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몰라. 그냥 가는 거야.
"카자흐스탄요?"
"왜요?"
"너무 낯설어서 무얼 물어봐야 할지도 안 떠오르네요"
휴가지로 카자흐스탄을 골랐다는 내 말에 직장동료들은 적잖이 당혹감을 표현한다.
"거기 공산국가 아니에요?"
카자흐스탄 공산당은 2015년 당원미달로 해산됐다. 이 정도 묻는 것도 양반이다.
카자흐스탄은 한국의 12배 크기다. 그렇게 큰 나라이고 거리도 직항으로 7시간밖에 안 걸리지만 한국인들 중에 카자흐스탄이 친근한 이는 거의 없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스탄 국가라도 우즈베키스탄처럼 미인으로 유명하지도 않은 모양이다.
수도는 아스타나지만, 오랫동안 수도였던 알마티로 가기로 했다. 원래는 발레를 비롯 공연도 보고 도시와 교외의 일정을 적절히 버무려보려고 했는데, 해당 기간 동안 발레 공연이 없단다. 어쩌다 보니 차린 캐니언, 빅알마티 호수 등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가 될 예정이다.
오랫동안 백패킹을 하지 않았다. 예행연습 삼아 지난주엔 한 시간 거리의 백패킹을 다녀왔다. 나 혼자서 잘 다녀올 수 있을까? 가방을 꾸리면서도 걱정이 계속된다.
상태가 안 좋을 때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이번 여행도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다. 장기연애 후 이별 후유증이 조금 오래가고 있고, 그 보다 더 오래된 이런저런 트라우마와 삶에 대해 지친 마음도 함께다.
나는 지금, 삶에 좀 실망했다. 열심히 살아도 내 인생이 확 달라지는 건 없는 것이... 이제야말로 카르마를 받아들여야 하나보다.
그래 내려놓자 생각하니 편한 것도 있다. 며칠 고민하긴 했지만 회사에 전화기도 두고 갈 생각이다.
식비와 교통비가 저렴하다고 하는데.. 나의 경우.. 혼자다 보니 식비도 교통비도 그다지 세이브될 것 같지는 않다. 10일 여행에 일단 3일 숙소만 예약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혼자 놀자면 심심할 텐데 예약이나 거기 가서 하자 심산이다. 블로그도 쓸까 보다. 노트북도 챙겼다. 때마침 출발 전까지 회사일도 바빴다. 늘 바쁘지만.. 겸사겸사 정말 아무 준비도 없이 배낭과 침낭, 텐트가 캐리어에 담겼다. 중년의 나이에 알 거 대충 다 알고, 돈도 있는데 안될 일이 어디 있겠는가. 하여튼 안일하다.
떠나기 전에 나를 응원하는 것 같은 마침한 글을 읽었다. 내가 좋아하는 이슬아의 글이다. 정확히는 김연수의 글을 읽은 이슬아의 글이다.
“그녀들은 동쪽에서 정체불명의 낯선 민족이 화물칸에 실려와 황야에 버려졌다는 소식을 듣고 빵을 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빵이 식을세라 모포에 감싸 당나귀에 실은 뒤, 한 번도 만난 일이 없는 그들을 찾아왔다. 한인들이 울면서 그 빵을 먹는 동안, 카자흐 여인들도 울음에 합세했다. 빵과 울음. 새로운 삶이 거기서 시작됐다.”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406162030005
지금 내 마음꼴은 딱 허허벌판에 버려진 고려인이다. 카자흐 여인들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 돌아오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