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Oct 16. 2023

젖꼭지 박사 아주머니

당신은 아무 것도 모르면서..

아침이면 퉁퉁 붓는 얼굴, 빼박 엄마 거다. 콧방울까지 단정히 라인이 떨어지는 오뚝한 코, 깊고 우수에 찬 눈매, 북방형 미남인 아빠의 유전자다. 좋은 건 여동생에게 갔고, 내 차지는 푸석푸석 부기가 빠져도 볼품없는 얼굴과 기골장대한 몸이다.


동생은 자그마한 체구를 가졌다. 얼굴도 예쁜데 키도 적당하다. 화장을 안 한 얼굴조차 이리 보고 저리 보아도 예쁘다. 이목구비가 또렷한데 지나치게 화려하지는 않아 늘 보아도 질리지도 않는다. 채식주의자가 된 이후로 갑자기 달리기까지 하더니 늘씬해지기까지 했다.


동생과 바꾸고 싶냐고. 내 동생도 그래봤자 일반인이다. 송혜교, 전지현이라고 제 눈에 못난 제 것이 없을까. 없음 말고. 세상의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 없지만, 가장 좋은 것을 다 가질 수도 없다.


한 때는 그랬다. 콧구멍이 넓고 아래로 쫙 퍼진 내 코가 동생 코처럼 단아하면 더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움푹 들어간 호수 같은 눈매가 있다면 누구라도 내 눈 안에 빠뜨릴 수 있을까. 외모지상주의를 살아가며 이런 생각 한두 번쯤, 아니 무수히 안 해봤다고 하면 어지간히 미인이거나, 어지간히 둔감한 것일 게다.


나는 무디다. 살다 보면 매일이 상처다. 보통의 일반인이라는 것 외에도 상처받을 일은 무수하다. 무딘 것만큼 강한 것이 있을까. 때때로 무딘 것인지, 기계인지 헷갈릴 정도의 강철 멘털이다. 강철 멘털은 공복 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동생처럼 채식주의자는 될 수 없지만, 조금이라도 슬림한 몸매를 얻기 위한 달리기는 따라 할 수 있다.


매일 오전 6시, 집 근처 헬스장으로 향한다. 9km 속도로 30분을 뛰면 내려오면 운동복 상의가 땀으로 흠뻑 젖어있다. 땀에 씻겨서일까. 잔뜩 부어있던 얼굴도 조금은 정돈된 느낌이다. 윗몸일으키기 백 개와 기구 운동 몇 가지를 한다. 남자들이 운동 기구에 설정해 놓은 가오잡이용 무게를 그대로 치며 강골의 면모를 보여주고 나면 그날의 운동 루틴이 끝난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샤워실에서 상쾌하게 씻고 나오는데 비좁은 탈의실에 아주머니 세 분이 옹기종기 앉아 있다. 성인 서너 명이 서있기만 해도 호흡 곤란이 올 것 같이 비좁은 공간인데 친밀한 사이끼리 한담을 나누기엔 좋은 사이즈인가 보다. 샤워하러 들어가기 전에도 신나게 이야기하던 걸 보았는데, 여전히 진행 중이다. 엿듣고자 하지 않아도 자연히 손녀딸과의 대화내용이 들려온다. 우리 엄마 또래인지 손녀딸이 초등학생이라고 한다. 나에게만 재미없진 않았는지 아니면 지나친 손녀 자랑이 지겨웠던지, 듣고 있던 다른 아주머니가  내게로 화제를 돌린다.


물이 뚝뚝 흐르는 몸으로 샤워실에서 갓 나온 내게 말을 건넨 것이다.

“어쩜 이렇게 몸매 관리를 잘했어요? 균형감도 좋고, 엉덩이도 탄력 있고”


여섯 개의 눈동자가 내 엉덩이에 머물러 있었다. 내 발밑에 둘러앉아 알몸을 바라보는 시선에 얼굴이 달아올랐지만 어색하게 웃으며 팬티를 황급히 입는 것으로 예를 다했다. 그들은 샤워할 생각은 없는지, 모두 옷을 입고 있다.


