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Oct 17. 2023

카페쎄느 단골손님Y

김점순의 마음은 어디에 가 있을까

“아니 코드가 틀렸잖아요오”

환갑을 넘겼지만 여전히 피부는 생기가 돌고 표정엔 화기가 넘치는 김점순의 손가락이 내 왼손을 살짝 스친다. 


김점순은 기타 동호회 아르페지오의 최고 미녀다. 태백처럼 활기를 다 잃어버린 지방 소도시에서 일흔이 다 되어 김점순 같은 여인을 만나게 된 것은 천운이다. 아르페지오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태백에도 카페들이 많이 들어섰다. 카페쎄느는 소싯적 대도시에서 멋 좀 부려봤는 태백의 황혼들에게 사교의 장 역할을 톡톡히 했다. 이기상 같이 커피맛도 모르는 날건달부터 나같이 조용한 신사도 매일 들러 커피를 마신다.


아르페지오 회원들이 카페쎄느에서 작은 통기타 연주회를 연다고 김점순이 테이블을 돌며 조악한 팸플릿을 나누어주었을 때, 커피를 마시다 너무 놀라 나도 모르게 커피잔을 테이블 끝에 잘못 내려놓는 통에 이기상에게 두고두고 놀림거리를 만들어주었다.


이기상은 김점순을 다시 돌려세워 "내 친구 윤이남이가 아주머니 때문에 커피를 쏟았으니 잠깐 앉아서 아르페지오 얘기 좀 해달라"라고 졸라댔다. 이기상이나 나나 태백에선 제법 멋쟁이축에 속하긴 했지만, 그래봤자 준영감탱이들인데 점순은 선선히 자리에 앉아 아르페지오 얘기를 들려주었다.


태백 문화센터에서 만나 같이 통기타를 배우던 이들이 가끔 이벤트를 만들어 카페쎄느에서 작게 공연을 열기 시작한 지 몇 달이 됐단다. 나도 모르게 통기타 재밌겠네 하고 아르페지오 공연을 보러 들르겠다 말했고 이기상은 체통 없이 바지 앞섶을 긁어댔다.


카페쎄느의 사장은 부부로 동네 토박이가 아니다. 태백에서 났지만 대구를 거쳐 부산까지 돈벌이를 위해 옮겨 다녔다는 남자 사장과 남편만 바라보고 살기 무료해서 보험회사 영업사원으로 일했다는 여자 사장은 싹싹하니 수완이 좋았고 때때로 보험 상품을 소개하기도 했다.


사람들 말로는 여자 사장이 여간내기가 아니라서 사람들이 꼭 보험금을 타먹게끔 해준다는 것이다. 여자 사장 말대로만 하면 무조건 100만 원 이상 벌어간다는 말에 카페쎄느 단골들은 너도나도 보험 상담을 하러 왔다. 때문에 남자 사장이 자리에 없는 날에도 여자 사장은 자리에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아르페지오의 공연이 있던 그 밤에도 그랬다. 남자 사장은 어디 간지 보이지 않다가 아르페지오의 공연이 끝날 때 즈음에나 돌아온 것. 남자 사장은 태백 시내에서 정형외과를 하는 닥터박과 함께 쎄느로 돌아왔는데 둘 다 거나하게 취한 모양이다.


목소리가 커질 대로 커진 남자 사장은 “아 닥터박! 우리 상부상조합시다. 닥터박은 손해 안 가게 내가 잘 챙겨줄게요. 나도 이제까지 거기 갖다 바친 돈이 얼마인데 이 정도는 은행 이자로도 나올 거요”하고 소리를 내는데, 아르페지오의 연주는 끝났다지만 아직 기타 연주회의 여운이 남아 있던지라 카페 안에서 남자 사장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사람은 없었다. 여자 사장은 잰걸음으로 남자 사장에게 달려가 한쪽 팔을 꿰며 “오늘 무슨 술을 그렇게 마셨어요~ 닥터박 선생님 만나서 반가우셔서 그랬어요?”하지만 전혀 꾸중하는 투가 아니다. 남자 사장은 닥터박이 도와주실 것이라며 아내에게 맥주랑 안주를 내오라고 하는 것이다.


남자 사장과 닥터박이 카페를 소란스럽게 할 때, 온 신경은 김점순에게 가 있었다. 김점순은 그저 교태를 부리는 것인지 정말 내게 마음이 있는 것인지 애매한 태도다. 어린 처녀처럼 이기상과 자신을 저울질하며 애를 태우는 것 같다. 이기상이야 누구나 알만한 태백의 얼바람둥이라 통리장 근처에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는 해도, 장 서는 날에나 가서 얼굴을 비출 뿐 다른 날들엔 그저 근처 친구네 가게들이나 전전하며 술이나 마시고 혼자 식당일을 돌보고 아이들을 건사하는 아내에게 도움이 하나도 안 되는 작자다. 이기상의 아내가 이기상을 남편으로 안 여긴 지 오래됐다는 말은 이기상의 오랜 술자리 고정 멘트다.


“점순 씨는 언제부터 그렇게 기타를 잘 쳤대요?” 김점순에게 칭찬을 하며 환심을 사려했지만, 사실 김점순은 정말 기타를 잘 쳤다. 아르페지오의 주축 멤버인 듯 정 중앙에 자리하고 모든 멤버들이 연주 중간중간 김점순의 신호를 기다리기도 했던 것. 김점순은 “아이 뭘요. 적적해서 치기 시작했는데 이제 3년째네요. 남들보다 시간이 많아서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가 금방 늘었어요”하며 명랑하게 덧붙인다. “사장님들도 또 누가 알아요? 지미 페이지 못지않은 기타리스트가 될지?” 지미 파이지?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아는 것 마냥 하하하하 웃어넘겼다. 아무래도 김점순과 친해지려면  지미 파인 지 뭔지를 알아봐야겠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