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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Jan 09. 2020

세밀함을 위한 미술수업

물멍

“선생님, 물멍이라고 아세요?”
“응? 물멍이 뭐야?”
“그게요…물을 계속 멍 때리고 본다고 해서 물멍이래요. 열대어 키우는 사람들이 많이 쓰는 말이에요.”

한참을 그렇게 어린 청년과 미술 선생은 새로 들였다는 드래곤 구피 네 마리가 있는 수족관 속을 물멍했다. 어린 청년은 어릴 적부터 작은 동물들을 키우는 것을 좋아했는데, 이를테면 개미에서부터 도마뱀, 귀뚜라미, 병아리와 메추라기, 남생이와 관상 새우에 이르기까지 자기 손보다 작은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집안으로 방안으로 자기 품 안으로 들였다. 최근에는 드래곤 구피와 이끼 먹는 청소물고기라는 오토씽을 위한 최적의 수족관 환경 만들기에만 수개월을 투자했다.

구피 가족들은 새로 입주하자마자 바로 약 열일곱 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깨알 크기보다 작은 아기 구피들을 따로 부화조에 옮기지 않으면 어미인지 아비인지 누군가에게 잡아 먹히기 때문에 일일이 큰 스포이드로 하나하나 꺼내야 했다고. 눈에 보이지도 않는 새끼들을 하나하나 집어 옮기는 과정이 적잖은 수고가 되었겠다. 조심스럽고 섬세하고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일.


그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그렸다던 그 옛날의 세밀화 (細密畵, miniature)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옛날 아주 옛날, 종이가 흔하지 않았던 시절, 예배와 기도에 필요한 성경이나 코란, 또는 다른 경전들에 세밀화가 사용되었다. 양피지, 나무상자나 상아의 표면에 성스러운 이야기들을 함축한 도상이나 삽화를 작게 담은 세밀화는 그 자체로 ‘섬세하고 정성스러운 기도’인 것이다. 그렇게 세밀화로 담은 경전을 들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재료로 쓸 싸인펜과 마커에 대한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사인펜도 대표적인 콩글리쉬인데, 미국 친구들에게 아무리 “싸인펜”을 말해도 모를 것이다. 영어로는 마킹펜(marking pen)이며, 우리가 싸인펜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1965년 모나미에서 처음 출시한 마킹펜의 제품명이 “싸인펜”이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이나 물티슈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만 쓰는 용어를 나열하며 한참을 같이 웃었다. 어떤 이름이 된다는 것은 이렇듯 의외성이 있다. 누군가는 저 수족관에서 하늘거리는 아이들을 보며 그냥 “물고기”라고 부르지만, 어린 청년은 그냥 열대 담수어도 아니고, 그냥 구피도 아니고, 정확하게 “드래곤 구피”라고 세밀하게 호명한다.

세밀하고 섬세한 마음, 그 손끝으로 그려낸 모든 것의 정성이 ‘기도’와 같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어린 청년이 자신의 드래곤 구피 한 마리를 세밀화로 그려내며 하는 말,
“다음번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는 함께 다시 수족관 앞에서 물멍했다.

#맛그림미술교육_수업
#세밀함을위한미술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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