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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tgrim Nov 06. 2017

이브가 아닌 릴리트

- 최초의 여성

독실한 기독교 신자들에게는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라고 경악할 만한 아담의 첫 여자, 릴리트(Lilith).


현대의 성서에는 등장하지 않으나 유대교 신화에 등장하는 릴리트는 아담과 똑같이 흙으로 만들어졌던 첫 파트너다. 릴리트는 아담에게 상위 체위의 성관계를 주장했다가 크게 다툰 후 아담을 떠난다. 이후에 하나님은 아담의 갈비뼈로 다시 여자를 만들었으니 그것이 이브(Eve). 기원전 2000전부터 서아시아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퍼져있던 다산의 여신 릴리트(또는 베리아/베리티리)는 그렇게 서서히 뱀과 교합하는 밤의 마녀로 불리게 되었다.


여러 예술 장르에서 팜므파탈(Famme Fatal)의 대표 아이콘이 된 릴리트는 과거 화가들이 꽤 애정했던 테마였다. 아마도 부담 없이 금기된 모든 에로티시즘을 발산할 수 있었기에 커미션을 받아내기도 좋았을 터.


여러 화가들의 ‘릴리트’가 있다지만, 그 중 백미는 단연 라파엘전파(Pre-Raphaelite) 화가로 대표되는 영국의 존 콜리어(John Collier 1850-1934)의 <릴리트>다. 탐스럽고 풍성한 긴 머릿결을 늘어뜨리며 얼굴을 상기된 뺨으로 큰 뱀의 얼굴을 다정히 애무하며 서 있는 하얀 살결의 여인이라니!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아름다움이 보는 이의 마음을 미묘하게 한다.

릴리트(Lilith), 1889

존 콜리어는 꽤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정규 아카데미 교육을 받은 직업 화가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유명세를 날렸다. 특히 콜리어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발 벗고 나서서 옹호했던 식물학자이자 불가지론(agnosticism, 不可知論)으로 대표되는 당대의 지식인, 토마스 헨리 헉슬리(Thomas Henry Huxley, 1825~1895)의 두 딸들과 결혼했던, 그의 (겹)사위였다. 여성 화가였던 첫 부인 마리안 헉슬리(Marian Huxley)는 첫 딸의 출산 후유증으로 사망하였고, 어려서부터 헉슬리 일가와 한 가족처럼 지냈던 존 콜리어는 당시 새로 개정된 영국법을 어겨가며까지 둘째 딸이었던 에델 헉슬리(Ethel Huxley)와 해외에서 혼인했다.


존 콜리어는 유명한 정계, 재계 인사들의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막 모더니즘의 신세계가 열리고 있을 때였던 만큼, 당대 비평가들은 그를 두고 빅토리안 시대의 선과 색채를 ‘답습’한다며 창의력이 다소 떨어진다는 평가를 내리곤 했다. 특히 그가 사망하고 신문에 실린 부고란에도 “그는 아름다움을 주제로 하였으나 거기까지다”라고 기록될 정도였으니까.


얼마전 역사학자이자 소설가인 커시티 워커(Kirsty Walker)는 존 콜리어가 당대 비평가들에 의해 평가절하되었다고 지적하면서 “(1900년대 이후의) 몇몇 특이 작품들을 통해 그가 당시 남성들을 뛰어넘는 결혼관과 여성관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라며 그를 재조명했다.


유별 독특한 기록 습관을 가지고 있는 존 콜리어는 마치 문화재 보관록처럼 모든 작품마다 연도 및 커미셔너, 작품값, 재료값 등 각종 정보와 간단한 노트를 작성해 두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문학적인 감상문이 아니라 밍밍하기 짝이 없는 기록문 같은 그의 노트 때문에 오히려 그가 “감흥 없는 화가” 취급을 당한 게 아니냐는 말도 있다. 오죽하면 저 유명한 누드화, <릴리트>를 그리던 날의 기록을 보면, “오늘 누드모델에게 구렁이를 두르게 하고 그렸다. 점심 식사. 오후 작업. 누드모델이 뱀에 감겨 질식하기 전에 작업을 멈췄다. 그렸다. 차 한 잔 했다. 취침.”이라니. 참으로 속을 안 보여주는 건조한 사람이다.


그러나 존 콜리어가 63세에 그린 작품, <추락한 아이돌 (A Fallen Idol)>에 대해 스스로 다음과 설명을 한 기록이 있다: “울고 있는 여인은 추락한 아이돌이다. 그녀는 중년의 남편에게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는 젊은 아내다. 남편은 학구적인 사람으로 아마도 그녀를 잘 돌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남자는 그 순간에 떠올렸을 것이다. 나의 잘못이 아닐까?라고... 나는 그가 아내를 용서할 것으로 상상했다.”


(1) 고백(Confession), 1902 / (2) 레이디 고디바(Lady Godiva), 1894 / (3) 추락한 아이돌(A FallenIdol), 1913.


시대초월적인 그의 이러한 여성관이 첫 부인의 여동생과 재혼한 어린 두 번째 아내와의 경험담이었는지, 학구적인 집안에서 성장했던 자신 주변 여인들에 대한 공감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그가 남긴 여러 노트에서 “나는 종교가 필요 없이 윤리(ethic)만으로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 사람들이 성경의 문구 그대로를 믿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고 여긴다” 등을 남긴 것으로 미루어보아, 그는 장인인 토마스 헉슬리와 같은 공감대를 가졌던 지식인이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존 콜리어의 대표작이었던 <레이디 고디바 (Lady Godiva)>와 <릴리트>, 그리고 그가 말년에 남긴 수수께끼 같은 <고백 (Confession)>과 <추락한 아이돌 (A Fallen Idol)>에 이르기까지, 그가 그려낸 ‘그녀’들은 어쩌면, ‘이브’보다는 ‘릴리트’에 가까웠던 건 아닐까.

무섭고 추악한 릴리트가 아니라 사랑과 존재에 대해 남성처럼 강인하고 당당하고 싶었던, 그런 ‘여자’ 말이다.



Randy Crawford, "Almaz"

https://youtu.be/n6vlSgaKeG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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