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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y 06. 2019

바다는 매일 다른 표정을 짓고 있다.

바다에서 사색에 빠진다는 것


바다



바다를 바라보고 있던 한 시간이 그동안의 모든 일을 위로해주는 것 같아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었습니다. 바다는 매일 봐도 좋았지요. 해운대에서 20년 이상 산 것은 어찌 보면 축복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서울을 좋아하면서 마음속으론 부산을 깊이 사랑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누군가는 그래요. 


"부산 사람들은 부산이 제일 좋은가 봐. 부산 중심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


맞아요. 저는 부산이 아닌 곳에서 살면 무슨 재미를 느끼고 살까 하는 생각을 가졌었지요. 그래서인지 이 바다가 더더욱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언젠간 이 서울에서 성공을 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었죠. 바다는 제 삶의 일부분이었어요. 고등학교 시절 방학 때 오전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과 바닷가에서 교복을 벗고 수영을 했었지요. 누나 방 창문을 열면 저 멀리 수평선이 보였고 해운대에서 술이라도 먹는 날이면 저는 슬쩍 바다를 바라보고 약속 장소에 갔어요. 그리고 바다 앞 호텔에서 일을 할 땐 매일 바다를 보며 사색에 빠졌었지요. 



일을 하며 바라보던 바다



바다에는 표정이 있습니다. 바다도 울고 웃으며 가끔은 무표정을 짓고 있기도 하죠. 어쩌면 날씨라는 녀석 때문 일지 몰라도 저는 바다에 갈 때마다 파도의 세기를 보고 바다의 표정을 살피곤 했어요. 거기에 따라 사색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었죠.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며 각자의 얼굴을 살핍니다. 너는 그렇구나 나는 오늘 이래 하면서 말이죠. 오랫동안 한 바다만 보다 보면 어느 지점이 제일 예뻐 보이는지도 알 수 있고 어느 계절에는 몇 시가 가장 바다를 보기 좋은 시간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저만의 낭만을 구축해온 것을 행운이라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이 바다의 모래는 이젠 너무나 편안합니다. 어디에 묻든 나는 모래바닥에 털썩 앉고선 좋아하는 음악을 듣습니다.



뭐가 너를 그리 슬프게 했니



오늘 바다는 조금 울상이었습니다. 제 표정과 비슷한 것 같아 더 좋았습니다. 음악을 얕게 들으며 파도 소리에도 귀를 기울였습니다. (챗 베이커 음악을 들었습니다.) 바람에 머리가 마구 헝클어졌지만 저는 바다가 만들어준 머리를 그대로 놔두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울에서의 사색과 바다에서의 사색은 차이가 크게 느껴집니다. 사실적인 생각과 이상적인 생각. 하지만 누군가의 낭만을 편히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기뻤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생각에 집중을 할 순 없었습니다. 서울로 떠나는 버스를 기다리며 이 바다에 온 탓인지 이상과 현실 그 가운데 있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눈을 감고 이 순간을 즐깁니다. 이 순간을 분명 그리워하겠지 하며 지금을 소중히 여기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바람이 붑니다. 그리고 나는 바다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사색의 장면


여기는 저 말고도 사색에 잠겨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했지만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합시다. 가족, 친구, 연인과 함께 한 바다에서 다들 연한 미소를 짓고 있어 보기 좋습니다. 유람선이 지나가고 새들이 날아오르네요. 에메랄드 빛 하늘, 사진 찍는 소리, 파도에게서 도망치는 아이들, 모래가 들어간 신발, 파도의 거품, 안개에 가려진 섬, 완공되어가는 빌딩, 서울로 가는 티켓 그리고 여기에 제가 있습니다. 




지금 이 감정을 활자로 적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바다에게 한 껏 위로를 받고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신발과 가방에는 바다의 모래가 묻어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사색의 흔적이라 여기고 싶습니다.

내 몸에 묻은 모든 것을 털어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어른이 돼가며 느끼는 점입니다.


 

날씨가 좋네요. 오늘 바다의 표정은 무엇일까요. 많이도 보고 싶어라.

 

2019-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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