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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를 대하는 마음

오독이 취미인 날씨 요정

by 마타이

생각나는대로 일기를 쓰려고 한다. 일기 쓰는 십분여도 온전히 내 삶을 돌아보는데 쓰지 못하고, 그냥 가는 생각, 오는 생각 다 받아주다가 하루가 끝날 때가 더 많다.


일기를 쓸때는 날짜, 요일, 날씨를 꼭 쓴다. 25.01.23. 맑음. 마침표로 끊어지는 리듬감을 좋아한다. 날짜와 날씨는 나의 역사적 배경이다. 그날 일어난 국내 외 굵직한 사건들도 기록해보고 싶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출산일 가판대의 모든 신문을 사 아이가 성년이 된 날 선물하는 로망도 갖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날씨도 겨우 쓴다. 심지어 이조차 매우 편파적이다.


언제부턴가 내 일기 속 날씨는 맑음뿐이다. 맑은 날만 일기를 쓰는걸까. 곰곰 생각해봤더니 내가 맑은 날로 기록하는거다. 흐려고, 낮동안 또는 밤동안 내내 비가 내려도 내게는 맑음인 날이 더 많다. 초미세먼지가 매우 나쁨이고, 중국에서 미세먼지가 창궐해도, 나는 평일 낮동안 내내 회사 모니터의 밝은 불빛 아래 있다. 나를 부추기듯 40대가 되고부터는 우리나라에 야행성 호우가 많아져서 장마철에도 출퇴근 시간엔 비가 오지 않는다.


아! 생각해보니 내가 지하생활자이기도 하다. 지하철 출퇴근을 하는데다 집도 직장도 지하철과 가깝다. 이쯤 되니 날씨는 맑음이 아니라 모름이라고 적어야 하는건가.


아침 출근길에 지하철에서 읽다 물러둔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를 다시 읽었다. 그가 쓴 많은 칼럼, 에세이 중 몇 편을 모아둔 글인데 캡터마다 재미가 있다 없다 하다. 오늘 읽은 부분은 <스페인 내전을 돌이켜본다>.


우리는 너무 문명화되어 명백한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진실은 아주 단순한 것이기 때문이다. 살아남으려면 종종 싸워야만 하고, 싸우자면 자신을 더럽혀야 한다. 전쟁은 악이며, 차악인 경우도 흔히 있다. 칼을 드는 자는 칼로 망하며, 칼을 들지 않는 자는 악취 진동하는 병으로 망하는 것이다. 이런 케케 묵은 소리를 굳이 쓸 필요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간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사는 이들의 자본주의가 우릴 어떻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게 해준다.


전쟁에 대한 그의 정의가 현재까지 유효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내가 날씨를 바라보는 마음은 임대소득이나 이자로 먹고 사는 이들과 똑같다. 한데서 험한 일 하는 이의 마음을 모르는 부르주아다. 이튼 스쿨 나와서 다 뿌리치고 험지를 전전하며 세게에 대한 자신만의 체험형 이론을 정립한 그처럼은 못한다고 해도, 매일의 감사 조차 힘든거다.


이렇게 책에서 읽은 대로 감사를 위해 노력하고, 머리로 감사를 발견하나, 자연스럽게 매순간 감사와 겸손을 느끼지는 못하는 이유는 뭘까. 매 순간 숨쉬든 감사와 겸손을 삶으로 끌어오려면 무얼 해야 하나.


자꾸 빈 곳을 채우려다 감사를 느낄 여유 조차 잃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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