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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타이 Aug 21. 2024

왜 쓰세요?

수요도 없는데 공급을 하는 이유

브런치에 공개적으로 글을 올린다고 내 글을 보는 이가 많은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대체 내 글의 독자가 있기는 할까 싶은 마음도 든다. 누군가는 이런 글을 일컬어 수요 없는 공급, 또 하나의 브런치 가비지라 한다. 그렇다면 일기에나 쓸 일이지, 왜 여기에 올리는 것일까.


오늘은 없는 시간 쪼개가며 기필코 브런치에 글 써야 한다고 매주 스스로 다짐하는지 이유를 써보기로 했다. 


1. 쓰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


마음 챙김 연구로 유명한 과학자, 엘렌 랭어는 인간이 생각하기 싫어하는 특성 때문에 어리석은 일을 수없이 저지른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인간이 얼마나 생각이 없는지 다양한 실험을 통해서 보여주는데 그의 복권 실험이나 복사기 실험을 보면 생각 없이 사는 인간 오브 인간인 나조차도 실소가 난다.


생각은 힘들고,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쉽다. 우리는 정신을 놓고 살아가지만 이를 인지하는 일은 드물다.


나는 어리석을 일을 수없이 저지르기에, 조금이라도 나은 인간이 되고 싶기 때문에 너무나 어렵지만 생각을 하고 살기로 결심한 거다. 


그렇다면 어리석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은 안 써도 될까? 맞다. 안 써도 될 것 같다. 누군진 모르겠지만 부럽다. 


2. 기록을 하기 때문에 과거와 현재, 미래가 연결된다.


쓰는 일은 나의 현재를 미래에 남기는 일이고, 때문에 나의 과거를 현재의 내가 돌아볼 수 있게 한다. 


한때 징크스라 여겼던 것이 있다. 극단적 호불호를 표현하면 꼭 어떤 상황이 일어나서 내가 욕했던 누군가를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같이 흉본 사람들이 보기엔 영 표리부동한 인간이다. 흉볼 땐 언제고 속으론 그자를 연민한다. 차라리 뱉지 말자 선언했던 적도 있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시간순으로 과거의 글들을 봤더니 남 흉보는 게 현저히 줄었더라. 점차로 나에 집중하는 인간이 되었더라. 그러고 나니 다른 사람 흉볼 때 조금은 가뿐해진 기분이다. 오죽하면 다 이해하는 내가 봐도 이상할까 생각하며 흉볼 수 있다. 농담이다. 미친 거 아니다.


어쨌거나 기록은 나를 비추고, 나의 과거는 1년 전, 10년 전 과거처럼 1초 전도 과거가 된다고, 0.00001초 전도 과거라고, 현재의 나를 한발 떨어져서 바라보라고 말해준다. 이불킥을 날리는 나와 떨어지는 이불을 다시 받아내는 나는 같은 사람이기도, 그렇지 않기도 하다. 


3. 타인을 인식하면 하나의 주제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게 된다.


독자는 깍두기 노트 같은 거다. 나 혼자 무선 노트에 쓰면 어딘지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글자처럼, 내가 주제로부터 생각으로부터 기록으로부터 날아가지 않도록 나를 하나의 주제에 묶어준다. 


주로 보고 그냥 가고, 어쩌다 하트를 눌러주고, 정말 운이 좋으면 댓글이 달리지만 깍두기 독자들은 이미 내 마음속에 존재한다. 어쩌면 인기 없는 브런치라 더 행복한지도 모르겠다. 실존하는 그들은 마찬가지로 실존을 가능하게 하는 위안과 실존의 이익을 안겨줄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겐 그저 관념만으로도 충분하다. 


누군가 읽을지도 모르니 깍두기 안에 예쁘게 써보자.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 반 부반장처럼은 안 써지던 국민학교 시절의 깍두기 노트는 잊을 수 있다. 나는 못난 나도 슬며시 사랑할 수 있어져 버렸다. 깍두기 노트에 나름대로 정성스러운 글을 썼기 때문이다.


4. 그래도 그나마 가장 정확하게 전달되는 방식이다.


오늘의 나는 무엇일까. 벌써 인생의 반절이나 와버렸다. 어떤 날은 수없이 많은 경험들은 다 무슨 소용인가 싶다. 여행을 더 가는 것이 무슨 의미일까? 수없이 많은 나라, 도시를 다녀오고 수없이 많은 다채로운 음식, 문화, 사람을 경험했지만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 나는 죽을 텐데. 


복제도 하고 줄기세포로 장기도 갈아 끼워가며 영원히 살 수도 있겠지만, 그때 되면 내 줄기세포는 이미 늙은 세포라서 써봤자 별 볼 일 없을 거다. 비용은 어떻고. 돈 잘 버는 자식도 없는데 그 돈을 어찌 감당할지도 모르겠다. 아 나는 그냥 자식도 없다. 어벤저스 컴파운드 같은 데서 지구 평화 수호를 위해 내 교체 장기를 만들어줄 리도 없다. 깍두기 독자를 잠시 잊었다. 


사는 것은 언제든 끝이 난다. 나에게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감사히 살아가기 위해 생각하고 나아지고 조금이라도 더 값지게 쓰고 싶다. 그리고 욕심이 있다면 이 글을 읽을 3분 뒤의 퇴고하는 미래의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외롭지 않을 작은 공명이 되면 좋겠다. 


'에이. 나도 일단 써봐야겠다' 정도면 충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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