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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Nov 08. 2023

정신과 방문기

누구든 좋으니 절 치유해 주세요

제가 어디까지 말했지요? 맞다. 제가 피해망상과 업무스트레스로 미쳤다고 생각하고 정신과 예약을 했다는 얘기까지 했죠?


사실 정신과를 가게 된 건 퇴사한 직장 동료의 공이 큽니다. 그녀는 쾌활하기 그지 않는 성격을 가졌어요. 저처럼 구질구질하지 않고, 심플합니다. 때대로 전 그녀와 얘기할 때, 얜 머가 이렇게 당당할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점심에 만나 식사를 하는데, 그녀에게는 썸남이 생겼더라고요. 기쁜 맘으로 그녀의 말을 들어주고 싶은데. 제 처지가 너무 처량하네요. 결국 찻집으로 옮겨서 얘기를 하다가 눈물이 터져버립니다. 순간 그녀가 제 손을 잡고는 "마타이, 너 안 되겠어. 병원 가자"한 거죠.


현대 사회는 너무 복잡해서 친구에게 썸남 자랑을 하기에도, 또 정신병 이야기를 하기에도 적절하지 않답니다. 조만간 우린 모든 수다를 ai랑 하거나, 아님 정신과 의사한테 해야 할 것 같아요. 아님... 영업사원에게? (대신 물건을 많이 사주어야 합니다)


그녀에게 소개를 받아 간 정신과는 환한 조명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하긴 병원이 다 그렇죠. 언뜻 보기엔 내과나 다름없어 보이더라고요. 다른 게 있다면 빼꼼 열린 진찰실이 없다는 것 정도? 평상시 같았다면 아마 토요일 그 시간엔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흐뭇해하고 있었을 거예요. 


저는 대충의 문진표를 작성하고는 기다렸다 진찰실로 들어갑니다. 의사는 제 또래의 여자입니다. 친근하네요. 진료비를 뽕 뽑을 생각에 처음부터 작정하고 털어놓습니다. 심리적 장벽이 어쩜 이렇게 1도 없나요. 


그녀는 한참을 듣더니 이제 저에게 약을 쓰겠다고 하더군요. 제 첫 정신과 약입니다. 


"꼭 약물로 치료해야 하나요?" 


저는 정신과 약이 무섭습니다. 약에 의존하게 되는 삶을 상상하기도 싫고, 어쨌거나 약을 먹으면 정말 미친 것 같지 않나요? 


그녀는 "일단 본질적인 문제는 환자분이 지금 극도의 스트레스 상황이고, 그 상황은 본질적으로 해결이 안 되는데 또 그 상황으로 들어가야 해요. 그런데 현재 상태면 제대로 평상심을 유지하기 힘드니 더 나빠질 거예요. 일단 약을 6개월 정도 쓰면서 평상심을 유지하면 진짜 스트레스 원인이 뭔지가 보일 거고, 그때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요. 약 위험하지 않아요. 정말 좋아요. 부작용도 없고 간편하고. 바로 나아진 걸 느끼실 거예요"


"선생님도 드셔보셨나요?" 묻고 싶었지만 묻지는 않았습니다. 반쯤 미쳤다고 해도 모든 의사에게 너도 암 걸려봤냐, 너는 간질도 아닌데 네가 간질을 어떻게 치료하냐, 너는 아파보지 않았으니 돌팔이다라고 말할 정도의 바보는 아니니까요.


약을 받아서 집에 왔습니다. 어쩐지 눈물이 납니다. 아 왜 나는 미쳤을까. 왜 나는 나를 사랑하지 못했을까. 아 왜 나는 너무 열심히 일했나. 아 왜 나는 열심히 살아도 안되나. 등등 별의별 불쌍한 생각이 다 들더라고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다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자 그러다 저는 갑자기 생각난 겁니다.

스트레스를 풀겠다며 다음 주에 여행을 가기로 했던걸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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