“몇 살이에요?”, 나이 물어보는 걸 싫어하지만, 칭찬도 들었으니 나이쯤이야 공개해야 하는 것이겠지. 여전히 익숙하지 않은 한국산 미더덕을 곱씹는다. “마흔도 넘었어요.” 아주머니가 또 질문을 한다. “애기 엄마죠?”, “하하하. 시집 못 갔어요” 아기 엄마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은 나이니까, 그저 그러려니 늘 하던 단골 멘트로 답했다. 안 했다는 당신들 삶에 반하는 것이기에 언제부턴가 내게 결혼 관련 답변은 정해져 있다. 당신들처럼 되길 원했으나 이루지 "못" 했다고.


덜 마른 몸에 바로 옷을 걸치기 싫어서 팬티만 입은 것이 화근이었을까. 아주머니는 아기 엄마냐고 물은 자신이 실례를 한 것이 아님을, 근거를 가진 것임을 다시 콕 집어 밝힌다. “아 나는 젖꼭지를 보고 아기 젖 물린 줄 알았네. 딱 봐도 젖 물린 젖꼭지라…”


이런 말엔 대체 어떻게 대답해야 센스 있는 걸까. 마땅히 성격 좋아 보이는 대답을 찾지 못해 어색한 광대를 한껏 쳐올리며 미소를 지었지만 내 안의 어릿광대마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기분이다.


적어도 “젖꼭지 박사 아주머니, 저는 최근 몇 년 간 어느 누구에게도 젖을 물린 적이 없답니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젖꼭지가 있다는 것을 아셔야 진정한 젖꼭지 박사가 되실 수 있습니다”라고 답해야 했을까.


무딘 감정은 어떤 일을 겪고도 간혹 제대로 정의가 어렵다. 화가 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즐거웠던 기억은 더더욱 아니었기에 그날의 일은 여러 차례 주변인에게 공유되었다.


엄마는 "아니 무슨 그런 미친 여자가 있어. 정신이 나갔네" 라며 흥분했고,

여동생은 눈썹을 한껏 찌그러뜨리고 입술을 오므리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한 회사 동료는 "저라면 신경 끄고 본인 운동이나 하라고 했을 거예요"하고 단호한 면모를 보여 박수를 받았고, 다른 이는 "저도 성격 좋은 척하느라 당황해서 답변 제대로 못하고 아 예예~ 하고 웃고 왔을 거예요" 했다.


이상하게 이 이야기를 할 때, 동료들에게는 자꾸 사족을 달았다. "그런데 정말 제 젖꼭지는 굉장히 평범하거든요. 정말 보여드릴 수도 없고 답답해 죽겠어요" 성격 좋은 척하느라 피곤한 동료는 "어후. 어째요. 보여주시면 저도 제 거 보여드릴게요" 우리는 다 같이 깔깔 웃으며, 다시 한번 분개했다.


도대체 평범한 보통의 젖꼭지와 아기 엄마의 젖꼭지는 어떻게 다른 걸까.

왜 우리는 타인의 신체에 이렇게나 민감할 걸까.


동생과 같은 자리에서 이야기를 들었던 제부는 며칠 뒤 "근데 여보 누나 젖꼭지가 특이하게 생겼어?"하고 물었고, 여동생은 내게 "너 정말 그런 얘기 좀 제부 앞에서 하지마. 내가 아 평범해 내꺼랑 똑같아 라고 했는데, 뒤돌아서 생각하니 oo이가 '아~ 저렇게 생긴 젖꼭지가 젖물린 젖꼭지구나' 생각했을 것 같더라고" 잔소리를 했다.


부은 얼굴에 팩을 올리고 있던 유전자 증여자는 내게 말했다.

“가슴 탄력 주는 시술이 있다는데, 너도 그러고 있지만 말고 엄마가 돈 줄 테니까 좀 알아보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