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Oct 16. 2023

주짓수 관장 K

사고가 났다

금요일이었다. 살수가 도장에서 밭다리로 한 여자의 전방 십자인대, 내측 십자인대, 연골판 파열을 불러일으킨 것은.

살수가 문제를 일으킨 것은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엔 양상이 조금 달랐다.


피해자인 여자는 30대 중반으로 그 주 월요일에 처음 입관을 했다. 지나치게 평범한 생김새와 극명하게 대조되는 것은 왼쪽 눈의 멍이다. 멍이 없다면 길에서 마주친다고 해도 그녀를 알아보지 못하리. 노란색과 초록색이 뒤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약 5~10일 전 타박상을 입은 모양이다.


“눈은 어떻게 다치신 거예요?”

“트럭에 부딪혔어요”


더 말이 이어질 법도 한데 눈을 한껏 내리깔고 답하는 통에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2년 전쯤 중랑구에서 강동구로 주짓수 도장을 이전하며 본격적으로 운영에 뛰어들었다. 그전에는 근처에서 도장을 운영하는 같은 와이어 선배로부터 이런저런 도움을 받았는데, 좀 익숙해져서 이제 스스로 관원 모집도 할 수 있고 도장 관리도 할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전한 강동구는 송파구 관원 40 대 강동구 관원 60 정도의 비율로 운영되었다. 서울시 체육구로 불리는 이 동네는 생활체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아 운영에 별 어려움은 없었다. 살수가 나타나기 전에는.


살수가 등장한 건 두어 달 전이다. 놈은 맞지도 않는 도복을 접어 입구 구부정하게 도장에 입장했다. 놈이 내는 이상한 괴성과 시도 때도 없는 손뼉소리, 낄낄 대는 소리는 소름 끼쳤다. 기술이랄 것도 없는 살수에게 유색벨트 관원들까지 나가떨어지는 것은 살수가 유난히도 무거웠기 때문이다. 살수는 그렇다. 감당하기엔 너무나 무거웠다.


3개월을 등록하면 기본 디자인의 무지 도복을 증정한다. 도복을 입으면 제 아무리 초보운동가라도 제법 운동하는 기분이 나기도 하고, 아무래도 도복을 준다고 하면 3개월을 등록하는 경우가 많고, 받고 나면 중도에 환불요청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어떤 도장이나 도복을 증정하는 것이 예사다.


살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알게 된 살수의 사이즈는 A1. 특별할 것 없는 성인남성 보통 사이즈. 그런데 문제는 길이다. 살수는 지나치게 짧은 앞발로 인해 소매는 길게 늘어졌고 긴소매를 줄이지 않고 접어 올렸다. 하얀 허리벨트 앞자락엔 무얼 흘렸는지 붉은색 자국이 있다. 더 큰 체구도 많은데 묘하게 살수에게서 반인반수의 느낌을 받는 것이 붉은 자국의 위치 때문인지, 유난히 짧은 앞다리, 아니 팔 때문인지. 강습이 끝나고 도장을 청소하다 문득 살수가 떠오르면 머리를 저었다.


피해자가 살수와 스파링을 하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아무도 살수와 스파링을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살수와 스파링을 하며 깃 어딘가를 붙들고 한참을 씨름하고 몸의 모든 기운이 빠질 때쯤 살수가 배실배실 음흉하게 웃으며 슬쩍 올라탄다. 그러면 그게 누구든 이내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득점을 한 살수는 낄낄 웃으며 박수를 친다. 살수의 몸에 깔린 관원들은 무너지기가 무겁게 탭을 치며, 살수에게서 벗어나는 것에 집중한다.


살수의 깃을 잡은 그녀는 용케도 살수의 움직임을 역이용하며 여러 번의 위기를 넘겼다. 살수는 약이 좀 올랐는지 이제 슬슬 무게를 실어 그녀를 흔들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횟수가 더해질수록 그녀는 살수의 손에 붙들려 진자운동을 한다. 그때였다. 그녀의 눈빛에서 묘하게 살기가 느껴진 것은. 또 살수가 잠시나마 멈칫하는 바람에 앞뒤로 움직이던 그녀의 몸이 멈춘 것은. 잠깐의 망설임 후 살수가 평상시처럼 밭다리를 걸어 그녀를 넘어뜨렸다.


그때였다. 그녀는 무릎을 감아쥐고 도장 바닥에 누운 것은. 이내 그녀는 떼굴떼굴떼굴떼굴떼굴 여러 바퀴를 굴러 꽤 넓은 도장의 한쪽 끝으로 이동했다. 살수는 뭐에 홀린 듯 그 자리에서 멍청히 그녀를 바라보더니 쿰척쿰척 다가가 짧은 앞다리를 비벼대기 시작했다.


