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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안에서

여름이 좋은 이유

by 마타이

한 자라도 써보려고 노트북을 꺼내들고 까페에 왔는데 한 시간 반째 네 줄짜리 글만 네 번 저장했다. 다들 저장함에 어디에도 못 올릴 글감이 가득할까. 이게 다 여름 때문이다. 겨울에도 여름나라에 가는 나다. 사계절을 다 그만의 이유로 사랑한다고 말해왔지만, 어쩌면 거짓말이다. 나머지 삼계절에게도 어떻게든 품어져 살아내겠다는 간교였을지도 모르겠다. 여름을 사랑해왔다. 내내.


장마가 지난 후의 건조한 날씨가 좋다. 차가운 바닷물에 들어가 몸이 한기를 머금을 때까지 자맥질하다 물밖으로 나오면 뜨거운 태양은 어느덧 따스한 품이 된다. 태양빛에 그을릴 걱정이 없는 여름 밤의 바람도 좋다. 피부로 바람을 느끼려면 옷은 최대한 걸치지 않아야 한다. 원초적인 아름다움에 더 집중하게 되는 때다. 태양이 내려오며 만들어내는 무수한 붉은 색에 매일 감탄하며 사진을 찍어댄다.


태양에너지가 하필 나에게만 솟구치는 것인가. 달뜬 마음은 가라앉지 않고, 어떻게든 놀 궁리를 하게 된다. 놀고 싶다 놀고 싶다 나가 놀고 싶다 나가서 실컷 놀고 싶다. 여기까지 쓰고 혼자 웃어버린다. 사람은 참 신기하네. 어릴 때도 실컷 놀고, 나이 먹고도 쉬지 않고 놀았는데 여전히 계속 신나게 놀고 싶구나. 놀이도, 쉼도 아닌데, 무엇일까. 살아있음에 대한 생생한 감각이 계속 신나게 놀고 싶은 마음인가.


그리고 내일은 월요일이구나.


한 자라도 써보려고 노트북을 꺼내들고 까페에 왔는데 두 시간만에 겨우 네 줄짜리 글 세 단락을 써놓고 다섯뻔째로 저장함에 저장하려다가 그냥 발행하기로 결정한다. 이게 다 여름 때문이다. 겨울처럼 손끝이 시리게 만든 커피빈 에어컨 때문이다. 여름의 뜨거운 태양을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5분도 못 걷고 후회할 거짓말이다. 에어컨 없이는 한 시도 못 버틸거면서.


오늘은 글 쓰기도 나가놀기도 포기하고 비비언 고닉의 <사나운 애착>을 마저 즐겁게 읽기로 한다.

GX011692_1753267711272.jpg 상황봐서 내고 가능한 파라솔 대여. 튜브 정도는 파라솔에 은근 슬쩍 끼워넣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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