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희망이로소이다. 두 번째 이야기
어느덧 밴쿠버에 온 지도 며칠이 지나고 있다.
캐나다, 밴쿠버의 여름은 페루와 정말 많이 달랐다. 아침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부터 해가 뜨려고 하고 저녁엔 거의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사실 나에겐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왜냐면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게 나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낮과 밤이란 큰 의미가 있는 현상들이 가끔 나의 관점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일이기도 하였다.
오늘은 나의 새로운 집사가 된 마스터팍과 제니에 대해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를 데리고 온 제니는 이곳 밴쿠버에서 에밀리카라는 미대를 다니고 있었다. 방 하나는 미술도구들 그리고 그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사실 그 방은 점점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양한 각종 미술 도구와 각종 물건들로 가득 차 있어 고양이인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었다. 가끔 선반에 올라가서 그곳에서 잠을 자기도 하였고 때로는 선반에 있는 물건들을 나의 앞발로 냥냥 펀치를 날려서 하나둘씩 떨어트리며 놀았다. 그러면 집사들이 와서 내가 떨어트린 물건들을 다시 제자리에 올려놓았다. 가끔 마스터팍은 내가 한지도 모른 채 “어! 이게 왜 여기 있지?”라는 말을 계속 혼자 중얼거리며 반복적으로 내가 떨어트린 물건을 제자리에 갔다 놓는다. 나는 그놈이 언제까지 그렇게 떨어진 물건을 계속 제자리 갖다 놓을지 궁금해서 제니의 물건들을 바닥으로 나의 솜방망이 펀치를 이용해 계속 떨어트릴 계획이다.
종종 제니가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난 그 그림들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게 좋았다. 또한 그녀가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날이면 캔버스 뒤로 돌아가서 제니를 놀라게 하며 장난을 치며 놀았다. 그렇게 놀다가 잠이 오면 제니가 앉아 있는 책상에 위에 올라서 그녀의 노트북 위 키보드 위에서 잠을 청하였다. 왠지 나도 모르게 그곳으로 가서 잠을 자야 될 것 같은 본능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내가 말썽을 일으키든 말든지 제니는 지금도 항상 처음 페루에서 날 바라보았던 그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계속 날 바라본다. 나의 행동들이 막상 싫지 않은 가보다. 다행이라고 느껴지는 순간이다.
마스터팍은 아직까지 날 무서워한다. 살다 살다 내가 무섭다고 하는 사람은 저 녀석이 처음이다. 태권도를 어렸을 때부터 했고 캐나다에서 태권도장을 운영을 한다는 사람이 내가 무섭다니... 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시간이 필요하고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듯 마스터팍이라는 그 사람도 나를 적응하기에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상대를 처음 대하고 다가갈 때 서로 다가가는 속도에는 차이가 있으며, 서로에게 다가갈 수 있는 시간도 각자 다른 것 또한 상대적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가 나에게 퇴근하자마자 "희망아!" "희망아!" 큰소리로 내 이름을 불러 대며 친근하게 마음을 서서히 열며 다가온다. 하지만 난 그가 그러든지 말든지 그가 나에게 얼굴을 들이 밀면 갑자기 코를 꽉 깨물어 버렸다. 나도 모르게 그냥 그의 코를 콱 깨물고 싶었다. 코가 크고 동그랗게 생긴 게 그냥 콱 깨물기 아주 좋게 생겼다. 내가 느닷없이 마스터팍 코에 펑크가 나게 코를 콱 깨물면 그는 아프다며 코를 움켜쥐며 비명을 지른다. 조금 미안하기도 했지만 그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 볼수록 계속 그의 코를 깨물어 버리고 싶은 본능이 계속 먼저 앞섰다. 그렇다. 서로가 다가가는 속도에는 차이가 있다.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고 싶은 것이다. 난 아직 나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간이 지나면 나의 마음도 서서히 열리지 않을까?
마스터팍의 비명소리도 잠시 잦아들고 제니와 마스터팍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한국에서 만나 결혼을 하자마자 저 멀리 이국 땅 캐나다에 온 그들은 가족도 없이 단 둘이서 달랑 $3000불을 가지고 이곳에 왔단다. 언어도 문화도 한국과는 전혀 다른 나라에 와서 살아가면서 겪었던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에 이국 땅에 와서 서로 많이 다투고 싸웠다는 등... 고생을 많이 했다는 등... 영어가 어떻다는 등...
마스터팍은 캐나다에서 태권도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취업비자를 받아서 제니와 함께 이곳으로 왔는데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캐나다에서의 삶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던 거 같다. 새로운 삶에 대한 도전을 하고 싶어 왔다는데 그 기회비용은 만만치 않았던 모양이다. 높은 렌트비(월세)와 교통비 등... 그들이 처음 취업비자로 캐나다로 왔고 이민을 하기까지 정말 고생도 많이 하고 힘들었던 거 같았다. 태권도장에서 일하면서도 비싼 렌트비와 생활비 등을 감당하기 위해서 주중, 새벽, 주말에 밤잠을 새워가며 투잡, 쓰리잡을 뛰었던 것. 그리고 그렇게 일한 대가로 그가 얻은 심한 우울증.
막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제니도 정말 대단한 거 같다. 처음에 영어를 하나도 못했던 제니는 남편 하나만 보고 가족도 없는 이국땅에 온 것도 신기할 따름이다. 남편이 고생한 만큼 제니도 고생을 많이 하고 본인도 적응하느라 힘들었을 텐데 우울증에 걸려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살피는 것만 해도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에 대한 설렘과 꿈을 향한 도전에 즐거운 점도 있겠지만 나처럼 적응할 시간도 필요하고 가족, 친구들과의 이별에 처음에 많이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것에 공감이 간다.
어쩌면 이들의 삶과 나의 삶도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은 그들이 하는 이야기에 공감이 되어가고 있다. 어쩌면 이러한 비슷한 운명으로 우리는 가족이 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마스터팍과 제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어디에 사는 게 중요한 게 아니고 어떻게 사는 중요한 게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곳이 페루이건, 한국이건, 캐나다든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왜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캐나다로 이주하려고 하는 것일까? 과연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캐나다로 이주하면 행복할까?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일까? 지금은 견뎌 냈지만 제니와 마스터팍도 초창기에 캐나다에서 많은 고생을 했는데 고생한 그 가치만큼 캐나다에서의 삶이 소중하고 가치가 있는 것일까? 아직 나도 온 지 며칠 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일단 페루보단 공기는 좋고 조용하여 나쁘지는 않은 거 같다. 하지만 너무 조용하고 공기가 좋아서 그런지 왠지 잠만 더 느는 것 같고 점점 더 게을러지는 거 같다.
캐나다라는 나라는 서서히 나를 게으르게 만들고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나라이다. 갑자기 든 생각은 제니와 마스터팍이 내가 그들의 대화를 다 알아듣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