마치 실수로 못 볼 것을 바라본 것 마냥 황급히 살수에게서 눈을 옮겨 피해자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살수와 스파링을 했으니 다른 관원들의 마음이 되었을 것이다. 이제 정말 살수와 스파링을 할 수 있는 건 나뿐인가. 착잡한 마음을 접고 다가가 물었다.


“혜인 님, 괜찮으세요?”


신입회원은 대답 대신 얼굴을 찡그린다. 세 번째 만남이긴 하지만 여태 항상 웃는 얼굴만 보여줬던 착한 신입회원님인데. 접질렸다 보다. 일단 얼음찜질을 하게 조치한 후 도장 정리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대충 도장을 정리하고 내가 직접 신입회원을 집에 바래다줘야겠다.


“전 여기서 내려주세요”

“아니 왜요 좀 더 가시죠. 집 바로 앞까지 바래다 드릴게요. 저 골목길 운전도 잘합니다”

“아니에요. 바로 앞이에요. 부모님이 걱정하실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님과 마주쳐 괜히 일을 크게 만들 필요는 없지. 그녀를 천호역 인근의 이면도로에 내려주고 차를 돌아 나오는데 눈앞에 소매를 돌돌 말아 올린 살수가 지나쳐간다. 놀라 차를 멈추고 지나온 길을 돌아보는데 헛것을 본 것인지 살수가 서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오늘 너무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다.


다리를 건너 장안동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기 전 편의점에 들러 산 맥주를 냉장고에 넣어놓고 샤워를 하러 갔다. 늘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도장 정리를 마치고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오늘은 신입회원이 다치는 통에 샤워도 하지 못하고 나왔다. 탈의를 하고 샤워실 거울 앞에 섰다. 실내 운동을 하는 탓에 백옥같이 하얗지만 군살하나 없이 탄탄한 몸이 맘에 든다. 그런데 언제 다친 거지. 스파링을 하는 종목이기에 크고 작은 부상이 끊이지 않지만 도복 밖으로 드러난 얼굴, 손, 발 등 외에 찰과상을 입는 일은 많지 않은데 왼쪽 가슴에 상처가 있다. 샤워기 물을 맞으니 따끔거린다. 큰 부상도 아니니까. 샤워를 마치고 냉장고에서 차가운 맥주를 꺼내 가슴에 대자 차가움에 정신이 번쩍 난다. 찰과상 따위는 잊기 충분했다.


“저 밤새 무릎이 많이 아파서 병원 다녀오려고요. 다녀와서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무래도 도장에 오기 전 받은 신입회원의 카톡이 신경 쓰인다. 많이 다친 건가. 부상이 크면 안 될 텐데. 걱정이란 것은 긴장하며 현재에 집중하면 잠시 잊혔다가도 불시에 신경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법이라 오늘은 하루종일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저 내측인대가 많이 다쳐서 깁스 한 달 이상 해야 하고 주짓수는 아무래도 더 이상 못할 것 같아요”


오후에 받은 문자를 보자 걱정이 밀려온다. 아무래도 부상이 심한가 보다. 대체 살수는 어떻게 한 건지. 취미로 모인 사람들이 모인 도장에서 밭다리걸기로 인대가 그리 손상된걸 본건 또 처음이다.


“회원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더 잘 지켜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열심히 자판을 두드리는데 다음 카톡이 날아든다


“죄송하지만 제가 해외 거주자라 한국에 실비 보험이 없어요. 진료받은 치료비는 같이 부담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정확한 MRI결과가 나오면 다시 연락드릴게요”


아 맞다. 그랬지. 회원등록을 할 때 코로나로 휴직을 맞아 잠시 한국에 머물고 있는 거라고 했었다. 해외에서 항공사에 근무하는 승무원이었다. 한국에 머무는 동안 주짓수를 배우고 다시 해외에서 이어서 배우다가 또 종종 한국에 들어오면 수련하고 싶다고 했던 것이 떠오른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실비보험이 있기 때문에 부상을 입어도 자신들이 알아서 치료를 받고 오는데 아무래도 이번엔 치료비 일부를 보상해줘야 할 것 같다. 이거 이만저만 골치 아픈 게 아니군. 다시 한번 살수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른다. 아 대체 살수는 왜.



* 이 이야기는 소설로 절대 실제 인물을 다루지 않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쎄느 단골손님Y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