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마술이야기 VOL.1
스물한살 시절의 일이다.
당시 나는 군대에 복무를 하고 있었다.
무척 힘들고 괴로운 시기를 지나 겨우 마음이 안정이 될 즈음이었다.
어느 날 집에서 연락이 왔다고 당직실에서 연락이 왔다.
군대에 온 뒤 그런 일은 이전에도 이후로도 없었고, 그 때가 처음이었다.
공중전화박스에 가서 궁금함 반, 불안함 반의 마음을 갖고 집에 전화를 걸었다.
예상과 달리 엄마가 아닌 아버지가 전화를 받았고,
자세한 얘기는 전화상으로 할 수 없다고 나보고 휴가를 내든지 해서 나와봐야 될 것 같다고 말하셨다.
다음날 급하게 연가(군대의 휴가 개념)를 써서 집이 있는 부산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없었고, 아버지만 있었다.
병원의 검사 결과지 같은 걸 들고 내게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의 상태를 설명하셨다.
당시의 나는 암이라는 건 1,2,3,4기 이렇게만 부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1기이고 그 중에 B라고 붙였으니 그래도 심각하진 않을 거라고 내심 바라기도 했다.
예상과 달리 엄마의 상태는 꽤 좋지 않았고, 당장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부산에 있는 고신대의료원에서 수술을 하기로 결정이 된 상태에서 내가 휴가를 나오게 된 것이다.
내가 휴가 나오기 전에 이미 병원에 입원해 있었던 엄마의 얼굴이 말이 아니었다.
마음이 무거워졌다. 짧게 낸 휴가를 15일의 연가로 바꾸었다.
엄마의 입원 기간은 한달 가량이 예상되었으므로 남은 15일의 연가도 모두 써버렸다.
이로써 남은 2년의 복무기간동안 짧은 외박을 제외하고 나의 휴가는 다 끝난 셈이다.
육군 등에 있었으면 이렇게 휴가를 길게 써서 엄마를 간병하기도 어려웠을텐데 그나마 공군에 갔었고, 총 쓸 수 있는 연가가 40일이었기 때문에 다행이다 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의 수술은 오전 7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빌고 또 빌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4시가 넘은 시간 마취에서 덜 깨어난 엄마가 나왔다.
간호사 쌤들과 병실로 함께 엄마를 모시고 가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고 며칠 뒤 의사 쌤과 상담을 하게 됐다.
의사쌤은 수술이 그래도 무사히 잘 끝났고, 추가의 항암치료나 방사선 치료는 필요없을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지금부터는 회복만 잘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다가오는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매일 술에 취해 병실에 와서 한숨을 쉬는 아버지와,
수술 이후 후유증(임파선과 신경 등도 모두 긁어내서 제거해버린 탓에 소변을 보려면 배를 눌러야 했다) 으로 인해 우울함이 가득한 엄마의 얼굴을 매일 마주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엄마를 웃게 해주고 싶은데, 엄마랑 예전처럼 마트에 장보러 가서 돌아다니면서 친구처럼 수다를 떨고 싶은데 그게 참 어려웠다. 답답한 마음에 병실에 있기 힘들어 병원 앞의 PC방을 찾았다.
인터넷 창을 열고, 이것저것 보다가 마술 이라는 걸 보게 된다.
휴지재생 마술이었다.
이거다 싶었다.
인터넷에서 배운 방법을 외우고, 병원 화장실로 달려가서 휴지를 뜯어서 거울을 보면서 마술을 연습했다.
위 움짤처럼 엄마와 외할머니를 향해서 잔뜩 폼을 잡고 마술을 했다.
결과는...
당연하게도 실패였다.
간단하다고 생각했던 마술이 실제로 앞에 사람을 앉혀두고 하려니, 긴장이 되었고, 손을 덜덜 떨었다.
오른손 주먹 안에 숨겨두었던 비밀 휴지가 바닥을 향해서 떨어져버렸다.
그 모습을 엄마와 외할머니도 그대로 봤다.
나는 마술을 실패해서 얼굴이 벌개졌다. 당황하면서 바닥에 떨어진 휴지들을 줍고 있는 내게 엄마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
뭐지? 마술을 실패했는데 엄마가 웃는다.
왜?
성공한게 아닌데, 실패했는데 엄마가 왜 웃는거지..?
그리고 지금 이 기분은 뭐지?
뭔가 속에서 뭉클하면서 이상한 기분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종종 마술을 보여주기 두려워하는 학생들을 향해서 전해주는 이야기입니다.
실제 제 이야기이기도 하구요.
마술은 실패를 하더라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웃음을 줄 수도 있다.
물론 성공을 하면 좋겠지만, 생각보다 마술을 배워서 연습한 뒤에 처음 보여줄 때부터 성공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심지어 20년 이상 마술을 해온 저도 새로운 마술을 처음 연습하고 그걸 누구한테 보여줄 때는 늘 긴장을 하면서 해야 할 정도입니다. 노력을 해서 뭔가를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고 의미가 있는 것이니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보여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이상 마술하다의 야초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