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야 게을러서 행복한 히피
오늘의 해는 9시 6분에 졌다.
그리고도 한참이나 하늘은 더 밝았다.
친구들이 공연 준비 막바지 작업에 정신이 없는 동안 혼자 나왔다. 큼직한 바위들이 쌓여있는 바닷가. 바위들 중 하나에 걸터앉아 조용히 해가 지는 걸 바라봤다. 오래오래. 해의 마지막 꽁무니까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걸 보고 나서야 돌아서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나쵸를 만났다.
-너는 일 안하고 뭐해?
-해 지는 거 보고 있었지. 아르헨티나는 동쪽에 있잖아. 거기선 바다에 해가 지는 걸 볼 수 없어.
-대신 해뜨는 걸 볼 수 있잖아. 한국에 내 고향도 동쪽 바닷가에 있어(호랑이 꼬리라고, 한국에서도 해가 젤 빨리 뜨는 걸로 유명한 곳이야 속닥속닥).
해 뜨기 전에 일어나 본 적이 없는 것 같긴 하지만...
-(앞을 보며 조용한 웃음) 예쁘지?
-(다시 뒤를 돌아보며) 응, 무지.
우리는 그자리에서 서서 계단 난간에 기댄 채로 얘기를 나눴다.
황금빛에서, 서서히 붉게 변한 하늘이 다시 검게 변할 때까지.
여기선 얼마든지 게을러도 좋다.
해가 지는 건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볼 수 있으니까.
이렇게 아름다운, 밤 9시 6분의 석양을.
3시부터 시작할 거라고 큰 소리 쳤던 공연은 늦은 해도 지고 난 지금,
이제서야 시작하려는지
음악소리가 꿍꽝꿍꽝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잔디밭 공연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 순간만큼은 나도 게을러서 행복한 히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