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혹은 여행처럼

by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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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여행과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나는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보단 차라리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기꺼이 할 수 잇는 것들을 삶 속에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여행지에서 나는 길을 잃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선 길을 잃으면 낙담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세상 만물을, 차창 밖을 지나가는 여인의 뒷모습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많은 것에 애써 눈감으려 한다.

여행지에서 나는 곧 다시 만나요, 손을 흔들고 헤어질 때 슬픔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선 작별 인사를 나눌 때 내가 예의에 어긋나 보이지 않았나를 생각한다.

여행지에선 내가 누구인지가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삶 속에선 제발 나 좀 알아봐달라고 부질없는 말을 할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나는 나 자신이 이방인임을 당연시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행여라도 이방인이 될까봐 두려워한다.

...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가장 용기 있는 자들과 가장 말이 잘 통하는 자들과 가장 정이 많은 자들과 가장 고통 받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가장 득이 되는 자들과 친구가 된다.

여행지에서 나는 쉼 없이 많은 질문을 던진다.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곧잘 지루한 답변만 늘어놓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설레고 얼마나 자주 탄성을 지르던가?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기쁨에도 슬픔에도 고통에도 얼마나 자주 무감각하던가?

여행지에서 나는 해의 뜨고 짐 같은 가장 단순한 풍경에서도 위대한 지구의 운동 법칙을 느낀다.

그러니 나는 이제 여행에서 삶을 배우고 싶다.
여행자의 태도로 살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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