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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하영 May 09. 2019

예전에 우린 유독 밝았다

관계의 사선에서


관계



예전에 우리는 유독 밝았다. 모든 걸 포용할 수 있는 기개로 사람을 만났고, 활발했고 또 웃음이 많았다. 많은 친구가 있어 좋았고 어딜 가든 외롭지 않았다. 그때는 마음이 활짝 열려있었으니 말이다. 마음에 받은 상처도 적었고 새살은 금방 돋아났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력은 느려졌고 큰 상처들은 늘어났다. 행복한 관계가 계속 지속되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관계의 사선에서


방충망은 창문에서 없으면 안 될 존재랄까. 갑자기 생각났는데 방충망이 없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에게는. 시원한 바람을 많은 사람들이라고 치면 그중에서는 먼지와 곤충 같은 것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저 바람이 좋아 그대로 놔둔 것이리라. 나는 절대로, 아무것도 몰랐으니까.

여러 관계가 시간에 의해 무너져갔다. 인간관계는 숙성을 거쳐야 한다지만 익기도 전에 썩는 것들이 사실 더 많았다. 그들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상황이 문제였을 뿐이다. 하지만 나는 두려운 마음에 방충망을 닫아야만 했다. 애석하게도 좋은 바람은 여전히 불어왔다.


20대를 꽤 보냈는데도 불구하고 관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 못 잡을 때가 있었다. 마음을 너무 열었던 탓인가 내 삶에 먼지처럼 남아있던 관계들을 정리하다 보니 많은 체력을 소모한 건지도 모른다. 어른들의 세계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당신도 나처럼 휑뤵한 마음을 붙잡고 있는 것일까. 그러니까, 이제는 이 사람이 내 사람인지 아니면 나는 이 사람을 받아줄 마음의 공간이 없다던지 우리는 사귈 것이 아닌데 계속 연락을 해야 하나라던지. 내가 혼자 좋아하면 어쩌는지, 나는 좋아하지 않는데 괜한 상처를 주면 어떡해라던지. 이렇게 홀로 너무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상처를 받는 것이나 상처를 주는 것이 필연이라고 여기며 방충망은 물론 마음까지 닫아버리고 있는 꼴이랄까. 이해가 된다. 그렇게 밝았던 우리가 이성적인 사람이 되었는데 그런 사람들끼리 만나니 드라마를 바랄 수 있겠는가.

애석하지만 초월이라는 단어는 관계에서 적용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좋은 사람을 놓치고 있어. 라며 마음의 문을 활짝 열라고 한다. (나 자신이) 근데 외로우면서도 혼자가 좋고 예전처럼 살갑게 사람을 대하는 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필요하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거리를 두고 가면을 쓰고 내 옆에 꾸준히 있어 준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 보이는 것이다. 마음은 그립다. 팔팔했던 그때가. 하지만 관계는 인생에서 불가피한 것이니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만의 방식을 구축하는 것이다. 어쨌든 답은 없다. 우리를 도울 수 있는 거라곤 결국 진심과 타이밍이지 않을까? 나는 가끔은 조금 영악해져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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