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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간계 연구소 Jun 07. 2020

이것은 시크가 아니다

Schick

한국에서는 유난히 한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하면 그 단어를 꼭 써야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경향이 있다. 가장 최근에 기억나는 단어 '워딩(wording)'이다. 말, 발언, 어법, 단어 선택 등의 의미로 쓰는데 가끔 그야말로 정확한 워딩을 할 수가 없어서 '거시기'처럼 쓰는 느낌도 든다.


이쯤에서 재미로 '보그체' 또는 '보그병신체'라는 것이 한 때는 패션 좀 아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필수 워딩(!)이었음도 짚고 넘어가자.


    출처 : 나무 위키 '보그체'


이제 그 역사가 꽤 오래돼서 아예 의미 자체가 변질된 경우가 '시크(Chic)'라는 단어다.

 

원래 '시크(Chic)'는 세련된, 간지 나는 등의 뜻을 가진 독일어 쉬크(Schick)에서 유래됐는데, 패션 쪽에서 쓰이다가 영어화 되면서 더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역시 패션계가 주범인가...)


한국에서 언젠가부터 '시크(Chic)'라는 단어는 본래의 의미보다 '시니컬(Cynical)'을 대신하여 쓰이는 듯하다.


왜 그렇게 됐을까?


아마도 '멋지다'거나 '간지가 난다'는 것이 부드럽고 이해심 많고 따뜻것과는 점점 멀어지고 차갑고 냉소적이고 독단적인 이미지에 가깝게 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사람들은 패션 잡지의 이미지를 보고, 그 이미지를 설명하는 보그체 속에서 '시크(Chic)'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패션 잡지 속 모델의 표정과 만들어진 이미지는 대부분 차갑고 도도하고 때로는 어둡고 광기에 차있다. 이를 통해 '시니컬(Cynical)'은 '시크(Chic)'와 동일한 뜻, 또는 시크하기 위한 필수조건처럼 돼버린 듯하다. 어찌 보면 패션계가 이미지와 단어를 끊임없이 반복함으로써 사람들의 무의식을 얼마나 쉽게 조종할 수 있는지에 대한 방증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듯이 그것은 시크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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