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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건물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처하는 법

다국적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며 벌어지는 일

by 마타이

오래된 건물을 좋아한다. 예전에 일했던 건물은 유명한 건축가가 지은 건물이었다. 건축가의 아름다운 설계도 설계였지만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건물 곁으로 어느새 소곤소곤 녹아든 자연도 멋있었다. 최근 지은 건물들에 비하면 냉난방이 아쉬웠지만, 추울 때 춥고, 더울 때 더운 그 건물 안과 밖에서 계절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외벽을 감싼 담쟁이들은 사계절마다 건물에 다른 옷을 입혀주었고, 야들한 뿌리와 가지로 겨울을 견디고 건물 틈에 꽃을 피워낸 이름 모를 잡초에 용기를 얻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다 참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이따금씩 하수구 등으로 올라오는 악취 같은 것들이나 습기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러나 아름다웠지만 비 오는 날이면 곤란스러웠던 유명한 건축물에 취해, 나는 나쁜 기억은 다 잊고 또 오래된 건물에서 일하는 직장에 취직했다.


지은 지 30년은 족히 넘은 듯한 야트막한 건물. 면접을 위해 드나들 때는 몰랐다. 뭐에 홀려 입사하게 된 것일까. 면접 때도 새집을 구하러 다닐 때처럼 수도꼭지 좌우로 돌려 냉온수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화장실 가서 변기 물도 한번 내려보고, 사무실 자리 가서 공기도 들이마셔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출근 첫날 마주한 인상은 그야말로 무법천지. 엘리베이터는 허구한 날 고장 아니면 수리 중, 화장실 변기는 물이 내려가지 않고, 그나마도 사람수에 비해 턱없이 적다. 궁여지책으로 놓아둔 화장실 옆 대형 휴지통은 휴지로 넘쳐났다. 손을 씻으려 수도꼭지를 열자 손이 데일 정도로 뜨거운 물이 마치 내 바지 앞섬이 타깃인양 쏘아져 내렸다. 사무실 공기도 마찬가지였다. 앞뒤사방으로 다 막힌 강남의 오래된 건물은 환기가 전혀 되지 않았다. 같은 층을 쓰고 있는 이들과 시간을 맞추어 대청소의 날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과거의 그 건물이나 이 건물이나 노후되긴 마찬가지인데 왜 이렇게 다르나. 그 안에는 관리하는 이들의 차이가 있었다. 과거의 그 건물은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기에 건물주가 살뜰히 살폈다. 지금 건물은 돈 벌어 나가면 되는 것이기에 아무도 살피지 않는다. 건물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살피지 않는다. 돈은 벌어 어디다 쓰는지 건물청소 해주시는 분들은 아침나절만 잠깐 오가니 바닥에 비질을 하는 이도, 중간에 화장실 쓰레기통을 비우는 이도, 떨어진 화장지나 비누를 채우는 이도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화장실이 막혀도 뚫어주는 이가 없다. 지가 뚫고 나와야지라고 했다면 답하겠다. 제 건 제가 뚫죠…. 오래된 건물에서 일하면서 나는 서서히 인류애를 잃었다.


수년을 지내고 보니 슬슬 요령이 생겼다. 볼일은 가급적 아침에, 점심때나 잠시 밖에 문구점 등에 드를 때 해결할 것, 화장실 휴지 등의 비품은 언제 떨어질지 모르니 항상 비상용을 준비할 것, 수도를 틀 때는 반드시 찬물부터, 뚜껑이 내려진 변기를 대할 땐 가급적 화장실 문을 열어놓고(전 범인이 아니에요…),


심지어 이 환경에서 나름대로 어떤 질서를 발견하게 되었고, 모두가 지키는 작은 질서 덕에 그나마 이렇게 우리가 지낼 수 있는 것이구나 느끼는 날도 많아졌다. 화장실을 나오며 마주치는 동료에게 “제가 휴지도 채워넣고, 승무원처럼 휴지들도 다 제곳에 버렸답니다” , “어머나 전 럭키걸이네요. 감사해요~” 이런 인사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달까? 이렇게 이제는 나름 적응이 되었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마주한 것이다.


변기 위에 흩뿌려졌으나 너무나 선명한 노란 액체를.


이런 씨부럴. 우아하게 살기가 이렇게나 힘들다. 이것은 나와 같은 신체 구조를 가진 이가 했을 리 없는 사보타주다. 대체 어떤 작자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인가. 발을 동동 굴렀다. 화장실은 한 칸인데 타인의 배설물까지 치울 용기가 안 난다. 결국 볼일 보기를 포기했다. 그렇게 사무실에 앉아 대자보를 쓰며(나는 엄마가 아닌데.. 이제 동료에게 변기 사용법까지 알려주고 있다) 동료에게 메신저로 말을 걸었는데 동료가 며칠 전 퇴근길에 자신도 똑같은 것을 보았다는 것이 아닌가.



어라. 이러다 곧 꼬리 잡히겠는데? "cctv가 있으니 제발 변기에 앉아서 사용해 달라는 대자보를 붙인 후 며칠 후 범인은 또다시 변기 위에 올라갔으므로 결국 우리는 cctv를 오픈했다. 범인은 외계인도, 신체구조가 다른 남성도 아닌, 새로 입사한 타 부서 중국인 동료였다.


너무나 서운했다. 우리는 동료인데, 당신은 매일 머리도 윤기 나게 잘 감고 다니고 어여쁜 치마를 입고 친절하게 웃는 사람이었는데... 나한테 왜 그랬어요?


대놓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그녀의 한국인 선배에게 전달했다. "cctv판독 결과 oo님이 범인입니다. 주의를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진짜 상처는 여기서 났다. 그녀 왈 "그럴 리가요. 그 직원 중국인이지만 중국에서 엄청나게 큰 저택에 사는 부잣집 딸이고, 영국의 명문대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사람이에요. 그런 좋은 집안과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이가 그럴 리가 없죠."


cctv가 보여준 명확한 진실도 보지 않으려 하는 태도가 어처구니가 없었다. 저기요.... 나머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높은 시민의식(?)으로 타인을 배려하며 후진 시설을 그나마 아름다운 질서로 사용해 온 이들은 가난하고, 못 배워서 그랬답니까?




아 쓰다 보니 또 열받아서 이어서 쓰질 못하겠네.. 아 왜 이렇게 요새 상식이 없는 인간들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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