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타이 Apr 03. 2024

나는 춤추는 사람이었다

어떤 춤을 추는 사람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춤추는 사람이었다.

갑자기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이가 먹으니 눈치 볼 것 없이 솔직해지는 것은 좋네. 


사실 나는 술을 마셔야만 춤추는 사람이었다. 

그마저도 이미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남보다 더 거리감이 느껴지는 '20대 시절의 나'는 종종 친구들과 클럽에 가서 술을 마시고 흥겨운 리듬에 맞춰 사지를 흔들어대는 사람이었다. 


춤을 추는 나는 누구도 말릴 수 없었기에 다소 곱게 생긴 나는 의외로 스피커 위에도 올라가고, 친구가 자리에서 무릎을 펴기도 전에 무대 한가운데로 돌진했고, 발라드와 힙합 같은 느린 템포에도 나가서 독무를 추고, 끈적한 음악이 나오면 얌전한 평소의 나도 깡그리 잊고 섹시 댄스도 추었다. 


대체 왜? 넘쳐나는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했던 걸까?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에게 가서 관찰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다.


어쨌거나 같이 춤추러 다니던 친구들이 다 뿔뿔이 흩어지고 나의 댄스 역사도 흐지부지 끝이 났다. 


20년 만에 나의 파혼 1주년과 친구의 이혼 파티를 위해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모처의 나이트클럽에서는 활활 타오르는 장작 위의 오징어처럼 순식간에 맘도 춤사위도 쪼그라들었기 때문에 그 이후 오랫동안 나는 내가 춤추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춤추는 걸 보는 것은 꾸준히 좋아했다. 수영이나, 테니스, 요가 같은 내가 하는 스포츠부터 축구, 야구 같은 내가 하지 않는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무조건 몸을 움직이는 건 '보는 것'이 아닌 '하는 것'인 나인데도, 이상하게 춤추는 것을 보는 것은 좋았다. 


맘 속 깊은 곳에서는 자꾸만 춤에 대한 동경이 솟아올랐다. 발레리나의 섬세한 손끝도, 재즈댄서들의 흐느적거림도, 힙합댄서의 박자감각도, 스포츠 댄서의 턴에도 늘 심장이 뛴다. 이상한 건 보는 것을 즐겼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TV속 아이돌 댄스조차도 따라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내 춤은 오직 술을 마신 나만 출 수 있는 것이었다.


인생은 대체 어디로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고, 그게 나의 의지 같지도 않은 요즘이다. 그날 내가 무슨 바람으로 그런 일을 벌인 지도 모르겠다.


지지난 달, 나는 20년 만에 춤을 추었다. 이번에는 정신없이 돌아가는 사이키 조명 아래서가 아니라, 환하게 해가 비추는 마룻바닥 위에서다. '탄츠플레이'라는 댄스아카데미에 등록한 것이다. 남이 짜놓은 안무를 누군가를 곁눈질하며 따라 하는 일이 생전 처음이라 가뜩이나 뻣뻣하기만 한 내 몸은 더 내 말을 듣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춤추는 순간의 나를 인지했다. 


한 달이 지나, 남들은 다 익히는 전체 안무 중 겨우 1/4 정도 외웠을 뿐인데, 기적 같이 그 순간 엄청난 자유가 느껴지는 것이다.


어느덧 술 마시고 본능으로 추는 막춤이 힘들어지고, 배워서 한낮에 추는 춤이 더 좋아졌다. 짜인 틀 안에서의 내가 무한한 가능성 앞에서의 나보다 더 자유롭고 편안했다. 


앞으로 내 인생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그때마다 나는 얼마나 더 새로운 나를 마주할까.

작가의 이전글 러셀 로버츠의 <결심이 필요한 순간들>을 읽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