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르토 몬트 어딘가에서 일어난 이야기

생각보다(?) 멀쩡한 히피들과의 3박 4일 무계획 페스티벌 캠핑

by 김지영

# Travel is always beyond all my expectation.

이 시간쯤 아름다운 바릴로체 아파트에서 환상적인 뷰를 감상하고 있을 줄 알았던 내가, 푸에르토 몬트 근처 어딘가 바다가 보이는 텐트 안에서 이 멋진 히피녀석들과 동거동락하며 (그것도!) '사이키델릭' 뮤직 페스티벌을 즐기고 있게 될 줄이야.

260ABC3E52C03230613B22 황량해 보이는 바다 앞 작은 공터. 이 곧은 곧 사이키데릭 뮤직 페스티벌 현장으로 바뀌게 되는데...

푸에르토 몬트 터미널에 도착하자 마자 알아봤지만 바릴로체로 가는 마지막 버스는 딱 내가 도착하기 오분전에 떠났단다. 하루에 한 대 뿐인 버스를 놓치다니. 계획에도 없던 곳에소 내 소중한 하루를 공칠 수는 없었다.


안돼에에에에..


터미널에서 내가 절망에 찬 표정으로 머리를 쥐어 뜯으며 절규하고 있으니 그 앞에 있던 히피 녀석들이 나에게 와 무슨 일이냐고 물어본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얘기해주니 아무렇지도 않게 '그럼 내일 가' 이러는 거다. 내가 돈도 없고, 지낼 데도 없다고 하니 자기들이 근처에서 캠핑하고 있으니 따라 오란다. 자기들 텐트에서 그냥 껴서 자도 된다고.


아싸! (한 0.1초쯤 고민하고 승낙했다.)


"근데 내일 바로 갈거야?

왜?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뮤직 페스티벌이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하거든.

(니네 그냥 히피 아니었어?)

입장료도 공짜야.

그래? (더 솔깃) "

한 4초쯤 더 고민하다가 티켓을 이틀 뒤로 더 미뤄버렸다.



산티아고와 나쵸


두근두근. 캠핑장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히피들의 선봉 대장이었던 마리아노가 나에게 곧 산티아고와 나쵸를 보게 될 거라고 했다.


산티아고는 칠레 수도고,

나쵸는 먹는 건데

그걸 어떻게 보게 된다는 거지?


알쏭달쏭했지만 마리아노가 뜯은 감자칩 봉지가 버스 좌석 앞뒤를 오가는 동안 감자칩을 꺼내먹는 일에 집중하느라 더 캐묻지는 않고 건성건성으로 들었는데 도착해보니 웬걸,


"킴, 얘가 산티아고고 얘는 나쵸야."

산티아고와 나쵸의 정체는 사람이었다. 별명이었던 것!

혼자 마구 웃었다. 다들 영문을 몰랐지만 이내 따라웃었다. 깔깔깔. 즐거운 첫 만남!


261E413E52C032312AF091 왼쪽부터 마리아노, 산티아고, 나쵸한 십년쯤 방랑자로 산 것 같지만 나름 다들 번듯한 직장이 있다.

구멍나고 눅눅한 러닝셔츠를 입고 있던 마리아노는 자기가 회계사라고 했다.

감자칩 먹다가 체할 뻔 했다.


-정말? 그럼 막 정장도 입고 컴퓨터도 두들기고 막 그래?

-(의아한 듯 보다가 다시 감자칩으로 손을 뻗으며 무심하게) Claro (당연하지).


산티아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방 세 개 짜리 아파트에 여자친구랑 살고 있으니 언제든 도착하면(한 달 뒤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갈 예정이었다) 방 하나를 내준다고 약속했다.


-정말 가도 돼? (불신의 눈길)

-??? (디자인 회사 명함을 손에 쥐어준다)


갑작스런 방문객이었던 나를 모두 한 십년 지기처럼 맞아 주는 쿨한 친구들. 알고 보니 이들은 나름 페스티벌 프로듀서. 이 페스티벌을 위해 아르헨티나에서부터 칠레로 날아 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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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착하자마자 저 큰 양푼에 쌀을 대충 부어 끓이고 나무 테이블을 도마 삼아 양파와 당근을 썰어 쓸어 넣고 나름 치즈까지 듬뿍 넣어 완성한 그라탕을 다함께 퍼먹으며

P1200167.JPG?type=w2 커튼을 열면 마법의 공간이 열린다

이 마법의 샤워실은 12-2시 사이에만 따뜻한 물을 쓸 수 있다.

마리아노는 마법의 힘이라고 한껏 허풍을 쳤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엄청난 태양열 자체 난방 시스템을 가진 샤워실이었던 것!!


그나마도 커텐이 없어 사람이 안 보는 시간에만 몰래 쓸 수 있었던 샤워실에

오늘 마트에서 사온 커튼을 달랐다. 길이는 모자랐지만 아무렴, 없는 것 보단 낫지.

화장실에는 구멍이 두 개, 작은 거랑 큰 거. (소변용-대변용)


그렇게 시작된 '자연주의' 생활.

커텐 없는 샤워실(무려 태양열 가열 시스템)과 구멍만 두 개있는 화장실이 비록 시설의 전부이지만

별과 바다와 음악이 함께 하는 이 아름다운 곳에서 무려 삼박 사일 동안 재워주고 먹여준 것도 모자라

부에노스 아이레스로까지 초대해준 이 멋진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우연과 나의 겁없음에 무지무지 감사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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