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동화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Hans Christian Andersen, 1805~1875)이 들려준 이야기 하나쯤 모르시는 분들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인어공주, 미운 오리 새끼, 성냥팔이 소녀, 벌거숭이 임금님, 엄지공주, 백조왕자, 빨간 구두(분홍신), 나이팅게일, 눈의 여왕… 디즈니월드가 좋아라 했고, 여성학자들이 미워라 했던 이 동화들이 모두 그의 작품이죠.
안데르센의 아버지는 가난한 신발 수선공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유독 발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인어공주는 인간처럼 걸을 수 있는 발을 갖기 위해 목소리를 내어주어야 했고, 빨간 구두의 카렌 또한 두 발을 잘라내어야만 춤을 멈출 수 있었습니다. 또 <눈의 여왕>에서 소년을 구하기 위해 소녀 겔다는 자신이 신고 있던 빨간 신발 한 켤레를 강물에 버리는 대목도 있습니다.
안데르센은 원하는 곳으로 이끌어주는 ‘발’이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같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혹자들은 안데르센이 못생긴 외모, 부족한 사회성 때문에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못한 채, 갈수록 허영심과 사치가 심했으며, 또 그가 동성애자임에 분명하며 작품 속 곳곳에 있는 여성비하 및 여성혐오의 정서가 있다고 비판하기도 합니다. 진실은 오로지 안데르센 자신이 알고 있겠지요.
중요한 건 그가 떠난 후 100년이 되도록 우리는 그가 주목한 “욕망의 빨간 구두”라는 物의 뮤즈(Muse)에 여전히 매혹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의 작품 속 빨간 구두는 여성의 사회적, 신분적 지위 상승에 대한 욕망의 상징인 동시에 어딘가 권선징악의 '틀'이 있는 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후의 “빨간 구두”들은 꿈틀대며 조금씩 변화합니다.
미국 작가 라이먼 프랭크 바움(Lyman Frank Baum)의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 빨간 구두는 조금 더 강력한 권력과 마법을 가진 채 ‘집’을 소환시킨 존재였고, 천재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Guillermo del Toro)의 <판의 미로>에서는 악마와 대적하는 공주 오펠리아의 발에 단단한 군화 모양의 빨간 구두가 신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이르면, 빨간 구두는 더 이상 벗어던져야 할 이유가 없는 정당하고 당당한 욕망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한스 안데르센, 과연 그가 여성의 욕망을 제거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성정체성을 드러내지 못한 탓에 인어공주를 ‘비극의 하반신’으로써 상징했는지, 우리는 속닥거리며 궁금해할 겁니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정말 궁금해야 하는 것은, 나에게도 “욕망이라는 빨간 구두”가 있는지가 아닐까요?
나의 “빨간 구두”는 무엇인지, 그리고 나는 그것을 내 살과 뼈와 함께 잘라내야 하는지, 아니면 이제는 당당히 악마를 밟고 서서 욕망하는 곳으로 걸어가야 하는지… 더 이상 안데르센의 꾸며준 동화 속 세상이 아닌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져야 할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참고: "환상, 물신 그리고 빨간 구두 (Fantasy, fetish and the red shoe)", Hilary Davidson (2015), 뉴욕타임스
아이유의 <분홍신> MV
https://youtu.be/Q0xvVgKJxf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