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유는 여행가방 보다 무거울까?

by 김지영


결국 밤을 새서 짐을 쌌다.



가보고 좋으면, 마음이 내키면 두어달이 될 지도 모르는 장기여행을 대비할 짐을 싸는 건 생각보다 복잡한 일이다.


우선 꼭 필요한 물건을 하나하나 꺼낸다. 그리고는 방을 둘러보며 있으면 좋을 물건들을 싹 추린다. 방 바닥에 가득 쌓인 물건들을 헤집으며, 종류 별로 훑으며 필요의 우선순위와 사용 빈도를 가늠해본다. 등이 쑥 파진 블랙 미니 원피스는 그다지 자주 입을 것 같진 않지만 기분 내고 싶을 때 포기하면 아쉽고, 그렇다고 잠깐 기분내자고 사기엔 마음에 드는 것을 찾는 시간과 비용이 더 아까울 것 같아 캐리어에 넣는다. 여행하는 동안 읽으면 딱 좋을 책을 선정하는 과정도 어렵기 그지 없다. 책은 하나하나 무게가 만만찮기 때문이다. '어차피 다 못 읽을텐데 딱 5권만 골라야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가서 읽고 버리지 뭐, 그게 차라리 쉽겠어!' 하는 마음이 되고 만다.


그렇게 얼추 결정이 되었으면 캐리어 안에 차곡차곡 넣어본다. 한껏 부린 욕심이 미어터지면 다시 앞선 과정을 반복한다. 그렇게 몇 차례의 검토와 깊은 심사숙고를 거쳐서 선정된 아이템만이 딱 한 칸의 캐리어에 들어가 나와 함께 여행할 자격을 얻는다.


물건이 많을 수록 여행은 편리하고 풍성해지겠지만 그 부피가 크고 무거울 수록 나의 이동의 자유는 크게 묶인다. 여행할 때마다 짐싸기에 그렇게 공을 들이지만, 아직까지 그 완벽한 균형을 찾은 적이 없다.



2년 전 이맘때에도 똑같은 캐리어에 짐을 싸서 떠났다. 동네방네 장기 여행 갈 거라고 떠들고 다니면서도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사람들이 딱 두 사람 있었다. 엄마와 애인. 공통점은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하는, 그래서 나를 가장 신경 쓰이게 할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애인에게는 기간을 축소 보고 했고, 엄마에게는 공항 출국 심사를 받기 전- 휴대폰을 끄기 직전에야 전화를 걸어 말했다.


"엄마 나 두 달 정도 해외에 가 있을거야. 회사는 그만뒀어."


아 정말 나는 왜 이렇게 생겨 먹었을까?



자유와 사랑 사이,



삶에서 괴롭거나 고민되었던 순간들을 곱씹어 보면 나는 늘 사랑이 내 자유를 속박할 거라고 막연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나에게 얹게 되는 기대는 점점 커질 것이고, 나 역시 상대를 사랑하는 만큼 그 기대를 충족시켜주고 싶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정적인 순간에는 늘 두 가지 사이에서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것 같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자유를 택했다.

그리고 사랑은 끝났다.


연애 관계뿐 아니라 대부분의 깊어질 수 있는 관계에서 모두 그랬다. 가족은 내게 항상 비밀이 많다고 했다. 20살, 자취를 시작한 이후 내가 뭘하고, 누굴 만나며,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거의 알리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을 한 세 번째쯤 그만두고, 해외여행에서 돌아왔을 무렵부터는 더더욱 나의 신상에 대한 말을 삼갔다. 엄마는 나의 행복을 바라는 그만큼의 크기로 내가 '안정적으로' 살길 바랐다. 그것이 나의 지향과는 다르다는 것 역시 알기에 조심하다가도 그 바람을 결국은 숨기지 못하고 종종 내게 내비쳤는데, 그것이 나를 몹시 불편하게 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나를 위해 희생한만큼 나도 기대에 부응해야할 것 같았다. 엄마의 바람이 불편한 이유도 사실 나에게 있었지만 나는 나에게 자꾸만 기대를 거는 엄마에게 버럭 짜증이 나고 말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에게 거는 기대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것은 꽤나 괴로운 일이니까. 그 괴로움을 없애고 싶어서 나는 비밀을 만들었다.


어떤 이에게는 사귀는 동안 한 번도 사랑한다고 하지 않은 적도 있다. 마음이 클 수록, 커질 수록 그 말을 하기가 더 어려웠다. 그렇게 내 감정을 소리내어 정의하는 순간 그 감정에 내가 정말이지 소속되어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형태가 잡히지 않는 마음들은 대개 이름을 붙여줄 때 더 크고 명확한 형태로 다가오고, 한번 형체를 가지게된 것은 그 후로는 점점 크게 불어날 것을 알았으니까. 그게 겁이 났다.


하지만 누군가와 헤어지고 가장 후회했던 점은 모두 그런 것이었다. 마음이 그렇게 뜨거울 때, 그 마음을-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마음들을 제대로 꺼내어 주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됐다. 꽁꽁 묶여있다가 어디론가 흩어지고만 내 마음들이 너무 안타깝고 애처로웠다. 그것이 내가 얻은, 혹은 그로 인해 얻은 것인지조차 알 수 없는 자유가 준 기쁨보다 나를 더 오래, 더 많이 괴롭게 했다.


어딘가에 영원히 종속될 것 같은 기분을 여전히 나는 두려움으로 매번 마주했다.


하지만 사랑은 내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곧 내가 보는 것이었고, 나는 사랑하는 만큼 더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나는 사랑을 여행 가방의 짐처럼 생각했을까?



오늘 들었던 수업에서 선생님의 한마디가 마음에 턱 걸렸다.


Freedom is taking full responsibility.



수하물로 부칠 수 있는 가방의 무게는 딱 20kg.

가지고 갈 수 있는 가방의 무게를 저울에 올려서 재듯,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사랑의 크기를 자꾸만 가늠해보았다. 그건 내가 사랑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무게였다. 나는 무거운 희생을 선택하는 대신 자유로 도망쳤다. 그렇게 이번에도 달랑 짐 하나를 들고 집을 나섰다. 딱 지금의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무게, 이것 외에 나를 묶어두는 것은 이제 그 어디에도 없다.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 이게 내가 그토록 원하던 자유였을까? 나는 대체 어디에 묶여 있었으며 지금의 시간은 무엇으로의 자유였을까?



나는 아직 절벽 밑으로 뛰어내려본 적이 없다.


나의 마음을 그 모습 그대로 해방시켰을 때, 진짜 자유롭게 했을 때, 나는 무엇을 겪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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