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믿는 한 가지
Los ojos no miento
오늘 저녁은 마리아노가 크게 한 턱 쏜다. 친구들이 컴플레토(주: 남미식 핫도그, 과카몰리가 들어감)를 준비하고 있는 동안 랜턴 하나 달랑 들고 맥주를 사러 간다는 마리아노를 따라 나섰다. 근처에 유일하게 하나 있는 가게를 찾아 깜깜한 도로를 걷고 또 걷는다.
불빛 하나에 의지해서 가는 길이 심심하지 않게 한창 마리아노가 나에게 스페인어 강습을 해주고 있을 때였다. 지나가던 차가 멈춰서 뭔가를 물었는데 항상 유쾌하고 넉살좋은 소셜 가이 마리아노가 웬일로 시큰둥하다. 모르는 동네, 어두운 길에서는 'not sociable' 하단다. 그러면서 나한테 묻는다.
-맞다. 전부터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너 그때 버스 터미널에서 뭘 믿고 우리 따라왔어?
우리라서 다행이긴 한데 (흠흠)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사람을 보면 느낌이 있잖아. 난 특히 웃는 모습 보면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것 같아. 적어도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순간 진지해진 표정으로 끄덕끄덕) 난 눈을 믿어. Porque los ojos no miento.
-무슨 뜻이야?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하지 않는 눈 덕에 내가 여기까지 온 거네. 하하. 내가 진짜 여기서 이러고 있을 줄 몰랐어.
-그럴 땐 뭐라고 하는 줄 알아?
Las vivas esta asi. 인생은 그런 것!
계획은 바뀌라고 있는 거지
오늘은 티켓을 바꾸러(마리아노 일당을 만난 날 이미 이틀 뒤로 바꿨던 티켓) 오후에 혼자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 터미널에 들렸다. 잠깐 새나갔을 뿐인데, 얼마 안 남은 시간 알차게 보내겠다며 몇날 며칠 고심하며 마련한 남은 삼주 동안의 여행 계획이 한 순간에 모두 바뀌어 버렸다.
원래 버스로 푸에르토 나탈레스까지 내려가서 칼라파테에서 비행기로 한 번에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가려고 했는데, 일주일에 세 번 띄엄띄엄 있는 버스 스케줄과 그럼에도 비싼 가격에 그냥 비행기를 타고 가기로 했다.
그 가격이 그 가격이라서. 무엇보다 비행기를 타면서 아끼는 시간만큼
이 친구들과 함께 하는 이 곳 생활을 조금이라도 연장해보려고.
비싼 변경 수수료에 미어지는 가슴을 안고 물어 물어 돌아가는 버스를 탔건만 엉뚱한 데서 내려 버렸다. 버스 안에서 이쁜 애기를 만나 사진찍다가 정신팔려서 캠핑장을 지나쳐 버린 거다. 가도가도 익숙한 풍경이 안 나와서 버스 기사에게 물어보니 이미 지나 버린 것. 뭐 어떡하겠나. 그냥 거기서 내렸다. 그리곤 왔던 방향으로 다시 느릿느릿 걸어왔다. 길은 하나니까, 걷다보면 나오겠지- 하며 터벅터벅 걷고 있는데 갑자기 바다인지 강인지 모르는 물살이 땅을 가르고 쏟아져 들어와 반짝반짝 빛나는 들판 위를 흰 말 몇 마리가 우아하게 걸어다니는 비현실적으로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또 넋놓고 사진찍다가 땅거미가 내려 어둑해질 무렵에야 돌아왔다. 그러자 무대 작업을 하고 있던 친구들이 놀라서 달려 나와서는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다. 너무 늦게까지 안와서 걱정했다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 그냥 티켓을 싹 다 바꿔버렸어. 버스 말고 비행기 타고 갈 거야. 푼타 아레나스까지.
-언제?
-일요일.
-예에에!
속도 없이, 내가 고작 하루 더 있는다고 나를 안고 들고 마구 좋아해주는 이 친구들 덕에 나도 별 수 없이 웃고 만다. 늦게 오는 바람에 바다에서 갓 잡아 만들었다는 조개구이는 놓쳤지만, 좋다. 까짓것:)
+낮에 캠핑장 앞 바닷가에 따라가 마티아스랑 마리아노가 조개잡는 것을 도와주면서 마리아노의 호언장담에 잔뜩 기대하고 있었던 조개구이(!) 는 그 무수한 껍질과 함께 흔적만 보았지만...
슬프지 않아 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