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가 이런 날도 오네요
거기 바쁘게 걸으시는 분? 그래요 당신, 코트깃 여미시는 분! 지난주에 해외배송으로 새로 산 코트 입은 당신 말이에요. 아무리 인생 살기 바쁘다지만, 내 얘기 좀 들어봐요.
한 달 전쯤일거에요. 팀원들이 자꾸 언제 메일에 회신 주냐는 거에요. 저는 원래가 즉답이거든요. 머리가 나빠서 일을 미뤄두질 못해요. 그러면 다 엉켜버리니까. 그래서 즉답을 주게 되었는데, 그렇게 20년을 일했더니, 이젠 거의 10분 간격으로 일과 일 사이에 강박적으로 이메일을 확인하나봐요. 가끔은 그렇게 빨리 즉각적으로 회신하고 또 판단하는 것이 정말 효율적인건지, 이런 류의 효율을 갖는 것이 관리자의 일이 맞는지, 또는 이렇게 한다고 정말 일을 잘하는 것인지 잘 판단이 서질 않지만..어쨌거나 전 그런 걸 생각할 여유도 없답니다.
이제 팀원들도 제가 그런 사람인줄을 알죠. 그러니 "읽음 2023.10.08 18:05" 수신 확인이 뜨는데 제가 답도 없으니 답답해서 물어봤나봐요.
문제는 저는 그 메일을 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사실 3주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냥 무시해넘겼어요. '아~ 내가 바빠서 누르고 안 봤나보다' 했지요. 사실 작업창을 스무개쯤 열어놓고 살고 있거든요. 사람이 너무 정신없이 일하다보면 그럴 수도 있지 않아요?
근데 그게 너무 잦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일단은 유튜브니 인스타그램인니 하는 것들을 좀 덜 시청했어요. 내가 아무래도 그 뭐냐. 많은 다른 사람들처럼 집중력을 도둑맞은거라고 여긴거죠.
그런데도 그 현상은 사라지지 않았어요. 저는 읽은 적 없지만 수신확인이 되어있는 메일들 말이에요. 첨에는 팀원들 보기가 어쩐지 민망해서 "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요? 아무래도 저희 메일시스템에 오류가 있나봐요"라고 했지만, 사실 메일 시스템 오류는 크게 고려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때부터 스멀스멀 도대체 누가 내 이메일을 열어보는거지. 대체 이걸로 어쩌자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하지만 바보같이도 약간의 짜증을 가진채, 반쯤은 내가 열었나보다, 네, 20년간 그런일이 단한번도 없었습니다만 저는 저를 의심했습니다. 또 나머지 반쯤은 이게 대체 뭔일이야 하는 마음으로 2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 드디어, 또 같은 증상이 반복되지 않았겠어요. 또 다른 팀원이 "메일 언제 회신 주실거에요?"라고 묻는데 너무나 화가나 그제야 회사메일시스템 관리하는 회사에 오류 메일을 보내기에 이른 겁니다.
"메일을 확인한 적이 없는데 자꾸만 수신확인이라고 뜹니다. 저는 맹세코 그 메일을 오픈한 일이 없어요. 수신확인 오류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메일을 쓰며 타인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하더군요. 누군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 또는 누군가 날 엿먹이고 싶어한다. 누군가 날 짜증나게 하고 있다.
메일을 쓰며 처음으로 이메일 뿐이 아니라 내 마음에도 문제가 생겼음을 조금 인지하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저는 '과도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 피해망상' 등을 의심하며 정신과에 방문하기에 이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