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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Oct 25. 2017

이빨요정 보고서

판타지가 사라지면 동심도 사라진다

인간은 누구나 20개의 유치를 갈고 영구치를 얻는다. 이 당연하고도 뻔한 성장과정 중의 작은 사건들. 각자 추억은 있게 마련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아이의 이빨과 관련한 전통적인 방식의 “배려”나 “행사” 같은 문화적 대물림이 부족하다. 서구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빨요정, tooth fairy라는 가상의 존재를 활용하여 “이빨 빠짐”에 대한 어린이들의 공포감을 위로하는 풍토가 있다.


큰 아이가 처음으로 이빨이 빠지던 날, 딱히 이전부터 꼭 그래야겠다고 결심했던 바는 없었으나 문득,  “우리, 이 이빨을 베개 밑에 둬 보자. 혹시 알아? 이빨 요정이 와서 가져갈지도 몰라!” 어리둥절해하는 딸아이 표정이 무척 귀여웠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이빨요정 행세는 무려 6년간 이어지고 있다.


잠들기 직전에 “엄마, 나 이빨 빠졌어!”하는 날은 남편이 푸흡 웃으면서 날 쳐다보는 날이다. 아이 재우고 야밤에 편의점 나들이 가야 하는 날인 거다. 요즘 편의점에는 소소한 작은 물품이 많아져서 봉지 채우는 일이 어렵지 않지만, 초창기에만 해도 딱히 건진 게 없는 날은 소아 환아들을 위해 소형 완구를 준비해 두는 대학병원 지하 편의점까지 뒤져야 했다. 어이없는 그 고단함을 멈출 수 없었던 것은 아이에게 조금은 특별한 “판타지”를 추억으로 남겨주고 싶어서다.



그러나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이빨요정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천성적으로 무한 긍정인 딸아이는 초등학교 5학년인 지금도 이빨요정의 현신을 믿는다. 이 말 같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은 요정 따위를 믿는 아이를 내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알면서 일부러 선물 챙기기 위해 모른 척하는 건 아닐지, 만약 지금까지도 의심 없이 그저 믿는 저 순진함은 과연 정서발달상 맞는 단계에 있는 건지, 내가 벌려놓은 판에 대해 조금씩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초등 고학년 여자아이가 친구에게 “나 어제 이빨요정 왔다 갔는데 이거 받았다!”하고 궁서체 목소리로 떠들고 있을 걸 생각하면 어이없어할 친구들의 눈빛도 예상된다. 둘째인 아들은 8살 때 한번 논리적으로 따져 묻더니 어떤 이유에선지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예상컨대 그는 분명 눈치를 챈 듯하다. 천덕꾸러기 누나를 아끼는 마음에 입을 다물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과연 아이에게 언제쯤 이 모든 것이 판타지였으며, 엄마의 하얀 거짓말이라는 고백을 해야 하는 건지, 과연 아이는 이제 곧 인생은, 삶은, 우리 일상에는 사실 요정 따윈 없다고, 산타 따위도 없다고 체득하게 될 것인지, 그리고 “신념”이 사라졌을 때 아이가 오히려 받을 상처는 과연 없을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방금 큰 아이의 열여섯 번째 이빨을 수거해가는 이빨요정 샤를르의 패키지를 잠든 아이 옆에 두고 나왔다.


엄마의 몫은 여기까지다.


아가, 네가 꿈꾸던 환상이 사라졌을 때, 그 영롱한 파스텔톤 세상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부디 남겨진 그 폐허에는 상처와 배신감이 아니라, 언제고 이 엄마가 네 곁에 없을 때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추억하는 유년의 행복이길 바랄 뿐이란다.



https://youtu.be/_tP93i6hzt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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