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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는 지하철의 미남을 도촬

철컹철컹... 이것은 지하철이 철로를 움직이는 소리일까

by 마타이

지하철에서만 책이 읽힌다. 유일한 독서실. 부러 책 읽는 시간을 내기 힘들어 출퇴근 시간이나마 의미 있게 써보자 시작한 지하철 독서였는데, 어느덧 지하철 외엔 책을 읽을 수 없는 이상한 강박이 생겨버렸다. 그러니 지하철 타는 시간을 살뜰히 아껴 독서시간을 사수해야 함에도...


아뿔싸 무심히 고개를 들었는데, 맞은편에 초미남이 앉아있다. 신의 아름다운 피조물. 남자 중에선, 20대에선, 지하철에선 특히, 매우 드물지 않았던가. 땀내나 담배쩐내만 나지 않아도 감사했는데,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진 젊은이가 무방비하게 입을 벌리고 잠들어있다. 긴 시간의 관찰을 허용하듯.


천사인가, 나와 같은 사람인가, 시선을 빼앗긴 나머지 이 젊은 남성의 아침잠에 함께 빠져들고 싶어진다. 너의 꿈엔 내가 싫어하는 단어들은 하나도 없을 거야. 눈만 감았을 뿐인 나의 이해를 초월한 미지의 존재를 앞에 두고, 무한한 상상을 펼쳐 발칙하게 장식해 본다.


나의 어디에 예술적 충동이 있었던가, 그림으로는 담을 수 없는 나의 재능을 탓하며, 사진이라도 남겨두고 싶어진다. 사진이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14조까지 가지 않고도 다행히, 나는 그림만큼이나 사진도 잘 못 찍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마 내 사진도 그의 아름다움을 담아낼 순 없을 것이다. 그저 찬탄하며 바라볼 밖에.. 그가 깨서 눈이 마주친다면, 이런 감상적인 순간에서 깨어나게 될까.


때로 재능과 무관히 열심히 셔터를 눌러대는 이들도 있다. 수년 전 지하철에서 만난 한 아저씨처럼. 내 옆자리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우리 앞에 선 여고생들의 가슴을 참 열심히도 찍었다. 제지하는 나와 아저씨가 입씨름을 하는 동안 여고생들은 옆 칸으로 사라졌다. 내가 아저씨와 싸우지 않았다면 여고생들은 그런 사실을 몰랐을 테니 수치심은 내가 준 것인가...


그런가 하면 차마 내 갤러리엔 남길 순 없을 정도로 이름 모를 부정적인 감정을 느꼈던 장면도 있는데, 아직도 무어라 규정하지 못하겠다. 지하철 출구로 오르는 계단에서, 저 위에 한 발 앞서 계단을 오르던 초미니 스커트 여성의 생리대를 본 일이다. 팬티 아래께가 훤히 보이던 그 여성은 한 건물에서 근무하는 직장 동료였다. 이후 가수 BB가 동일한 내용으로 이슈가 된 일이 있었는데, 이럴 때 타인들은 뭐라고 하나 댓글을 하나하나 읽어도 내 감정의 이름은 규정하지 못했다.


아름다운 것, 기억하고 싶은 것을 대할 때는 사진을 찍어 남겨왔다. 그렇게 남겨진, 올여름의 능소화 무더기들, 따뜻한 차가 담긴 예쁜 찻잔들,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조카들, 오늘이 가장 젊을 나의 부모, 내 눈에만 잘생긴 그의 얼굴, 그리고 수많은 음식들, 잉? 음식은 왜 그리 찍어대는지는 잘 모르겠다. 먹고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인가...


지하철은 책을 읽는 유일한 공간인데, 오늘은 어쩐지, 보고도 기억하지 못하는 얼굴들, 누군가는 침대로, 누군가는 책상으로, 누군가는 화장대로 그곳에서 만날 사람들을 생각하느라, 잠시 독서를 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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