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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 단식

멈춥니다. 계속 하기 위해서.

by 마타이

호르몬 불균형 진단을 받은 후, 오늘로 5일째 커피를 끊고 있다.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커피머신으로 달려가서 에스프레소 커피부터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노동자의 카페인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하루를 시작하는 의식이다.


이제껏 마시는 것들에 쉽게 매료되어 왔다. 매일 아침 커피로 시작해, 동료들과 마시는 오후의 커피, 나 혼자 조용히 차완에 내려마시는 차, 퇴근 후 친구들과 마시는 소맥부터, 나 혼자서도 1-2병은 마시는 와인까지. 그런데 이제 그 의식들을 멈추고 있다.


건강과 체력을 자부하는데, 최근 들어 자다가 수없이 깨고, 수면의 질이 나빠졌다. 10월부터 하루가 멀다하고 마신 술이 문제인가, 무의식적으로 마셔온 커피가 문제인가, 잠 잘자기로 소문난 나도 나이 먹으니 어쩔 도리가 없나보다. 내 맘대로 안되는 몸이 답답하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둘 다 끊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술단식 9일째, 커피단식 5일째가 되었다.


동생이 커피를 끊고 두통을 겪었던지라 금단 현상을 걱정했는데 원체 복용의 양이 많지 않아서인지, 아직 잘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동료가 "커피 한잔하러 가자"고 하면 '뭘 시켜야 하나' 난감했을 뿐.


그런데 아침에 회의를 하는데 하품이 멈추지 않는거다. 대표이사 앞에서 30여 차레의 하품이 민망하긴 했지만, 커피 한잔으로 내가 유지해 왔던 '각성'은 30여 차례의 하품이었구나 생각하니 좀 우습기도 하다. 맨날 똑같은 소리하는 지루한 회의에 하품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닌가.


"습관은 제 2의 천성으로 제 1의 천성을 파괴한다"- 블레즈 파스칼



커피, 차, 술...이런 것들을 끊는 것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하품 나올 때 하품 하고 별로 즐겁지 않을때 즐겁지 않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건가.


커피를 끊으니 마실게 너무 없다는 것을 절감했고, 그 전까지 잘 마시지 않던 물의 맛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술도 마찬가지다. 이미 어디서 차를 마시든, 술을 마시든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이 된 것이다.


익숙한 것들을 하지 않으면서, 내가 왜 그것들을 습관처럼 반복했는지를 곱씹게 된다. 그것들을 하지 않을때는 무엇을 하는지도.


종종 이것저것을 끊어보기도 하고, 다시 시작해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반복하던 것들이 내 삶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지 조금씩 알아간다. 변화가 주는 불편함 속에서 오히려 익숙한 것들의 가치를 재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당장은 커피와 술을 멀리하고 있지만, 또 다시 마실거다. 다만, 그때는 지금보다 더 의식적으로, 그리고 더 즐겁게 마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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