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9시 6분의 석양

나는야 게을러서 행복한 히피

by 김지영

오늘의 해는 9시 6분에 졌다.

그리고도 한참이나 하늘은 더 밝았다.


2468604252C032330C8E1D


친구들이 공연 준비 막바지 작업에 정신이 없는 동안 혼자 나왔다. 큼직한 바위들이 쌓여있는 바닷가. 바위들 중 하나에 걸터앉아 조용히 해가 지는 걸 바라봤다. 오래오래. 해의 마지막 꽁무니까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걸 보고 나서야 돌아서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나쵸를 만났다.


-너는 일 안하고 뭐해?

-해 지는 거 보고 있었지. 아르헨티나는 동쪽에 있잖아. 거기선 바다에 해가 지는 걸 볼 수 없어.

-대신 해뜨는 걸 볼 수 있잖아. 한국에 내 고향도 동쪽 바닷가에 있어(호랑이 꼬리라고, 한국에서도 해가 젤 빨리 뜨는 걸로 유명한 곳이야 속닥속닥).

해 뜨기 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앞을 보며 조용한 웃음) 예쁘지?

-(다시 뒤를 돌아보며) 응, 무지.


2442DF4252C032331BCDF4 우리가 그날 바라 본 밤 9시 6분의 석양


우리는 그자리에서 서서 계단 난간에 기댄 채로 얘기를 나눴다.

황금빛에서, 서서히 붉게 변한 하늘이 다시 검게 변할 때까지.


여기선 얼마든지 게을러도 좋다.

해가 지는 건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밤 9시 6분의 석양을.


2453664252C03233145F44

3시부터 시작할 거라고 큰 소리 쳤던 공연은 늦은 해도 지고 난 지금,

이제서야 시작하려는지

음악소리가 꿍꽝꿍꽝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잔디밭 공연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게을러서 행복한 히피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푸에르토 몬트 어딘가에서 일어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