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억지로 좋은 사람이 되지 않기로

너무 노력하면 마음도 체한다.

by 마타이

오랫동안 관리직을 하다 보면 몸도 마음도 쉽게 닳아버린다.

몸은 휴식으로 어느 정도 회복이 되지만, 마음은 늘 그 자리에 오래 남아 버티다가 어느 날 갑자기 무너진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든다.

왜 내가 주니어였을 때 받지 못했던 친절과 양보를, 지금의 나는 팀원들에게 베풀어야 할까.

나는 야만의 시대를 어렵게 지나온 노동자인데, 지금의 나는 어쩌다가 이렇게 ‘문명인’으로서 행동하길 스스로에게 기대하게 된 걸까. 놀랍게도 그 기대는 타인의 것이 아니라 온전히 나의 것이었다. 괴물이 되기 싫으니까.


억지로, 억지로 좋은 사람이 되려다 보니 마음이 먼저 지쳐 갔다. 억지로 잘해주고, 억지로 베풀고, 억지로 가르쳐주고, 억지로 용서하고, 이러다 내가 나를 미워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럴 때 문득 떠오른 것이 노자의 말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가장 높은 선은 물과 같다.”

물은 높고 낮음을 따지지 않고, 스스로 싸우지 않으며, 자기 자리를 고집하지 않는다.

억지로 선해지려 하는 것이 아니라, 흐르듯 자연스럽게 존재할 뿐이다.

노자의 ‘무위(無爲)’라는 말이 결국 말하는 것도 그것일 것이다.

하려고 애쓸수록 멀어지고, 흘러가면 닿게 되는 자리.


그 자리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지만 사람 마음은 물처럼 쉽게 흐르지 않고, 바람처럼 가볍지도 않다는 걸 또 실감한다.


고명재의 <너무 보고플 땐 눈이 온다>라는 산문집엔 이런 글이 있다.


***
그렇게 천천히 ‘나’라는 사람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

그 대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남’이 참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별게 아니다. 나의 시도 별게 아니다.

하지만 나도 용감하게 사랑할 수가 있다.

세상에는 정말이지 아름다운 시와 소설이 많았고

또한 아름답게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그런 그들을 응원하고 좋아하고 사랑하다 보니

시 쓰는 일도 더욱 행복해졌다.

매일 밑줄을 긋고 어떤 책에는 밑줄을 대었고

어떤 책에는 이마를 기대며 끝나지 말라고 말했다.

그런 틈틈이 시를 쓰면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너는 평생 아무도 보지 않을 시를 쓸 거야.

홀로 그냥 쓰다가 사라질 거야.


너는 남의 글만 읽다가 지워질 거야.

흔적도 없이. 아무도 모르게.

그래도 괜찮니.


응. 괜찮아.

이제는 괜찮아. 정말 괜찮아.


***


세상엔 이렇게 마음 근육이 단단하고, 조용히 아름다움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나는 아직도 억울하고, 서운하고, 마음이 자꾸 뜯겨 나가는 걸까.


오늘은 징징거림 없이 친구에게 책 이야기를 했더니 친구가 말한다.


“너도 그런 사람이야^^ 좋은 사람임. 추운데 따뜻하게 맛난 거 먹고.”


그 말을 듣는데, 아… 결국 또 울어버렸다.


아무래도 내 친구는 책도 안 읽고, 반성도 잘 안 하지만, 이미 흘러가면 갈 수 있다는 그 자리, 그 근처에 닿아있나 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잠자는 지하철의 미남을 도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