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져서 그분께는 보낼 수 없는 글
잘 아시다시피, 저는 본디 감사를 모르는 인간입니다. 겉으로는 호방한 척 하지만, 10년이 넘은 용서도 미루어 놓고 살지요. 원한을 켜켜이 쌓아두고 사는 것을 즐기다 보니, 가슴에는 독이 차, 응당 감사해야 할 오늘도 지나쳐버리고 맙니다.
저희가 만난 것은 십오 년쯤 전의 일입니다. 그때의 저는 지금보다 더 보잘것없었지만, 지금보다 더 씩씩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때 당시 40대쯤이셨을까요? 당신은 직장에서는 능력 있고, 가정에는 착실했고, 심지어 부지런히 어여쁜 글들을 쓰시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는 멋있는 남자 중에 유일하게 머리숱이 얼마 없으세요. 불구하고의 아름다움이니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요.
그러니 처음에 당신이 멋있다고 생각한 것은 순전히 이런 외적인 것들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의 글 속에는 가족들과 동료들이 종종 등장했습니다. 당신의 근거리에서 일하는 동료들을 부러워하며, 나는 언제쯤 당신의 글 속에 에피소드의 조연으로 등장할 수 있을까 기다려보기도 했습니다.
저에게 그보다 멋진 멋진 직장 상사는 그 이후로 지금까지 쭈욱 없었기 때문에 항상 주변을 배회했습니다. 순댓국을 좋아하신다고 할 때는 함께 순댓국을 먹고, 평양냉면을 좋아하신다고 할 때는 함께 평양냉면을 먹었습니다. 사실 저도 순댓국과 평양냉면을 좋아합니다.
당신의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선배보다 먼저 손을 번쩍 들어 자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항상 피드백은 길지 않았습니다. 유난히 타인에게 조심스러운 성품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후배들은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한다는데, 뭘 해도 우당탕탕하던 제가 부담스러우셨던 게 아닌지, 한 번도 머리를 쓰다듬어주지 않는 선생님을 미워하듯 왜 나에게는 친해질 기회를 내어주지 않으시나 서운했습니다.
그렇게 반쯤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간헐적으로 소식을 전하며 살았는데 십오 년 만에 기회가 왔습니다. 드디어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지요.
그러다 갑자기 엊그제,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 궁금해졌습니다. 저는 당신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알지 못했더군요.
언제부터 작가의 꿈을 꾸신 건가요? 어떤 생각이 당신에게 글을 쓰도록 했습니까?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을 해내셨습니까?
당신의 글 속에서, 당신은 끊임없이 이미 가진 아내를 탐합니다. 가진 것이라 소홀히 여기지 않고, 계속 을의 마음으로 애틋하게 사랑합니다. 당신은 행복을 모른다고 말하며 직장에서 만난 이들과의 아주 사소한 에피소드를 길어다 글에 담았습니다. 당신의 글이 따뜻한 줄 알았는데, 정말 따뜻한 건 어떻게든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고 남기고자 했던 노력에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세상이 미워져서 힘들어하던 십오 년 전 직장 후배를 불러다가 글을 써보라고 부추깁니다. 감사를 모르는 저 같은 사람도 결국엔 깨달을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제가 누리는 이 행운이 얼마나 큰 것인지요.
꼭 당신이 나누어주신 마음을 다른 이들에게 갚겠습니다. 그리고 아직은 더 풀어내야 할 것들이 있어서 힘들지만, 반드시 저만의 아름다운 글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