제 그때부터는 내가 저들과 같은 '힙스터'로 취급되는 것이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나는 쟤들하고 급이 다른데, 나는 진짜고 쟤네는 아닌데 왜 내가 같이 묶여야 하나'같은 마음이다.


그래서 부자들도 아주 부자가 되고 나면 일반사람들은 그런 명품이 있는지도 모르는, 아주 부자들만 아는 명품을 사는 거다. 나는 남과 달라야 하니까.


그렇게 베를린이 나름 세계 예술의 중심, 소위 Berlin Based Artist (베를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라는 타이틀이 엄청 먹히기 시작하면서, 급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에 성공을 이룬 입장에서는 차별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난 것이다.




나는 베를린에 살면서 이런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소위 '힙(hip)'한 인생을 사는 사람들, 누가 봐도 자유를 추구하고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이야 말로 자기 세계에 갇혀 사는 것은 아닐까.


그들이 생각하는 베를린의 힙(hip)은 몸 여기저기 신경 안 쓴듯한 문신을 하고, 슈프림(Supreme) 모자를 쓰고, 스케이트 보드를 타고, 일렉트로릭 음악을 즐겨 듣고, 온갖 유명 클럽 섭렵하는 인생일지 모르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베를린이 세상 힙한 도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히려 그런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베를린의 모습이 공존하기에 때문이다. 그렇게 진짜 자유로운 도시가 된 것이다. 베를린엔 베를린 필하모니(Berliner Philharmoniker)를 비롯한 엄청난 수준의 클래식도 있고, 온갖 분야의 오타쿠들, 너드도 있고, 날씨가 좋을 때만 차를 몰고 나오는 히스토릭 카(Historic Car) 모임도 있으며, 정치나 사회에 대한 모임, 이벤트도 많다. 그리고 항상 와이셔츠룩에 카디건을 좋아하는 잘 나가는 비즈니스 맨들의 세계도 있다.

 

모든 게 가능하다는 것은 그런 거다. 한쪽으로 치우 지지 않는 포용성.


가끔은 세상에서 삐딱하다, 개성 있다. 자유롭다 말하는 게 오히려 그 반대인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제멋대로 살면서, 보편적인 대화 중에도 계속 이상한 소리를 하고, 세상 통달한 것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

남들 신경 하나도 안 쓰는 듯 옷을 입고 행동하고 말하고, 자신의 SNS에 '극단의 자유로움'을 표현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느끼는 자유가 진짜일까, 과연 저들은 행복한가'라는 의문이 들 때도 있다.


그렇게나 자유로워 보였던 사람, 세상 신경 하나도 안 쓰고 산 것 같은 사람이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고, 결국 자살로 이어지는 케이스도 너무 많으니 말이다. 베를린에서도 그런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볼 수 있다. 소위 힙하고 세상에 저항하면서 마음대로 살라고 발버둥을 치는 티가 너무 나는 그러나 사실은 너무나 심약하고 외롭고 스스로 고통받고 있는. 자신의 세계 밖에 있는 외부 세계에 차갑거나 분노하는 사람들.




우리는 서로의 세계를 신경 쓰지 않고 살 수도 없고, 부딪히지 않고 살 수도 없다. '나는 신경 안 써 (Nevermind)'는 거짓말. 그건 쿨이 아니라. 무시(Ignorance)다. 무시는 때로는 내 에너지를 최대한 아끼면서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 아닌가.


세상을 진짜 힙하게 만들어 줄 것은 남들과 다르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라기보다 남들도 품을 수 있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베를린너(Berliner)가 아닌 베를린(Berlin)처럼 말이다.





image : https://www.d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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